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도: 라다크(2019)
인도를 여러 차례 여행했지만 라다크(Ladakh)는 늘 미지의 땅이었다. 내가 인도를 찾는 시기는 대부분 겨울이었고, 높은 고갯길과 육로가 열리는 계절에야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라다크는 번번이 일정 밖에 남았다.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그 말을 몇 년 동안 되풀이했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남겨두었던 라다크를 처음 찾은 것은 2019년 추석 연휴였다. 대학 후배와 함께 연차를 덧붙여 겨우 11박 12일의 시간을 만들었다. 온라인 게임인에게 긴 여행이란 돈보다 시간을 먼저 마련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천에서 델리까지는 대한항공 직항을 이용했다. 델리에서 이틀을 머문 뒤 국내선을 타고 라다크의 중심 도시 레(Leh)로 향했다. 비행기가 히말라야 상공에 접어들자 창밖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얗게 눈 덮인 봉우리들이 구름 사이로 솟아 있었고, 그 아래로 붉고 황량한 산과 깊은 계곡이 끝없이 이어졌다. 내가 인도라는 이름에서 떠올리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착륙을 앞두고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항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산 중턱을 스치듯 날아가던 비행기는 어느 순간 불쑥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잠시 방향감각이 흐려질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들어가는데 한쪽에서 작은 산소캔을 팔고 있었다. 생수가 아니라 산소를 파는 공항. 그 장면을 보고 나서야 내가 해발 3,5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고산에 적응하기 위해 처음 이틀은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여행을 왔으니 어디라도 가야 한다는 마음을 누르고 숙소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레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조용했고,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컸다. 흙빛 건물 사이로 티베트 불교의 룽타가 바람에 펄럭였고, 멀리 산 위로 곰파와 스투파가 보였다. 라다크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풍경이 아니라 속도였다.
평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걷던 거리도 이곳에서는 숨이 찼다. 빨리 움직이고 싶어도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행자가 자신의 속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가 여행자의 속도를 결정하는 곳이었다. 이틀 동안 몸을 적응시킨 뒤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중심은 누브라 밸리와 판공초(Pangong Tso)를 잇는 4박 5일 투어였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인원을 모아 차량을 함께 빌렸지만, 우리는 둘이서 차 한 대를 통째로 사용했다. 비용은 조금 더 들었지만 당시 온라인 게임인이었던 우리에게는 돈보다 시간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일정에 맞추기보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투어 첫날 아침 8시, 레를 출발해 북쪽으로 향했다. 도시는 금세 뒤로 사라지고 길은 산을 타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계속 고도를 높이자 초록은 점점 사라지고 돌과 눈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카르둥라(Khardung La)였다. 해발 5,300미터가 넘는 고개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 도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던 곳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숨이 달랐다.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머리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자꾸 천천히 움직이라고 명령했다.
라다크는 중국과 파키스탄 접경에 가까운 민감한 지역이다. 길 곳곳에는 군 시설과 검문소가 있었고, 여행자는 미리 발급받은 허가증과 여권을 제시해야 했다. 눈앞에는 인간이 그은 경계와는 아무 상관없이 히말라야가 펼쳐져 있는데, 그 풍경 사이사이에는 군인과 검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카르둥라 정상 부근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간판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카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카페라기보다는 짜이와 컵라면을 파는 간이매점에 가까웠다.
나는 그곳에서 짜이 한 잔을 주문했다. 뜨거운 우유에 찻잎과 향신료, 생강과 설탕이 들어간 평범한 인도식 밀크티였다. 인도 어디서든 쉽게 마실 수 있는 흔한 짜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한 잔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차가운 바람에 굳어 있던 손끝으로 온기가 천천히 번졌다. 숨쉬기도 버거운 고도에서 마시는 달고 뜨거운 차 한 잔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가장 화려했던 음식보다,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 만난 한 끼가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카르둥라의 짜이가 그랬다.
우리는 고개를 넘어 누브라 밸리로 내려갔다. 훈데르(Hunder)에서는 히말라야 한가운데 펼쳐진 작은 사막과 낙타를 만났고, 더 북쪽의 뚜루뚝(Turtuk)에서는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판공초에 도착했다. 영화 《세 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으로 익숙했던 호수였다. 화면으로 여러 번 보았던 곳이지만 실제 풍경은 전혀 달랐다. 햇빛과 구름의 움직임에 따라 물빛은 파랑에서 청록으로 끊임없이 달라졌다. 판공초는 인도와 중국에 걸쳐 있는 호수다. 인도에서는 판공초, 중국에서는 반궁춰(班公错)라고 부른다. 이름은 달랐지만 물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지도 위에는 분명 경계선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호수 어디에도 선은 보이지 않았다. 4박 5일 동안 고개를 넘고, 계곡을 지나고, 사막과 호수를 바라보았다. 차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비포장도로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다. 몸은 지쳤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투어를 마치고 다시 레로 돌아오는 길,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자연에는 국경이 없다.
사람은 산맥을 기준으로 국경을 긋고, 도로에 검문소를 만들고, 여권과 허가증으로 서로의 이동을 구분한다. 그러나 산은 중국과 인도를 구분하지 않는다. 호수의 물도 자신이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바람 역시 검문소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라다크는 정치적 경계가 유난히 선명한 땅이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마주한 산길에는 군인이 있었고, 여행자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경계를 만들어낸 인간이 자연 앞에서는 가장 작아 보였다.
그때의 라다크는 내가 알고 있던 인도 너머의 인도였다. 델리의 소음도, 라자스탄의 사막도, 바라나시의 혼돈도 없었다. 대신 숨이 찰 만큼 높은 고도와 황량한 산, 푸른 호수, 바람에 흩날리는 룽타, 그리고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가 있었다. 그리고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고개에서 마셨던 따뜻한 짜이 한 잔이 있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이상하게 그 짜이의 온기는 오래 남았다.
라다크는 그렇게 내게 ‘한 번 가본 곳’으로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언젠가’가 정말 찾아올 줄은. 그리고 7년 뒤인 2026년 9월,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다시 라다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