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
“이런 걸 왜 먹지?”
어릴 적, 처음 두릅을 씹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알싸한 향이 코끝을 찌르고 혀를 마비시키는 듯한 쓴맛이 대뇌를 강타했다. 어른들이 왜 이런 걸 따려고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지. 귀한 먹거리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두릅은 나의 밥상에서 오랫동안 밀려나 있었다. 못 먹는 음식, 아니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잊혔던 음식이었다.
세월이 한참 흘렀다. 결혼 후 어느 봄날, 아내가 친정에서 가져온 두릅을 데쳐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긴가민가했다. 곧이어 맛있게 먹는 아내 모습을 신기해하면서 얼떨결에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예전과 같은 두릅일 텐데, 맛의 느낌이 달랐다. 쌉싸름했지만, 그 쓴맛 뒤에서 향과 그윽함이 혀를 붙잡았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당기고, 삼킬수록 여운이 남았다.
“두릅이 이런 맛이었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두릅이 변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변한 것은 나의 입맛이었을까. 아니면 처음 먹었던 날, 유독 쓴 녀석이 잘못 걸렸던 것일까.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두릅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변화는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몰랐던 두릅의 시간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릅은 ‘산나물의 황제’라 불린다. 황제라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나무줄기 끝 제일 높은 곳에 왕관처럼 자리 잡고, 오직 짧은 봄날에만 그 고유의 맛을 허락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먹는 두릅은 '어린 순'이다. 통통한 밑동은 줄기이고, 보들보들한 끝은 펼쳐지기 직전의 잎이다. 나무 입장에서는 미래 생존을 위한 희망을 통째로 내놓는 셈이다. 우리가 채취하는 그 찰나의 순간은, 줄기와 잎의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아주 짧은 과도기에 해당한다.
두릅나무의 겨울은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가시 막대기다. 다만 가지 끝에는 갈색 비늘잎에 싸인 겨울눈이 모든 에너지를 응축한 채 봄을 기다린다. 봄이 되면 비늘잎을 뚫고 연한 새순이 돋아나며 우리는 그것을 먹는다. 만약 순을 따지 않으면 거대한 잎줄기로 펼쳐져 성장한다.
그런데 이 생명의 흐름은 한 가지 흥미로운 결단의 순간을 맞이한다. 바로 그 새순이 꺾여 상실되었을 때이다. 두릅은 곧바로 비상 체계를 가동하여 새로운 생을 선택한다. 가지 옆구리에 예비 자원으로 숨어있던 '곁눈'이 일제히 깨어난다. 시련이 오히려 여러 갈래의 생을 만드는 힘이 된다. 그래서 두릅의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방향 전환이었다. 마치 인간이 실패를 겪으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 연약한 새순은 초식동물로부터 어떻게 지켜졌을까. 두릅나무는 고독한 방어바카라으로 앙상한 줄기에 촘촘한 가시를 세우고, 순 안에는 쌉싸름한 독성을 채운다.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한 방어기제다.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 내보이는 까칠한 가시는 어쩌면 지키고 싶은 연약한 내면이 있다는 간절한 호소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에게 두릅이라는 산나물은 어떤 조건을 통과해야 만나는 존재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찾아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때를 알고 그 짧은 순간을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그 조건들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손에 쥐어진다. 그래서 귀하다. 수확량이 적어 소중하기도 하지만, 그 맛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드러나기에 더욱 특별하다. 준비된 자에게만 내려온다는 그 사실에서 산나물의 황제가 지닌 품격을 본다.
이제 나는 안다. 자연의 시간만큼 기꺼이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봄이 차오르면 아내에게 먼저 묻는다.
“두릅 먹을 때 안 됐어?”
나는 이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두릅은 두릅나무과(科)이며 낙엽성 활엽 관목인 두릅나무의 어린순이다. ‘둥글게 말린 채 움튼다’라는 형태적 의미로 이름이 만들어졌다. 사포닌을 함유하여 '봄 두릅은 금(金)이고 가을 두릅은 은(銀)이다'라는 말처럼 봄철 보양식의 으뜸이다. 흔히 두릅 하면 참두릅이며 땅두릅(독활)은 다년생 초본, 개두릅은 엄나무의 새순이다. 오갈피나무, 황칠나무, 인삼도 모두 두릅나무과다.
두릅을 손질할 때 밑동을 감싼 갈색 껍질을 벗겨낸다. 추위로부터 어린 순을 보호하던 외투 같은 존재이며 데쳐 먹는 이유는 독성 완화, 쓴맛을 조절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