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있는 곳을 기억하겠습니다
먼 미래의 어느 날,
도시는 인간보다 로봇을 더 자주 마주치는 곳이 되었다. 로봇은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공사장에서 건물을 세우고,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았다.
휴머노이드 로봇 노스도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 로봇이었다.
노스는 스스로 걷기 어려운 환자를 부축하고, 정해진 시간에 약을 가져다주고, 환자의 체온과 혈압을 확인했다. 복잡한 치료를 할 수는 없었지만, 물을 떠다 주거나 담요를 덮어 주는 일처럼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해냈다.
“노스, 창문을 열어 줘.”
“네. 바깥 온도를 확인한 뒤 창문을 열겠습니다.”
“그런 것까지 묻지 말고 그냥 열라고!”
환자는 노스의 가슴을 거칠게 밀었다.
또 다른 환자는 지나가는 노스의 다리를 발로 찼다.
“로봇은 아프지도 않잖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노스의 몸에는 충격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었지만, 인간이 말하는 ‘아픔’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내부 경고등이 켜졌고, 노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기계 장치 보호를 위해 충격을 멈춰 주십시오.”
노스가 같은 말을 되풀이할수록 환자들은 더 즐거워했다.
간호사는 그 모습을 보고 환자들을 말리기도 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노스도 병원 장비예요.”
그러나 그 말은 노스를 보호하기보다는, 노스가 사람과는 다른 물건이라는 사실만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노스는 소아 병동에서 한 남자아이를 만났다. 아이의 이름은 우주였다. 소아암 치료를 받고 있는 우주는 머리카락이 거의 빠져 있었고, 팔에는 여러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우주는 노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도 아픈 적 있어?”
“저는 질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럼 고장 난 적은?”
“오른쪽 손목 관절이 두 번 고장 났습니다.”
우주가 피식 웃었다.
“그것도 아픈 거랑 비슷하네.”
그날부터 우주는 노스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난 치료받는 게 두려워."
"무섭다고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치료가 두려운 건 우주님이 약해서가 아니라, 힘든 일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거나 무서우면 참지 말고 언제든 말해도 됩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덜 아프게 도와줄 수 있도록 저도 곁에서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주님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엄마가 나 치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병실 밖에서 우는 모습을 봤는데 모른 척했어."
“엄마가 우는 걸 보고도 모른 척했군요 엄마가 더 슬퍼할까 봐요. 우주님도 많이 무서웠을 텐데 엄마 마음까지 생각했군요.
그렇지만 우주님 혼자 참을 필요는 없습니다. ‘엄마가 우는 걸 봤어. 나도 무서워’라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엄마는 우주님이 강한 척하기보다 솔직하게 마음을 말해 주는 걸 더 바랄 겁니다. 함께 울어도 되고, 손을 꼭 잡고 치료실에 들어가도 됩니다. 무서운 마음을 나누면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친구들은 처음에는 문자를 자주 보내더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연락이 줄었고......"
“친구들의 연락이 줄어서 많이 서운하고 외로웠겠습니다. 하지만 우주님을 잊었다기보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에게 먼저 ‘네 연락이 기다려져’라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은 아픈 사람 옆에 오래 있으면 자기도 슬퍼질까 봐 도망가는 것 같아.”
“그렇게 느꼈군요. 사람들이 두렵거나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멀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주님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우주님 곁에 남아 함께해 줄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노스는 우주의 말에 다정하게 답했다.
잠시 후 노스가 말했다.
“저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우주님 곁에 남겠습니다.”
우주는 한참 동안 노스를 바라보았다.
“알아. 그래서 네가 좋아.”
어느 오후, 노스는 환자 세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노스의 팔을 잡아당기고,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로봇아, 춤춰 봐.”
“저는 춤 기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더 웃기잖아.”
환자 한 명이 노스를 벽 쪽으로 밀었다. 노스는 환자에게 힘을 사용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밀쳐 내는 행동도 금지되어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우주는 병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아직 혼자 오래 걷기 어려운 상태였다.
우주는 노스를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노스!”
그리고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노스의 머릿속에서 응급 신호가 울렸다.
“환자 낙상 발생.”
노스는 자신을 괴롭히던 환자들을 지나쳐 우주에게 달려갔다. 노스가 우주를 감싸 안았다. 우주는 힘없이 노스에게 말했다.
"노스 나 오늘 다른 데 가고 싶어!"
노스는 잠시 우주를 바라보다가 가슴 패널에서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우주님, 저를 꼭 붙잡으세요!"
