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린' 작가님, 따님의 결혼을 축복합니다
- 이국에서 완성되는 축복
- 반평생을 일군 이국의 뜨락
- 거리를 두고 피어나는 사랑
- 비바람 속에서도 웃는 얼굴
소식 하나가 도착했다. 일상의 글 위에 적힌 몇 줄의 소식이었으나,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먼 이국에서 나의 투병을 응원하고 도움을 보낸 분의 딸이 혼례를 치른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읽는 동안 나는 문장보다 여백을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 여백 속에는 말로 다 옮기지 못한 세월이 조용히 접혀 있었다.
헤아려보면 반평생 가까운 시간이다. 그분이 낯선 땅 캐나다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녀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언어는 낯설었고, 계절은 몸에 맞지 않았으며, 마음 둘 곳조차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겨울은 유난히 길고 어두웠을 것이고, 모국어로 울음을 삼킨 밤도 여러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척박한 땅에 조용히 뿌리를 내렸다. 서두르지 않았다. 다만 매일 조금씩, 기도로 흙을 고르고 섬김으로 물을 주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계절을 살아냈다. 그렇게 반평생이 흘렀다.
그 뿌리에서 오늘, 새로운 가지 하나가 피어난다. 뿌리가 깊을수록 가지는 멀리 뻗는다 했던가. 딸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축복은 한 쌍의 젊은이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 이국에서 묵묵히 씨를 뿌려온 한 사람의 생애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나는 그동안 받아온 것들을 가만히 헤아려본다. 낯선 이방인에게 건네진 따뜻한 말 한마디, 지친 걸음을 붙잡아준 손길들, 이유를 묻지 않고 내어준 시간들. 그것들은 청구서 없이 건네진 마음이었기에, 나는 오래도록 그 값을 셈하지 못했다. 갚을 길 없던 그 마음을, 이제 축복의 언어로나마 돌려드리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바카라 두 권과 낡은 영화 한 편을 다시 꺼내 들었다.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반평생 걸어온 그 걸음을 어떤 말로 배웅해야 할지, 그리고 그 걸음 끝에서 피어난 오늘의 경사를 어떤 말에 담아야 할지를 궁리하기 위해서였다.
바람이 지나는 자리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The Prophet, 1923)에서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는 서지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나니.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다소 냉정하게 느껴졌다. 사랑한다면서 어찌 거리를 두라 하는가. 그러나 되짚어보면 이는 냉정이 아니라 지극한 존중이다. 사랑이 왜 거리를 요구하는가, 그 물음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답은 뜻밖에도 단순한 자리에서 나온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늘 아래 포개어지면, 한쪽은 반드시 빛을 잃는다. 사랑이란 상대를 내 그늘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하늘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분의 삶이 그러했으리라. 그녀는 자녀를 자신의 신념 안에 가두지 않았다. 이국의 낯선 바람 앞에서도, 아이들 각자가 스스로 뿌리내릴 자리를 찾도록 곁에서 지켜보았을 뿐, 그늘로 덮어 가리지 않았다. 자식을 자신의 신앙 언어로 옮겨 심으려 하지 않고, 저마다의 토양에서 저마다의 잎을 틔우도록 기다려준 그 인내를 나는 그분의 소박하지만 깊은 글로 지켜보았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 그것이 그녀가 반평생 몸으로 가르쳐온 신앙의 언어였을 것이다. 결혼하는 딸 역시 그 바람의 정신을 물려받았으리라 믿는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반드시 틈이 있어야 지붕이 무너지지 않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반드시 하늘이 있어야 숲이 이루어진다. 그 틈과 그 하늘은 결핍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다. 두 사람이 오늘 나란히 서는 그 자리에도, 서로의 결을 아끼는 거리가, 서로의 빛을 가리지 않는 여백이 함께 서기를 바란다. 그 여백 사이로 하늘의 바람이 춤추듯 지나가기를, 그리하여 두 사람이 서로에게 그늘이 아니라 빛이 되어주기를.
고독을 지키는 자리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Briefe an einen jungen Dichter)에서 결혼의 본질을 이렇게 적었다.
결혼은 서로가 서로의 고독을 지켜주는 일이다.
