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알을 깨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새는 알을 깨기 위해서 투쟁한다."
른수야 너는 데미안의 이 구절을 이해해? 16살 첫 번째 사춘기 때는 도대체 저 문장이 뭐 어쩌라고 싶었는데,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이한 지금, 왜 데미안이 세계 명저인지 비로소 깨달았어. 꽤 오랫동안 글쓰기도, 독서도 심드렁했어. 한때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도전과 실패를 통과한 이들의 문장에 힘을 얻었고, 나 또한 그런 문장을 거침없이 쓰는 사람이고 싶었어. 근데 지금은 누군가의 도전과 용기가 담긴 문장이 심드렁하고, 다른 세상일처럼 느껴져. 용기를 내고, 불안을 껴안기보다는 순응하고, 방어적으로 살아서겠지. 담대하고, 무모한 문장은 내것이 아니라 생각하니 글에서 도망치게 되더라.
나는 서울 4년제 대학졸업, 서울에서 평균연봉을 받는 온라인 게임 여성, 캥거루족인 36살이지만 어른은 아니야. 넌 어른이 뭐라고 생각해? 나는 싸워서 자기 것을 지키거나 쟁취해 본 사람이야 말로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 든든한 부모, 탄탄한 회사 속 그들이 시키는걸 어느 정도 따르다 보니깐 자연스레 평균적인 삶이라는 거대한 성벽에 들어오게 됐어. 이전에 기자를 하면서 왜 약자들은 항상 화가 나있고,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구질구질하게 싸우는걸까 생각했어. 근데 뭐 난 약자는 안될 거니깐 알 바 아니라 생각했어. 그냥 보기 좋게 적당히 잘 넘어가는 것이 우아하고, 멋있다고, 화내고 하나하나 따지는건 약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원했던 삶은 아니지만, 화내지 않아도 따숩고 배부른 이 삶에서 적응해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답답하고 짜증이 났어. 코로나 이후 한 5년 정도 인생의 늪에 빠져나오려고 평소보다 더 운동하고, 더 일을 많이 했는데 인생의 레벨은 제자리걸음은커녕 더 침체되는 거 같았어. 미스터리야, 열심히 사는데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물질적으로 충분한데도 왜 이런 패배감이 드는 건지, 왜 앞으로의 삶이 기대가 되지 않는지.
근데 얼마 전 내가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아침부터 상사가 협력업체랑 전화로 엄청 싸운 거야. 그동안 협력업체가 탐탁지 않게 일하거나 터무니없는 예산을 요구해서 어이없었지만 프로젝트 바카라임자로서 큰 문제없이 넘어가고 싶어, 굳이 애꿎은 말을 하지 않고, 교토식 화법을 써가면서 소통을 했거든. 근데 디렉터는 뭐든 께름칙하면 안 참고 비용이나 일 처리방식에서 꼬치꼬치 따지고 싸우더라. 솔직히 그래서 상사가 불편했어. 같이 을인 입장에서 큰 소리 없이 서로 양보해 가면서 일하면 되지 굳이 화를 내서 프로젝트에 생채기를 만드나 싶었거든. 근데 따로 날 불러서 말하더라고.
“네가 안 싸우니깐 내가 싸워야 한다고. 내가 너 왜 뽑은 줄 아냐고. 파트너가 제대로 못하면 따질 건 따지고, 예산에 맞게 일 제대로 안 하면 싸우라고 뽑았다고. 근데 네가 그냥 옆에서 싫은 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싸워야 한다고. 너 그러려고 뽑은 거 아니라고, 정신 차리라고 “
그 말에 정말 한 대 맞았어. 오랫동안 우울한 이유를 알겠더라고. 영화 <오디세우스>에서 오디세우스가 가장 오랫동안 발이 묶였던 칼립소의 섬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신호라는 걸. 지금 이상한 걸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지금 배부르고 등 따시면 결말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는 신호란걸. 이게 우울의 본질이었어. 글을 계속 쓰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 싶다, 사업해서 돈을 벌고 싶다. 이 모든 목표가 허황된 꿈같아서, 고작 내가 뭐라고, 지금의 적당한 삶을 살면서, 집을 사고 부모님 마음이 편하게 하는게 효도라고 안주하려 했어. 약자로 살면서 증명하는 건 해본적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데다가 골치 아프니깐, 많은 것을 외면해 왔어. 그럼 좀 칼립소에서 잘 살던가. 그것도 아니고 투덜거릴거면 탈출해야지.
