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은 자신 앞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 같은 생각으로 마음대로 마구 사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거니 뒤쳐지거나 하면서 부지런히 살다 보면, 어느새, "이제는 그만 멈춰야 해"라는 소리가 들리죠.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자신에게는 아직 끝이 멀었다는 생각이 가득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함없이 앞으로 힘을 다 해서 나아갑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30년을 한 마음으로 한 길을 걸어오다가, 자신에게도 정년이라는 것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자 잠시 마음이 요동을 쳤습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은 우리의 삶이 과거와는 달리 100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는 지금의 일을 놓아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친 가지이기 때문에, 놓아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삶에는 반드시 끝이라는 것이 있지요.
그렇지만 끝이 있어 안타깝고 허망하다는 생각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한 번의 삶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의미 있는 것으로 채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자신의 첵 이름을 '인간의 의미 추구(Man's searh for meaning)라고 지은 것 같습니다.
흔들리거나 포기하는 마음은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의미'를 찾는 것은 삶에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의 고민은, 은퇴 이후의 삶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일 겁니다.
일찍 깨달은 사람은 일찌감치부터 준비하는데, 준비하는 것이 대개는 노후자금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막상 은퇴를 한 후의 시간은 생각만큼 의미 있게 사용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허전한 마음을 채우고, 여행을 다니면서 바빴던 시절에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채우는 것으로 노후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 아닐까요?
'정원의 속도'의 저자 정진형
이 작가는 30년이라는 세월을 커다란 성취를 위해서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분입니다. 열심히 살다 보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큰 것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늘 가득했던 분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자신의 삶이 가치 있게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서 있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글이라는 생각에, 정원의 속도라는 이 바카라의 처음 부분은 큰 감동으로 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뒤로 넘어가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눈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래를 어떻게 꿈꾸어야 하는가"라는 막연한 질문에, 정진형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정원이 자신에게 주는 깨달음의 변화를 차분하게 이야기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은퇴가 의미 있는 삶의 종지부가 아니라, 새로운 설렘을 갖게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정진형 작가가 정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최근에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귀농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삶의 진정한 모습을 꿈꾸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원을 설계하고 가꾸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나머지 삶을 의미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가꾸다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요?
정원 여행
작가는 정원 여행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정원을 감상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9개의 대표적인 정원 유람을 시작하지요.
그런데, 작가의 특이함이 새로운 정원을 접할 때마다 과거와 지금과 미래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정원 자체의 모양을 감상하면서 아마도 "아 좋구나. 좀 더 나이 들기 전에 이런 곳을 많이 봐 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느껴집니다. 그 생각은 만나는 정원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지식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즐거움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정원 여행이 거듭되면서, 정원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역사를 알게 되었고, 정원의 곳곳에 스며 있는, 거기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아쉬움들을 가슴 깊이 느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원은 두 번 보아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작가의 정원에 대한 눈이 열리기 시작을 하는 것이죠.
또한 "앞으로 보고자 하는 정원들을 새로운 마음의 눈으로 읽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이 커 갑니다.
그때 찾게 된 곳이 천리포 수목원입니다.
삶의 희망을 키우기 시작한 천리포 수목원
작가는 그전까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통찰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삶이 은퇴로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을 합니다.
"부러진 나무도 햇빛을 받으면 뿌리를 내립니다"
수목원의 가드너의 이 한마디와 50년을 이어져 온 이곳의 역사를 생각하며 새로운 통찰을 얻는 작가.
여기에서부터 은퇴라는 부러짐은 새로운 빛으로 새로운 생명력이 발휘되는 시점이아라는 생각으로 작가의 가슴은 가득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천리포 수목원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바친 민병갈이라는 사람의 노력에 감동하는 것으로 멈추었던 작가의 가슴이 새로운 희망으로 설레기 시작합니다.
기록의 시작
민병갈은 49세에 수목원을 시작하는데, 정원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계속 배워갔고, 또 매일매일의 재배와 성장에 관한 기록을 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의 가슴에 감동이 옵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르는 나무들의 기록을 매일 하기로 마음먹고 실천을 합니다.
읽고 있는 나도 정원을 가꾸고 있지만 기록은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읽는 순간 바로 실천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실천이지만, 이것이 이어지면 크고 의미 있는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미룰 이유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의 방문
작가는, 두 번째로 천리포 수목원을 방문하면서, 바닷바람에 섞인 염분을 느끼면서 민병갈이 처음에 느꼈던 바닷바람의 염분에 대한 저항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면서 민병갈이 염분에 저항하지 않고, 염분에도 잘 자랄 수 있는 나무를 선택하고 토양을 개선해 나가는 것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그 의미를 찾는 마음의 시간도 가집니다.
그는 수목원을 한걸음 걸을 때마다, 그곳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계속 생각해 나갑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여유로움을 찾아가고 있으면서 행복한 의미를 깨달아가던 작가는, 자신이 보고 있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계속 분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멈칫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멈추고 노을길을 걸어가며 수목원 가드너의 말을 떠올립니다.
"내가 지금 심고 있는 나무가 언제 꽃을 피울지는 모릅니다. 아마 나 자신은 그 꽃을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완성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갑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땅에 정원을 만들어 가겠지만, 그것도 완성을 시켜야만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지금의 시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 다시 말해서 잘 기르는 것만을 마음에 담으며 수목원을 뒤로합니다.
나는 이 부분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완성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나의 생각을 무겁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에게 허락된 환경을 열심히 가꾸는 것, 그것이 행복할 수 있는 근본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소쇄원 방문
작가는 소쇄원에 걸어 들어가면서 이곳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곳에 있는 길, 냇물, 정자, 암벽, 방 등을 만나면서 그의 마음에는 '서두를 것 없다'는 생각이 차 오르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그렇게 이끌었는지는 모르지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그에게 소쇄원은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합니다.
그곳을 만든 사람은 벼슬의 세계를 뒤로 하고 먼 곳으로 내려와 소쇄원을 만들어 갑니다.
어떻게 보면 욕심을 버리고 편안히 살겠다는 생각이라고도 보일 수 있겠지만, 그곳의 자연과 길과 건물, 그리고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남긴 발자취 등을 생각하면서, 정원을 만든 기술의 뒷면에는 철학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작가는 '기술의 너머에 철학이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그 정원이 철학 위에 세워진 기술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철학에 따라 갖추어진 소쇄원이었기에, 이후에 수많은 문인들이 그 위에 의미를 더해 가면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꿈을 품어보는 정원이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소쇄원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어떤 노인이, 어린 송아지로부터 장성한 소가 되어가는 동안의 매일의 놀라움, 즉, 늘 새로운 깨달음을 갖는다는 것을 들으면서,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아말로 가장 큰 기쁨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소유가 아니고 존재를 느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를 깨닫는 것은 의미도 모르면서 소유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주는 것임을 알고 나서, 자신이 택한 제2의 인생인 정원사의 길을 생각하며 마음이 가득해지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의 가슴이 설레기를 바라는 작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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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로받고 싶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불편함이 없다고 해도, 넉넉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마음 한 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자주 솟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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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원에 머물렀던 사람들. 그들은 단순한 휴식을 즐긴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위로를 받고자 머물렀고, 어떤 사람은 유배를 당하여 머물렀습니다. 그러면서 그곳의 나무와 풀과 이끼와 바위와 개울을 보면서 평소에는 깨닫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됨으로써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깨달음을 이어가는 작가의 여정과 함께 하시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