사람은 본디 혼자 건너야 할 강을 지닌 존재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대신 건네줄 수 없는 밤이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그 강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릴케는 그 사실을 회피하지 말라 한다. 다만 그 고독의 곁에 조용히 서서, 불을 밝히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라 한다. 강을 대신 건너줄 수는 없어도, 강가에 함께 앉아줄 수는 있다는 것. 그것이 릴케가 말한 사랑의 최소한이자 최대한이었다.
그분과 부군의 목회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국땅에서 언어도 다르고 사연도 제각각인 이들의 고독 곁을 오래 지켰던 삶. 누군가는 그것을 섬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소명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그저 곁을 지키는 일이라 부르고 싶다. 그녀는 누군가의 외로움을 함부로 들여다보거나 재촉하여 걷어내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 곁에 머물렀다.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나는 이제야 조금 헤아린다. 타인의 고독을 지켜준다는 것은, 자신의 고독 또한 오래 견뎌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새 가정을 이루는 두 사람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그림자까지 걷어낼 수는 없다. 다만 그 그림자 앞에 함께 앉아줄 수는 있다. 서로의 외로움을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그저 지켜봐 주는 것, 그 조용한 파수가 쌓여 결국 무너지지 않는 신뢰가 된다. 상대를 온전히 알겠다는 조급함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오랜 신뢰가 자리 잡는다. 어머니가 평생 이웃의 고독 곁을 지켰듯, 이제 딸이 한 사람의 고독 곁을 지키는 자리에 선다. 대물림된 것은 재산이 아니라 그 자세, 그 자체다.
비바람 속에서 완성되는 세계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에는 잊히지 않는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야외에 마련된 예식장에 갑작스레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막은 날아가고, 신부의 드레스는 흙탕물에 젖는다. 완벽해야 할 하루가 순식간에 엉망이 된 것이다. 신랑 팀이 젖은 신부에게 묻는다. 다른 날을 골랐어야 했을까. 메리는 망설임 없이 웃으며 답한다.
아니, 모든 것이 완벽했어.
그 장면에 흐르던 노래, 엔리코 마시아스의 Il Mondo를 떠올린다.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 노래는 나직이 말했다.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면서 동시에 다행한 일이다. 멈추지 않기에 오늘의 슬픔도 지나가고, 멈추지 않기에 오늘의 기쁨도 다음 기쁨으로 이어진다.
결혼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맑은 날씨인가. 아니다. 결혼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은 맑은 날씨가 아니다. 삶에는 반드시 예정에 없던 비가 내린다. 그분이 이국에서 건너온 세월에도 숱한 비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낯선 언어 앞에서 말문이 막히던 날, 그리움을 삼키며 넘겨야 했던 밤들. 그러나 그 모든 빗속에서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오늘 그 자리에 딸의 웃음이 피어났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오히려 더 단단한 뿌리가 남듯이, 견뎌낸 세월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예식을 올리는 두 사람에게도 언젠가 예정에 없던 비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 부디 서로의 젖은 손을 마주 잡고, 흙탕물 튄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기를. 완벽한 날이 아니라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두 사람 사이에 늘 함께하기를.
멀리서나마 이 결혼식을 지켜보며, 나는 감사한 그분이 처음 이국의 흙을 밟던 그 날의 발걸음을 다시 떠올린다. 그 막막했던 걸음이 있었기에 오늘의 웃음이 가능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기억하고 싶다. 두 그루 나무가 나란히 서서 하나의 숲이 되고, 서로의 고독을 지키는 두 등불이 꺼지지 않으며, 어떤 비바람 속에서도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나날이 되기를. 반평생 이국의 뜨락을 일구어온 그 수고에, 오늘의 이 축복을 삼가 돌려드린다. 두 사람의 앞날에 하늘의 바람이 늘 다정하게 머물기를, 그리고 그 바람이 지나는 자리마다 오래도록 이 세계가 다정하기를, 진심을 다해 빈다.
(※ 큰 축하를 드리고 싶지만, 변변치 않은 글로 축하의 말씀드립니다. 도린 작가님, 따님의 기쁜 성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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