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은행나무, 노랗게 변한 5월의 잎
- 환기 미술관의 백년 은행나무 죽이기
- 담장 안의 예술, 담장 밖의 죽음
- 장소가 사라지는 방식
나무는 말이 없다. 그것이 나무의 위엄이다. 수백 년을 견딘 것들은 대개 그러하다. 말을 아끼는 대신 해마다 잎을 피우고 잎을 떨군다. 피고 지는 일이 나무의 언어다. 사람들은 그 언어를 읽지 못한다. 그래도 그 언어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한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골목 어귀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수령은 족히 백 년, 어쩌면 이백 년에 가까웠다. 서울이 일제의 도시계획 아래 뜯겨 나갈 때도,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때도 그 자리를 지켰다.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산허리를 깎고 아파트를 세울 때에도 골목의 하늘을 떠받쳤다. 나무는 역사를 등에 지지 않는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서 있음은 종종 역사보다 오래 남는다.
5월이었다. 푸른빛이 무르익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잎의 절반가량이 노랗게 변했다. 땅에는 가을처럼 낙엽이 쌓였다. 계절이 어긋난 것이다. 자연에서 계절의 어긋남은 대개 폭력의 흔적이다. 주민들은 처음엔 병을 의심했을 것이다. 나무도 병든다. 오래 산 것들은 때로 예고 없이 쓰러진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치는 아니었다.
4월 22일 오전 9시. 누군가 드릴로 몸통에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했다. CCTV가 그 장면을 기록했다. 인간의 도구가 인간의 범죄를 증명하는 시대다. 백 년 넘게 살아온 나무에 드릴을 들이댄 손이 있었다. 그 손은 독을 밀어 넣었다. 제초제는 뿌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무는 말이 없으므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5월의 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모습, 그것이 비명의 전부였다.
범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있었다.
수화(樹話)의 집에서 들려온 침묵
환기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를 기리기 위해 1992년 부암동에 문을 연 사립미술관이다. 김환기 사후, 부인 김향안이 설립한 환기재단을 바탕으로 운영되어 왔다.
김환기의 호는 수화(樹話). 나무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그는 이 호를 각별히 아꼈다. 작명의 사연을 직접 글로 남길 만큼 애정이 깊었다. 나무와 대화하는 사람. 그것이 화가 김환기가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그는 산과 강, 달과 학, 매화와 달항아리 같은 자연과 전통의 소재를 절제된 조형 언어로 빚어냈다. 한국적 정서와 미감은 그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자연은 예술의 뿌리였고, 나무는 그 뿌리를 상징했다.
뉴욕의 양지바른 언덕배기, 참나무와 단풍나무 고목들 사이에 수화가 잠들어 있다. 죽어서도 별을 헤며 나무들과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는 말이 전한다.
그 수화의 이름을 단 미술관이 나무를 죽였다.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아이러니라 부르기에는 너무 참담하다. 아이러니는 언어의 유희다. 그러나 이것은 유희가 아니라 배반이다. 수화(樹話)라는 이름 아래 독이 주입됐다.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던 집이 나무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영구적인 침묵. 죽음의 침묵이었다.
미술관 측의 해명은 이러했다. 뿌리가 담장 아래로 파고들어 균열을 만들었고,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청과 토지 소유주들을 접촉했고 내용증명도 보냈다고 했다. 들을 만한 사정이다. 뿌리는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콘크리트도 가른다. 생명의 시간과 인간의 구조물이 충돌하는 일은 오래된 도시에서 흔히 벌어진다.
그러나 서울환경연합과 주민들의 설명은 달랐다. 종로구청이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식 기관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그 나무는 수나무였다. 은행나무 암수 가운데 수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 악취도 없다. 민원의 명분으로 내세울 냄새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본질은 담장이 아니다. 두려움이다. 미술관이 두려워한 것은 균열 자체가 아니라 자기 공간을 침범하는 타자의 존재였는지 모른다. 그 나무는 소유권이 불분명한 공유지에 서 있었다. 2025년 소유 현황을 확인한 결과 소유주는 45명으로 늘어났다. 45명. 다수의 소유는 때로 무소유와 다르지 않다. 누구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은 쉽게 아무의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미술관은 그 틈으로 들어갔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니 먼저 처리하겠다는 논리. 그 논리의 끝에 드릴이 있었고 제초제가 있었다.
예술을 보존하는 기관이 생명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 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살아있는 화석과 죽어가는 나무
은행나무는 특별한 나무다. 인문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존재론적으로도 그렇다.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공룡이 지구를 거닐던 시대부터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빙하기를 지나고 대멸종을 건넜으며, 히로시마의 원폭도 견뎌냈다. 히로시마에서 폭심지로부터 불과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은행나무 여섯 그루는 1945년 8월 핵폭발 이후에도 살아남아 이듬해 봄 새싹을 틔웠다. 인간이 만든 가장 극렬한 파괴 앞에서도 생명을 이어간 것이다. 일본인들은 그 나무를 희망의 나무라 불렀다.
그러나 부암동의 은행나무는 드릴 앞에서 쓰러지고 있다.
