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리는 마음-2
아침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디에 저장되어 있다가 나타나는지 글로 써도 말로 녹음을 해도 쏟아지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쩌다 한 가지 생각과 마음이 맞으면 앉은자리에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오늘 아침에는 ‘원형 드로잉’과 마음이 맞았다. 4시간 동안 옴짝달싹하지 않고 앉아서는 목차에 프롤로그까지 단번에 써내려 갔다. 갑자기 숨이 차서 고개를 들어보니 4시간이 흘렀고, 모든 것을 끄고 오롯이 몰입하면서 숨을 잠시 쉬지 않았던가보다. 가끔 이렇게 무언가에 빠지면 주변 상황과 소리뿐만 아니라 숨 쉬는 것까지 잊고 있을 때가 있다.
이어서 첫 꼭지 글을 쓰고 싶었지만 출근을 해야 했다. 이런 상태를 나는 아주 불쾌해한다.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만 이어서 글을 쓸 수 없음이 참 많이 속상하다.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는 순간이 행복하다. 어쩌면 자유롭게 글만 쓸 수 없는 현실이 그 순간을 행복이라 말하게 하고,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함을 더 깊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결핍이 소중함을 알게 한다는 말처럼.
원형 드로잉은 미술치료의 도구 만다라의 다른 이름이다. '만다라'라는 명칭은 티베트 불교의 용어로 '만다'는 중심 또는 본질, '라'는 소유 또는 성취를 뜻한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매일 작은 동그라미에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들이 자신의 내면상태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매일 동그란 그림을 그리던 중 자신의 원형 그림이 불교의 만다라와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미술치료 즉 심리학적 치유 도구로 가지고 와 환자들에게 만다라를 그리게 했다. 만다라는 불교 승려들의 수행도구이지만 융의 치료 연구를 발표하며 미술치료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만다라'는 종교적 색이 짙은 용어이다. 그로 인해 때때로 종교와 무관하게 불쾌감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종종 마주하게 되었다. 한 내담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다라는 불교를 떠올리게 하고, 절에 가면 그려진 무서운 그림들이 생각나서 불편합니다."
뿐만 아니라,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은 타투와 불교 내용이다. 해서 치유 효과가 좋은 만다라를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성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만다라의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던 중 융의 원형과 그림이라는 단어를 더해 '원형 그림'이라고 단순하게 바꿔 보려 했으나 '그림'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한 '드로잉'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원형 드로잉'이 되었다. 원형은 둥근 원을 뜻하기도 하지만 융의 원형의 '본연의 자기'라는 의미를 더해 놓았다.
나는 10대 때부터 50대를 코 앞에 둔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격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에서 30대 때부터 그린 원형 드로잉이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감정을 해소하거나 정리하기 위해 원형드로잉을 거의 매일 그린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삶의 방식을 현실이 허용하지 않는 순간들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나 말로 글로 할 수 없을 때에도 나는 원형드로잉을 그린다. 나로서는 원형드로잉을 그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