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롬프트가 아니라 "지시"다
사람들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거창한 말을 쓰는데, 비전공자에게 이 단어는 겁만 준다. 나는 이걸 훨씬 소박하게 이해한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건, 처음 온 유능한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과 똑같다.
이 비유가 왜 중요하냐면, 우리는 이미 사람에게 일 시키는 법을 안다. 신입 직원이 왔는데 "알아서 잘 해봐"라고만 하면 엉뚱한 걸 열심히 해온다. 반대로 "무엇을, 왜, 어디까지" 짚어주면 제대로 해온다. AI도 똑같다. 그리고 AI는 사람보다 훨씬 유능하지만, 훨씬 순진하다 — 시킨 그대로, 의심 없이, 즉시 한다. 그래서 잘못 시키면 잘못된 걸 아주 빠르고 정성스럽게 만들어낸다.
내가 수백 번 시켜보고 정리한 뼈대는 이렇다. 무엇을 / 왜 / 어디까지 / 하지 말 것.
당연해 보이지만 대부분 여기서 뭉갠다. "가계부 앱 만들어줘"는 지시가 아니다. 소원이다. 무엇을 만들지는 구체적일수록 좋다. "문자로 오는 결제 알림을 자동으로 읽어서, 날짜·금액·가맹점으로 나눠 목록에 쌓아주는 화면."
이유를 주면 AI가 빈칸을 스스로 잘 채운다. "나는 카드 쓸 때마다 문자가 오는데 그걸 일일이 옮겨 적기 귀찮아서"라고 말해주면, AI는 "아, 자동화가 핵심이구나. 수동 입력은 최소화해야겠다"를 알아서 판단한다. 이유는 AI에게 주는 나침반이다.
이게 비전공자가 제일 자주 놓치는 부분이다. AI는 시키면 끝없이 키운다. 그래서 첫 버전의 경계를 못 박아야 한다. "지금은 딱 목록에 쌓이는 것까지만. 통계·그래프·로그인은 나중에." 경계를 안 주면, 간단히 확인하려던 게 거대한 기능 뭉치로 자라서 뭐가 잘못됐는지 찾기도 어려워진다.
"아직 코드는 짜지 말고 계획부터", "외부 유료 서비스는 쓰지 말고", "기존 파일은 백업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미리 말하면 사고가 준다. 나는 특히 "바꾸기 전에 원본을 백업해줘"를 습관처럼 붙인다. 이 한 줄이 나를 여러 번 구했다(15장에서 자세히).
나쁜 지시:
다이어트 앱 만들어줘. 예쁘게
좋은 지시:
[무엇을]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을 위한 앱을 만들 거야. 첫 화면에서 '공복 시작' 버튼을 누르면 타이머가 돌아가고, 목표 시간(예: 16시간)에 도달하면 알려주는 것.
[왜] 나는 단식 중에 '지금 몇 시간째지?'를 계속 확인하는데, 매번 계산하기 번거로워서야.
[어디까지] 이번엔 타이머 기능 하나만. 식사 기록·통계·캐릭터는 다음 단계로 미루자.
[하지 말 것] 아직 코드는 짜지 말고, 화면 흐름부터 글로 설명해줘. 로그인 기능은 넣지 마.
두 번째로 시키면 AI는 훨씬 정확한 걸 내놓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이 결과를 검사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을·어디까지를 당신이 정했으니, 나온 결과가 그 경계 안에 있는지 판단할 기준이 생기는 것이다. "예쁘게 만들어줘"라고 시키면, 나온 게 잘 된 건지 아닌지조차 판단할 수 없다.
비전공자가 자주 하는 오해 하나. "영어로 시켜야 잘 되지 않나요?" 요즘 도구는 한국어를 아주 잘 알아듣는다. 나는 거의 전부 한국어로, 그것도 평소 말투로 시킨다.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무엇을·왜·어디까지가 지시 안에 들어 있느냐다.
아무 프로젝트에나 이 틀을 채워 넣어라. 빈칸만 바꾸면 된다.
[무엇을] ___를 만들고 싶어. 구체적으로는 ___가 ___하는 것. [왜] 나는 ___가 불편해서/필요해서야. [어디까지] 이번 단계는 딱 ___까지만. ___와 ___는 다음으로 미루자. [하지 말 것] 아직 코드는 짜지 말고 계획부터 보여줘. 기존 파일을 바꾸기 전엔 백업부터. 유료 외부 서비스는 쓰지 마. [확인] 시작하기 전에, 네가 이해한 걸 세 줄로 요약해서 나한테 먼저 확인받아.
마지막 [확인] 줄이 은근히 강력하다. AI가 이해한 바를 먼저 요약하게 하면, 시작 전에 오해를 잡아낼 수 있다. 비전공자는 코드로는 오해를 못 잡지만, 요약문으로는 잡는다.
한 가지 습관: 큰일을 한 문장에 몰아넣지 마라. "만들고 → 확인하고 → 다음"의 작은 단위로 쪼개서 시켜라. 한 번에 다 시키면, 어디서 틀어졌는지 못 찾는다.
AI는 유능하지만 순진한 직원이다. "무엇을·왜·어디까지·하지 말 것"을 짚어주면 제대로 하고, "알아서 잘"이라고 하면 엉뚱한 걸 아주 정성껏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