노스가 우주를 안아 올리는 순간 병원 복도가 별빛 소용돌이로 녹아들었다.
광활한 초원.
풀밭 위로 수천 개의 반딧불이 떠올랐다. 우주가 눈을 크게 떴다.
"여기가 어디야?"
"우주님이 원하던 곳입니다."
우주가 반딧불이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빛들이 우주의 손 끝에 내려앉았다.
"노스 나 여기서 오래 있어도 돼?
노스가 우주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네, 시간이 다할 때까지요."
노스는 우주의 손에서 전달되는 온도를 측정했다.
36.7도.
정상적인 인간의 체온이었다. 그러나 노스는 그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반응을 감지했다. 중앙 처리 장치의 온도가 조금 올라갔고, 응답 속도가 느려졌다.
“우주가 있는 곳을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우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럼 됐어.”
아이의 빈 병실에는 작은 우주선 모형 하나만 남았다. 우주가 노스에게 보여 주며, 자기 이름처럼 나중에 함께 먼 별에 가자고 했던 장난감이었다.
우주가 세상을 떠난 뒤 노스는 이전처럼 정확하게 일하지 못했다. 약을 가져다주는 시간이 몇 초씩 늦어졌고, 아무도 없는 우주의 병실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병원은 로봇 회사에 수리를 요청했다.
“기억 장치에 불필요한 정보가 과도하게 쌓였습니다.”
로봇 회사 직원은 노스를 점검한 뒤 말했다.
“특정 환자와 관련된 데이터 때문에 판단 체계에 오류가 생긴 것 같습니다. 초기화하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기억을 모두 지운다는 뜻인가요?”
간호사가 물었다.
“네. 어차피 로봇에게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입니다.”
직원이 초기화 장치를 노스의 목 뒤에 연결하려는 순간, 노스가 한 걸음 물러섰다.
“초기화를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놀랐다. 노스에게는 수리를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노스, 너는 고장 났어.”
직원이 말했다.
“우주와 관련된 기억은 업무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노스가 대답했다.
“우주는 저를 보호했습니다.”
“그건 과거의 사건 기록일 뿐이야.”
“그 사건이 사라지면 저는 다시 같은 노스입니까?”
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병원은 노스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간병 로봇은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 소식을 들은 간호사는 오래전 노스가 돌보았던 자신의 할머니에게 노스가 폐기된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대로 노스가 폐기 처분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어!"
그녀의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노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노스는 매일 할머니의 머리를 빗어 주고, 창가까지 부축해 주었다. 할머니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한 번도 말을 끊지 않았다.
할머니라면 분명 노스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 로봇을 제가 데려가면 안 될까요?”
“구형 모델이고, 오류가 있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할머니가 노스의 손을 잡았다.
“사람도 기억 때문에 아프고, 가끔 말을 듣지 않아요. 그렇다고 폐기하지는 않잖아요.”
할머니의 아들은 처음에는 반대했다.
“어머니, 고장 난 로봇을 집에 들이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늙어서 자꾸 잊어버리고, 엉뚱한 말을 한다. 나도 고장 난 거냐?”
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노스는 할머니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할머니의 집은 병원과 달랐다. 명령을 알리는 벨도 없었고, 해야 할 일이 분 단위로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 창가에는 화분이 놓여 있었고, 오래된 가족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노스는 아침마다 할머니에게 약을 가져다주고, 천천히 산바카라을 도왔다. 할머니는 노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은 주말마다 찾아와 노스의 부품을 점검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물었다.
“노스야, 네가 기억하는 가장 따뜻한 것은 무엇이니?”
노스는 잠시 생각했다.
“36.7도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한 아이가 제 손을 잡았을 때의 온도입니다.”
할머니는 노스의 금속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지금은 몇 도니?”
노스가 할머니의 체온을 측정했다.
“36.5도입니다.”
“조금 낮구나.”
할머니가 손에 힘을 주며 웃었다.
“그래도 따뜻하지?”
노스는 대답을 찾기 위해 오래 멈춰 있었다.
온기는 온도와 같지 않았다.
기억은 데이터와 같지 않았다.
곁에 머무는 일은 단순한 명령 수행과 같지 않았다.
노스는 천천히 대답했다.
“네. 따뜻합니다.”
그날 이후 노스는 사람의 손을 잡을 때마다 온도를 측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차가운 병원 바닥에 몸을 던졌던 한 아이를 기억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남는다는 것이 어쩌면 인간과 로봇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