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월세에 산다고?

by무 지 개

스웨덴에서 급하게 살림을 정리하고 잠깐만 있겠다던 친정에서 2년이나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번 아웃이 왔던 지수는 서울에서 아이들 학교를 등록하고 겨우 숨만 붙이고 살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사람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랐다. 심지어 가족과도 붙어 있고 싶지 않았지만 애미로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매일이 고통이었다. 그녀의 친정 부모님에겐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억지로 괜찮은 척을 했다. 유명한 대기업에 다니던 딸이 승승장구해서 임원까지 성장하기를 바라던 부모님이셨다. 그래서 손주들을 손수 팔을 걷어부치고 키우셨던 분들이었다. 어느날 지수는 친정 아빠의 수첩에서 그녀가 회사를 나오고도 그가 매년 연말에 언론에 보도되는 사장단 명단을 확인하며 새로운 사장의 이름을 기록한 것을 보게 되었다.

" 아빠, 이건 왜 적어 놓은거야?"

"응, 우리 딸이 다시 이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당신이 계속 친정에 있고 싶어하면 난 당신과 이혼할 거야"

지수의 남편은 말이 쎄다. 특히 의견이 안맞을 때면 말로 강강강을 밀어부치는 사람이다.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느냐, 아니면 계속 친정 동네에 살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녀는 주저 앉고 싶었다. 뭐라도 하고 싶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남들이 보면 팔자 편하다라고 할만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말 팔자가 편한지는 그 상황이 되어 봐야한다. 그녀에겐 새로운 동네를 찾아보는 것도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집을 구하는 일 모두가 스트레스였다. 쭉 살던 그 동네가 지겹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 중학교 배정을 위해 한달 만에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도 힘든 사람에게 마라톤에 출전하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남편이 이혼을 운운하며 말하니 친정 살이를 끝내야 했다.


지수는 집을 알아보는 일을 가장 싫어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임대인과 세입자 간의 알게 모르게 있는 기 싸움이 싫고 그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부동산과의 관계도 싫어한다. 솔직히 모든 걸 다 까놓고 그녀가 세입자라는 사실이 제일 싫다. 내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른다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끼워 맞춰 집을 선택하고, 맘에 들지 않은 내부 구조와 인테리어지만 어마어마한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주면서도 을의 입장인 상황이 싫은 것이다. 지수는 전세 자금으로 얼마를 대출 받아야 하나를 두고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난 월세로 살건데?"

"....응?!! 뭐라고?"

"은행 대출 받아서 집주인에게 돈 주느니 차라리 내 돈 투자해서 돈을 불려가며 월세로 주는게 낫지"


지수는 남편이 서울에서 월세를 산다는게 제정신인가 싶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경제권이 없는 그녀의 의견은 그저 의견일 뿐이다. 경제권이 없다는 것은 초라한 일이다. 마트 장을 볼 때나 소소하게 커피를 마실때도 은근히 돈 버는 사람의 눈치를 스스로 보게 된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집 안의 모든 일을 담당하는 일이야 말로 집 밖에서 돈 버는 일보다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강도가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놈의 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초라해지다니. 지수에게 돈은 자존감이었다. 그 놈의 돈이 지금은 그녀의 상전이 되었다. 한 달에 몇 백씩이나 되는 렌트비에 공과금에 애들 학원비와 생활비를 내게 되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가 무섭다. 그 생각을 할 때 마다 그녀의 머리는 아파서 돌이 된 것 마냥 딱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