브로콜리
“이거 먹는 거 맞아?”
살짝 데친 브로콜리를 아내가 처음 식탁에 올렸을 때 내가 했던 말이다. 그림바카라에서나 본 듯한 장식용 풀 같은 것이 입으로 들어올 음식이라고는 상상한 적이 없었다. 초록색의 울퉁불퉁한 덩어리는 어딘가 낯설고, 조금은 거부감마저 들었다.
결혼 후 아내는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을 하나둘 식탁에 올렸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식욕이 넘쳤던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온 브로콜리는 달랐다. 익숙하지 않으니 보기도 좋지 않았고, 보기 좋지 않으니, 젓가락이 머뭇거렸다. 경험하지 못한 먹거리 앞에서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선 셈이다.
브로콜리가 우리 식탁에 자리 잡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채소도 아니었고, 조리법조차 낯설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반 ‘웰빙(Wellbeing)’의 바람과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알려지면서 몸에 좋은 식품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그렇지만, 낯선 채소를 실제 밥상 위에 올리기까지는 또 다른 계기가 필요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서양 채소가 우리의 입맛에 안착한 일등 공신은 ‘초고추장’이라는 사실이다. 음식을 찍어 먹는 일이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음식문화와 맞닿아 있다. 고추나 오이 같은 채소부터 각종 해산물을 찍어 먹던 그 식습관이, 낯선 채소를 받아들인 다리가 되어주었다.
나 역시 그 다리를 건넜다. 첫 만남은 살짝 낯을 가렸지만, ‘찍먹’의 익숙함에 기대어 경계심은 바로 허물어졌다. 이제 우리 집 냉장고 야채칸에는 계절과 상관없이 브로콜리가 자리 잡고 있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탐스러운 덩어리를 집어 드는 나를 발견한다.
브로콜리를 먹으며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그 풍성한 꽃송이만을 본다. 그러나 진짜 숨은 맛은 줄기에 있다. 겉은 단단하고 투박해도 속은 부드럽고 달큼하다. 그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고 입에 넣었을 때의 반전처럼 사람 또한 그렇다. 처음에는 화려한 모습에 끌리지만, 함께 살아갈수록 관계를 지탱해 주는 힘은 단단한 속마음에서 나온다. 그 진심을 발견하는 순간, 관계의 뿌리는 깊어진다.
이처럼 줄기의 속살까지 들여다보게 되니, 브로콜리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저 식감과 초고추장 맛으로 먹던 것이 이제는 우리 집 식탁의 당당한 주인공이다. 요즘은 영양을 살리려고 데치기보다 기름에 살짝 볶거나, 노릇하게 굽기도 한다. 조리법이 진화할수록 숨겨진 풍미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브로콜리의 성질에 맞춰 불의 세기를 조절하듯, 이 채소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시도와 시간이 필요했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오죽할까.
우리 부부의 세월도 알고 보면 브로콜리 한 송이를 보듬어내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처음엔 서로의 삐죽한 꽃송이 같은 자존심을 앞세워 부딪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세상살이라는 뜨거운 김을 함께 쐬고, 때로는 초고추장 같은 매콤한 말다툼으로 서로의 간을 맞추며 견뎌낸 세월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서로의 투박한 줄기 속에 숨겨진 단맛을 알아채는 사이가 되었다.
낯설었지만 서로의 다름을 식탁 위에서 녹여내 한 식구(食口)가 되어가는 과정. 세상에서 가장 맛깔나는 인생살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집 브로콜리는 단순한 채소를 넘어, 서로의 결을 맞추며 살아온 우리 삶의 두께를 가늠하게 한다.
오늘도 식탁 위에 짙은 초록이 놓여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든다. 그리고 아내를 향해 미소로 말한다.
“오늘 브로콜리 참 먹음직하네. 초고추장 맛도 딱 좋고.”
우리의 대화는 진하게 익어간다. 낯선 것이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사랑이 되기까지 브로콜리는 오늘도 조용히 그 고소한 비밀을 들려주고 있다.
브로콜리는 십자화과(科)이다. 야생 양배추를 개량하여 꽃피기 직전의 미성숙 꽃봉오리를 먹도록 만든 품종이다. 마찬가지로 케일은 잎을, 콜라비는 줄기를 먹도록 개량했다. 그래서 이들은 유전적으로 형제 관계이다.
‘설포라판’이 핵심 성분이다. 살짝 찌거나 기름에 볶는 것이 유용하며 항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송이'라고 부르는 꽃봉오리에서 작은 노란색 꽃이 핀다. 이때가 되면 영양가가 떨어지고 식감이 질겨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서늘함을 좋아하며 의외로 추위에도 강하다. 반면에 빛은 필요하지만, 더위에는 약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