오디세우스를 이야기하면서 비장해졌는데, 그래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뗏목에 배를 띄우고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해. 직급이 대리 일때는 회사에서 꾸지람을 듣거나 결과가 좋지 못하면 ‘내가 뭐가 부족하지?’ ‘어떤 팩트를 놓쳤지?’ 이런 질문으로 상황을 해결하고 성장했어. 그리고 대신 싸워주는 사람도 있었고. 근데 차장이 되고, 삼십 대 후반이 되면서 질문이 ‘온라인 게임인이 적성에 맞나?’, ‘한국 회사문화가 나와 맞나?’, ‘이게 내가 정말 풀고 싶은 문제고, 원하는 삶인가’, ‘아니라면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하나’라는 심오한 질문을 하게 됐어. 서른 살에서 서른여섯이 됐고, 대리에서 차장이 됐고 풀어야 할 문제는 달라졌는데, 계속 서른 살 대리급 수준에서 알던 공식으로 커리어도, 인생도 해결하려 하니 똑같은 부분에서 같은 이유로 틀리길 반복하고 있어. 이젠 남들이 알려준 같은 공식으로 계속 같은 문제를 푸는 짓은 그만하고, 원하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틀려보고, 부딪혀보고, 다시 돌아가고, 싸우고 깨지고, 그러다 우연히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내가 믿었던 게 참인지 거짓인지 판별하고 싶어.
이런 생각에 다다를 수 있었던 건 른수 덕분인 거 알아? 른수는 삼십 대 성장통을 너만의 방식으로 멋있게 증명했잖아. 집에서 홈트도 겨우 하던 네가 어느 날 잘 다니는 회사 그만두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남편과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훌쩍 떠난 것.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부터 하던 네가 모든 여행지에서 흥정꾼과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의심부터 하고, 싸워댔잖아. 30대 초반 신혼부부에게 따라붙는 ‘자식 계획은?‘, ’ 신혼부부 재테크는?‘ 클리쉐 같은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등짝보다 두 배나 두꺼운 배낭을 메고 멀리 떠나버린 너. 3년 전엔 새로운 여행지에서 싸우는 소식부터 전하던 인스타 피드를 보면서 좀 편하게 여유를 즐기지 싶었는데, 지금 보니깐 멋진 어른이 되는 과정이더라. 그렇게 돈도 다 쓰고, 가지고 간 신발부터 옷이 다 해져서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다시 네가 하고픈 일을 얻고 멋있는 문장 속에서 헤엄치는 네 모습이 뗏목을 만들고 배를 띄우는데 용기를 내게 했어. 고마워
새가 투쟁하지 않으면, 알을 깰 수 없고 그럼 썩어버리겠지. 분명 독수리도, 공작도 아니고 참새나 비둘기 일거 같지만 그래도 이 알을 깨고 자유로운 공기를 맡아보고 싶어. 산다는 건 정말 설레고 멋진 일이야. 그냥 두 발로 걷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향할수 있는 건 모든 생명체의 특권이니깐. 이 특권을 마구 누릴거야. 몇 년 전 배낭에 전재산을 담아 여행지 이곳저곳에서 으르렁 거리던 른수 처럼 나도 해볼래. 그래서 아마 다음엔 런던에서 편지를 쓸게. 언제 답장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답장이 없는 동안 우리의 일상이 번민과 싸움으로 가득하다면 그건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뜻일 거야. 우리가 지금 위치한 곳이 칼립소는 아니라는 거니깐, 적어도 원하는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깐. 그러니깐 오늘도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