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다시, 라다크(1)
그 ‘언젠가’는 7년 뒤에 찾아왔다. 2019년 처음 라다크를 떠나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26년 9월, 나는 다시 델리 공항에서 레(Leh)로 향하는 새벽 비행기에 올랐다. 7년 전에는 대학 후배와 함께 왔지만, 이번에는 아내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첫 라다크 여행과 이번 여행 사이에는 7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었다. 그동안 나도 변했고, 삶도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한 번 가본 곳으로 돌아가는 여행인데도 이상하게 처음보다 더 설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라다크가 아직 그곳에 있을지 궁금했다.
새벽 다섯 시, 비행기가 델리를 떠났다. 레로 가는 비행기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히말라야였다. 7년 전 창밖으로 보았던 설산의 풍경은 라다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여행의 한 장면이 되어 있었다. 델리에서 레로 갈 때는 왼쪽 창가에 앉아야 히말라야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천에서부터 좌석이 자동으로 배정되는 바람에 오른쪽 좌석에 앉게 되었다.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해가 떠오르기 전, 오른쪽 창밖으로 히말라야의 능선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산들이 아침빛을 받아 하나둘 윤곽을 드러냈다. 잠깐의 풍경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레. 공항에 내려 외국인 등록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7년 전에도 보았던 황량한 산과 마른 공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택시에 올라 창밖을 바라봤다. 기억나는 풍경도 있었고, 전혀 낯선 건물도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것이 다시 찾는 여행의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이번 라다크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도착 첫날부터 아내가 고산증으로 힘들어했다. 우리 몸은 해발 3,500미터라는 숫자를 생각보다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첫날은 거의 숙소에서 쉬었다. 다음 날에는 심카드를 만들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아내의 상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택시를 잡아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진료를 받고 산소포화도를 확인하자 수치가 좋지 않았다. 아내는 마스크를 쓰고 약 두 시간 동안 산소를 공급받았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응급실 의자에 앉아 산소 마스크를 쓴 아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이번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다행히 두 시간이 지나 다시 측정한 산소포화도는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병원을 나와 숙소까지 곧바로 택시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의사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 걸음씩 속도를 늦췄다. 숙소로 가는 길, 드래곤 마트에 들러 한국 라면을 몇 봉지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이라는 것이 때로는 거창하지 않다. 히말라야 한가운데까지 와서 가장 반가운 것이 한국 라면 한 봉지가 되는 날도 있다.
셋째 날이 되자 아내의 몸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제야 스쿠터 한 대를 빌려 레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7년이라는 시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던 레는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황량했다. 흙빛 산과 텅 빈 길이 이어졌고,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새로운 건물과 상점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었다. 눈에 띄게 편리해졌다. 그런데 편리해진 만큼 내가 기억하던 풍경은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순간 아쉬웠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도 들었다. 7년이나 지났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여행자의 욕심 아닐까. 우리는 여행지에 추억을 남겨놓고 떠난 뒤, 몇 년이 지나도 그 장소가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7년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다. 그들도 살아가고, 짓고, 고치고, 바꾸며 시간을 보낸다. 변한 것은 라다크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내 일정표보다 아내와 함께 걸을 수 있는 속도가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