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었을까, 구경이었을까

고집스러운 염세 III

by왕고래


은혜 씨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큰 사람이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상황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고 주변에 크게 피해를 주는 일도 없다. 다만 자신의 생활도 침범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눈치는 좀 없는 편이었던 것 같다.


혜미 씨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다만 남들이 꺼려하는 일에는 늘 그녀가 있었다. 말보다는 행동이 빠른 사람이었고 그게 뭐든 시도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결과를 쉽게 단정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는 편이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소원한 듯 보였다. 아침에 같이 커피를 사 오는 모습도 팔짱 끼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장면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두 사람이 크게 다퉜다는 것을 듣게 됐다. 들여다보면 여러 사정이 있겠다만, 갈등의 촉발은 은혜 씨의 말버릇 때문이었다고 한다.


"요즘 남친이랑 자주 안 만나네?"
"그러게. 남친이 계속 바빠서… 좀 소홀해진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남친 바람난 거 아니야?"



은혜 씨에겐 부정적인, 그중에서도 아주 안 좋은 상황을 예견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업무나 개인적인 대화를 가리지 않았는데, 이따금 일어날 문제를 미리 상기하도록 돕는 역할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혜미 씨에게 불편한 기분을 느끼게 했단다. 심지어 걱정으로 들리지 않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고.



걱정이었을까, 구경이었을까


타인의 걱정에 무작정 부정적인 상황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공감의 시도일 때도, 혹은 자신의 날카로운 판단력을 전달하는 과정일 때도 있다. 다만 그 형태가 무엇이든 듣는 입장에선 대개 두 가지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던 최악의 상황이 다시 눈앞에 소환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꺼낸 상대의 의도를 가늠하느라 드는 피로감.


"심지어 이번 연도는 시험 출제 난이도까지 높아졌다고 하더라고."
"너 이러다가 3년 고생한 거 다 물거품 되는 거 아니야?"


은혜 씨와 혜미 씨의 갈등 소식을 접한 후, 나는 은혜 씨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녀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편견이고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이 맞다면, 적어도 그 말을 누구보다 자주 들었을 혜미 씨는 그녀의 말들이 걱정이 아닌 구경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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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표현을 즐기는 이들은 은연중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출세에 목마른 사람은 그것과는 무관한 일에도 승진 가능성으로 생각이 흐른다. 이득 관계만을 따지는 사람은 수지타산 위주로 상황을 이해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번엔 지은이가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아."
"너 그러다가 선물했던 것들 하나도 못 돌려받는 거 아냐? 야, 그게 얼만데."
"뭐…?"


자신에게 최악이라 판단되는 그 상황이, 걱정의 당사자에겐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닌 것이다.



걱정과 구경의 차이는,


아마도 그 말이 진심으로 상대를 향해 있는지, 아니면 그냥 자기 안에서 흘러나온 것인지의 차이일 것이다.


걱정은 상대의 상황을 최대한 듣고 헤아리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지만, 구경은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곳에서 어떤 미사여구와 표정을 짓는다고 한들 상대는 알아챈다. 한두 번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르며, 어떤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최악을 먼저 꺼내는 말버릇은, 이런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 선명한 단서이기도 하다.


혜미 씨도 그 시간 속에서 은혜 씨를 오해하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두 사람은 멀어졌다. 오해라고 느꼈던 그것은, 꽤 예리한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되는 거 아니야!?

독성: ★★★☆☆
지속성: ★★☆☆☆
얄미움: ★★★★☆

유의어: #딱보면알아 #내가뭐랬어
연관어: #가만히있었어그걸?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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