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천사의 언어에 사랑이 없으면

by최이삭


#7.


계절은 여름 절정에서 가을로 향하고 있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어떤 자극을 받았는지 나는 ‘온라인카지노’라는 플랫폼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불특정 다수가 내 글을 읽는 게 마치 치부처럼 느껴져서 죽어도 공개하는 건 싫다 생각했는데, 누가 읽어도 상관 없겠다 글을 쓰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온라인카지노는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작가로 등록하고 싶으면 내가 쓴 글을 몇 개 보내서 자격이 되는지 검증을 받아야 했다. 나는 지난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들을 시험적으로 제출해 보기로 했다. 첫 글을 업로드하면서 어차피 지난 글들을 싹 다 공개해 버리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운 좋게 온라인카지노에서 곧바로 작가 등록을 해줬다.


나는 글을 차례로 올렸다. 종종 누군가 ‘좋아요’를 뜻하는 하트를 눌러줬다. 그런데 어느 날 온라인카지노 계정을 통해 이메일 하나가 날아왔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쓰신 글을 읽었다. 곧 참사 2주기가 되는데, 시민들이 참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혹시 참여하시지 않겠느냐.’


‘빠띠’라는 시민 단체(슬롯적 협동조합)의 활동가 제안이었다.


슬롯적 참사에 관한 글을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었기 때문에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해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일을 하면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날 때마다 ‘힘이 되겠다. 함께 하겠다.’ 는 것을 말로만 한 거 같아 늘 죄바카라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시간 많은 백수고 이 기회에 시민 입장에서 뭐라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글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민 모임도 나가야 하고 토론회도 참석해야 했다. 생각보다 할 게 많았다. ‘혼자 하기에 도저히 용기가 안 난다.’ 싶어 슬롯적 이슈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한별이에게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것부터 문제였다. 프로젝트 OT 모임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내가 직업을 ‘프리랜서 방송작가’ 라고 말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기대감만 키운 것 같았다. 그냥 백수라고 할 걸.


단 한 자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하도 안 써지니 대체 ‘뭘 써야 하지.’를 떠나 ‘내가 괜한 걸 한다고 했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한들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질 수 있겠냐며. 노트북 앞에 앉아서 며칠을 한 줄 쓰고 지우고 한 줄 쓰고 지우고만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마감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8.


성당 교리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보통 '나눔' 시간에는 수업 내용이나 성경 구절을 함께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도 순번을 정해 성경 구절을 읽는데 봉사자님이 나를 첫 주자로 지목했다. "오늘은 혜정 씨부터 오른쪽으로 쭉 돌아가자."


내가 읽은 구절은 이거였다.


<<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코린13장 1절) >>


머리가 댕하고 울렸다.


가끔 어떤 성경 구절을 읽을 때 나에게 메시지를 주듯 구절 자체가 스며드는 때가 있다. 이때가 그랬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서 정신이 잠깐 어디론가 멀리 가버리는 바람에 다른 조원들이 읽는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각자 읽은 구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하나 골라보라는 봉사자님 말에 나는 고민할 것 없이 내가 읽은 첫 구절을 골랐다.


"혜정 씨는 왜 그 구절을 골랐어?" 묻는 질문에 나는 우물쭈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떤 참사와 관련된 글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 글을 본 어떤 분이 저에게 시민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글을 쓸 주제나 되는지 잘 쓸 수 있을지 고민만 커져서 한 자를 못 쓰고 있네요. 마감이 다가와서 답답한데, 방금 읽은 구절이 저한테 무언가 말하는 거 같아서 가슴에 와 닿았어요."


조원들은 그게 무슨 이야기냐는 듯, 더 말해보라는 것처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에요. 이제 곧 참사 2주기가 다가오거든요. 이 구절을 읽는데 한 줄도 못 쓰는 저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쓰라. 진심을 담아서 글을 써라. 말하는 것 같네요." 라고 말했다. 다들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봉사자님이 입을 열었다.


"그러네. 나도 사느라 잠깐 잊고 지냈는데.. 그때 나도 티비를 보면서 너무 충격이 컸었어. 사실 우리 성당에도 여러분들처럼 교리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온 친구가 있었는데,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사고가 났거든. 그래서 그때 신부님이랑 수녀님께서 장례 미사를 치러주고 오시기도 했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일지 추측을 해보았다. 일을 하면서 수많은 기사를 읽었고 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니까. 가톨릭 신자라고 했던 친구가 몇몇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친구 중 하나일까? 혹시 내가 선택한 세례명과 같은 세례명을 가진 그 친구일까?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또 부웅하고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에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떤 글이든 일단 써보기로 했다. 몇 가지 주제를 짧게 나누고 그냥 해보는 데까지 쭉 써보자.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니까.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갔다. 한 자도 못 쓰겠더니 이상하게 쭉 써졌다. 글을 완성해서 마감 시간에 딱 맞춰 보냈다. 내내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음엔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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