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말고

고집스러운 염세 V

by왕고래


“딱 보면 알아.”


이런 말은 결국 그 타율을 확인하는 순간을 만나기 마련이다. 만난 지 5분도 안 된 사람의 성격,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일의 방향, 그리고 타인의 선택이 가져올 결말까지, 다양하게 쏟아낸 그것들 중 옥석을 가리는 일이다.


뱉을 때의 호기가 얄미워 그것이 틀렸을 때의 뜨거운 낯을 기대하겠지만, 상황은 조금 달리 흐른다. 이 말을 즐기는 이들은 그 결과가 맞지 않아도 부끄러워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아님 말고."


오히려 그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얼핏 들으면 그저 생각이 없는 것처럼 들리는데, 사실 이런 반응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무의식적 장치가 숨어있다. 예언의 크기가 클수록 실패도 그에 상응하게 되므로, 예언했던 상황 자체를 하찮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하찮아진 그 사건에 여전히 무게를 두고 붙잡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다.


"오디션 있잖아. 네가 절대 안 될 거라고 했던 영수만 붙었다더라.“
"내가 그랬나?"

"영수한테 좀 미안하지 않아?"
"그걸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어? ㅋ 아니면 마는 거지."


더 끌다가는 나만 뒤끝 있는 사람이 된다. 심지어 난데없는 인생 조언을 들을 때도 있다.


"아니, 영수가 그때 진짜 상처 많이 받았었어."
"영수도 큰 일은 못하겠네. 그런 거 하나하나 기억하면 인생 힘들지.“


묘하다. 실언의 크기가 작아져 버리니 그걸 꼬집은 사람이 더 작아져 있다.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기억한 사람이 억울한 구조.



사실 ‘아님 말고’ 라는 식의 반응은 그 쿨한 말투에 비해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까지 도달하게 만든 예언 자체가 일종의 인정 욕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잘 맞춘다는 반응, 그 달콤한 열매가 필요 없다면 굳이 남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굳이 그것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여 의미를 만들며, 굳이 가치관 부서에서 최종 검증까지 마친 후 굳이 100여 개의 근육을 사용하여 입을 열어 뱉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의 실패가 어떤 의미인지 자신이 더 잘 안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다지 예리하지 못한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모호한 반응이나 사과를 하지 못하고 TV 채널 돌리 듯 태세전환을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얼굴을 몇 겹이나 두껍게 만드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


예리해지는 길은 맞췄을 때보다 틀렸을 때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공부할 때 오답노트가 중요한 이유와 같다. 그래서 실제로 관찰이 날카로운 이들은 오차에 솔직하다. 확신보다 수정에 익숙하다. 틀린 걸 인정하는 사람만이 다음번에 더 정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만다는 식의 태도를 고수한다면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그 통찰력은 자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들이면서 그 과정에선 타인에겐 상처를 준다. 물론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게 그대로 두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은 쏟아졌지만 수건으로 닦으면 자국은 지울 수 있다. 그대로 두면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다.




아님 말고

쿨스멜: ★★★★★
독성: ★★★☆☆
지속성: ★★★☆☆

유의어: #누가뭐래? #그말을믿었어? #농담이야
파생어: #굳이? #이게화낼일이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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