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거기가 어딘데

고집스러운 염세 II

by왕고래


K는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벌였다.


피곤해서 조용히 오고 싶었는데 음악 소리가 커서 조절해 달라고 했단다. 기사는 줄이는 시늉만 하더니 음악을 끄고 라디오를 켰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기사는 누굴 죽여야 하니 살려야 하니 하면서 자신의 정치색을 과감히 드러내고는 "그렇지 않아요?"라면서 거듭 동의를 구했다.


K는 차에 찌든 담배 냄새 때문에 가뜩이나 속이 울렁거리는데 쉬지 않고 걸어대는 말소리를 듣고 있자니 갑갑하고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던 차에 택시가 예상과 다른 길로 들어서는 걸 보았다.


늘 다니던 길이기에 K는 그 길이 돌아가는 선택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따져 물었지만 기사는 당당했다. 신고하려면 하라고, 자신은 가야 하니 영업 방해하지 말라고. K는 결국 평소보다 더 많은 택시비를 지불했다.


다음 날 K는 동료 직원에게 어제의 일을 토로했다. 사건 당시에 기사에게 뱉지 못했던 말까지 더해 쏟아냈다. 그런데 동료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운이 없었다는 듯 말했다. 빈정이 상해 좀 더 세게 입장을 드러냈다.


"택시기사가 다 거기서 거기죠 뭐. 비매너 운전에… 손님도 골라 태우지 않나. 예의도 없고."


K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후, 그 동료의 아버지가 택시기사라는 것을 알았다.


ChatGPT Image 2026년 5월 30일 오전 10_25_3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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