핵폭발을 견딘 생명이 드릴 하나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것은 나무의 패배가 아니다. 인간 의지의 집요함에 관한 이야기다. 자연의 재해는 무차별적이다. 반면 인간의 파괴는 목적을 가진다. 목적을 품은 파괴는 생존 본능만큼이나 끈질기다. 백 년의 뿌리보다 드릴을 쥔 손의 의지가 더 강했다. 그것이 이 사건이 남긴 씁쓸한 진실이다.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 가르침의 자리를 행단(杏壇)이라 불렀고, 이후 행단은 학문과 교육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나라 성균관과 향교에 은행나무가 심어진 것도 그 전통에서 비롯됐다. 은행나무는 단순한 수목이 아니었다. 지혜와 인내, 교육의 상징이었다. 오래된 것을 공경하고 지식을 전승하며 세대를 잇는 가치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 상징의 나무에 독이 주입됐다.
상징은 독을 이기지 못한다.
환기미술관은 결국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사과문에 제초제 사용 경위와 복구 대바카라, 피해 회복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았다며 추가 조치를 요구했다.
사과문이란 무엇인가. 잘못을 인정하고 바카라임을 약속하는 언어다. 그러나 미술관은 치료에 필요한 약제명과 주입량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신뢰하기 어려운 태도였다. 사과문은 있으나 약제명은 없다. 반성의 언어는 있으나 바카라임의 행동은 없다.
이런 사과를 과연 사과라 부를 수 있는가.
이것은 사과의 형식을 빌린 방어에 가깝다. 잘못을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생명을 살릴 정보는 감추고 있다.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그 죽음을 막을 단서를 손에 쥔 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이 미술관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그림은 남고 세계는 사라진다
예술을 보존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기관의 사과가 이러하다.
예술과 생명 사이의 거리가 이토록 멀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보여준다.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이 생명에 대한 경외에서 시작된다고 말해왔다. 수화 김환기도 그런 예술가였다. 그는 자연에서 형태를 빌렸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나무와 대화한다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품은 공간은 정작 그의 정신을 배반하고 있다. 미술관은 김환기를 보존하지만 김환기의 세계는 보존하지 않는다. 그림은 걸려 있으나, 그림이 말하던 것은 담장 밖에서 죽어가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사라지도록 두어야 할 것과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전자는 권력이고 욕심이며 자기 보존에 대한 집착이다. 후자는 오래된 나무이고, 공동의 기억이며, 세대를 이어온 장소다.
부암동 주민들이 그 은행나무를 아낀 이유는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오래 살아왔다는 증거. 이 동네가 개발의 논리에 밀려 변하기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증거였다.
나무는 문서가 아니다. 그러나 나무보다 정직한 기록도 드물다. 나이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기록을 지우려 한 것이다.
제초제가 스며든 것은 줄기만이 아니었다. 함께 지워지려 했던 것은 장소의 기억이었다. 공동체가 지나온 시간이었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그것들은 편의라는 이름으로, 담장 보호라는 이름으로, 절차상의 난관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났다.
인간의 욕심은 늘 이름을 갖는다. 안전. 보존. 절차.
그 이름들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이름들 뒤에서 드릴은 돌아가고 있었다.
드릴 자국 위에 남은 말
수화(樹話). 나무의 말.
나무는 지금도 말하고 있다. 5월에 노랗게 물든 잎으로, 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잎자루로, 뿌리 근처에 남은 구멍의 상처로. 그것이 나무가 보내는 마지막 언어다. 수화 김환기라면 그 언어를 읽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안에 그 능력을 새겨두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건 집은 읽지 못했다.
아니, 읽고도 외면했다.
나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잃는가. 나무 한 그루만 잃는 것이 아니다. 백 년 된 것을 백 년 된 것으로 대하는 감각을 잃는다. 오래된 것 앞에서 잠시 멈춰 서는 마음을 잃는다. 도시는 그런 감각을 잃을 때마다 조금씩 황폐해진다. 건물은 높아지고 도로는 넓어진다. 그러나 그때마다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사라진다. 그것을 정확히 무엇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없는 도시는 주소만 있을 뿐 장소는 없는 곳이 된다.
부암동의 그 은행나무는 장소였다. 이제는 죽어가는 나무가 되었다. 그러나 죽어가는 나무도 여전히 나무다. 그 자리에 서 있는 한 여전히 장소다. 다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민들은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타인 소유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해 고사 위기에 이르게 한 행위는 재물손괴 혐의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법률 대리인의 판단이다. 법이 개입할 것이다. 법은 나무를 재물로 규정한다. 재물을 손괴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무는 재물이 아니다. 재물 이전에 생명이고, 생명 이전에 시간이다. 백 년의 시간을 재물손괴죄로 다루는 데서 법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렇다고 그 한계를 탓할 수는 없다. 법은 언어로 만들어지고, 언어는 시간을 재물로 완전히 번역하지 못한다.
그 나무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서울환경연합은 즉각적인 응급조치와 서울시 보호수 지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미 스며든 독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미술관은 치료를 말하면서도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내놓지 않는다. 나무는 그 사이에서 독을 삭이고 있다.
은행나무는 강인하다. 히로시마를 버텨냈다. 그러나 드릴과 제초제, 그리고 침묵이 결합한 인간의 악의 앞에서 이번에도 버텨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수화가 말을 잃은 것은 아니다.
수화의 이름을 건 집이 나무의 말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그 말이 끊기지 않기를 바란다. 말이 끊기면 이야기도 끊긴다. 이야기가 끊기면 장소도 사라진다. 장소가 사라지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나무는 말이 없다. 그것이 나무의 위엄이다.
지금 그 위엄이 드릴 자국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