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다음 세대에 어디로 향할까

by루니

얼마 전 차 안에서 아들과 신호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작 1분 남짓이었는데, 아이는 그새를 못 참고 태블릿을 꺼내 짧은 영상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문득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그 시절 신호 대기 1분이면 창밖을 멍하니 보거나 창문에 낙서를 하며, 딱히 할 게 없어 심심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안 하는 1분'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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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카라을 시작하며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장르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만든다고.

2000년대의 우리는 성장과 연결에 목말라 MMORPG를 만들었고, 피로에 지친 우리는 방치형 게임에서 위안을 찾았고, 최적화에 숨 막힌 우리는 로그라이크에서 다시 우연을 갈망했습니다.

결국 모든 유행은 그 시대가 결핍한 것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한 세대 앞으로 던져보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부족한 것 없이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아이들은 대체 무엇에 목말라하게 될까요.


언뜻 이상한 질문처럼 들릴 겁니다.

적어도 콘텐츠와 정답에 닿는 속도만큼은 역사상 가장 빠른 세대일 테니까요.

유튜브는 손가락을 까딱하기도 전에 다음 볼 것을 대령하고, 알고리즘은 멈추기도 전에 다음 선택지를 내밉니다.

심심할 틈도, 기다릴 틈도, 헤맬 틈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이 지점이, 다음 세대가 마주하게 될 새로운 결핍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가 성장과 연결과 우연을 갈망했던 건, 그것들이 삶에서 하나씩 사라져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에게 낯설어진 건, 결핍 그 자체보다 답이 돌아올 때까지 오래 기다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한 시간 뒤, 멀게는 몇 년 뒤의 나를 위해 오늘의 공백을 견디는 일 말입니다.


사실 결핍은 그리 낭만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가난도 불안도 다 결핍이고, 사람을 키우기보다 무너뜨릴 때가 더 많으니까요.


그래서 조금 다르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이 훗날 사무치게 원하게 될 건 결핍 자체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대신 골라주지 않은 '내 선택', 시간을 들여야만 남는 '노력의 흔적', 복제되거나 되돌려지지 않는 '한 번뿐인 경험'일 겁니다.

다음 세대는 불편함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자기 손자국이 남는 경험에 목말라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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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와 17화에서, 아들이 며칠에 걸쳐 냥코대작전의 어려운 스테이지 하나를 붙들고 씨름했던 이야기를 드렸었죠.

그때 저는 작은 희망을 봤습니다.

모든 게 즉각 주어지는 환경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진짜 어려움과 진짜 성취를 원하고 있었거든요.

기획자의 눈으로 보면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 게임에는 실패를 견디고 다시 시도해야 뚫리는 구간이 있었고, 무엇보다 바로 앞의 목표와 진행도가 눈에 보였으니까요. 목표가 보이니 며칠이고 매달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삶의 먼 꿈에는 그런 퀘스트 창도, 진행도 막대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남편은 가끔 아이를 제 남동생과 비교하곤 합니다. "네 남동생도 어릴 때 딱 이랬잖아"라면서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제 남동생은 어릴 때 호기심이 참 많은 아이였거든요. 게임기든 컴퓨터든 손에 잡히는 대로 분해했다 다시 조립해보고, 뭔가를 스스로 완성했을 때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동생을 보고 있으면, 예전의 그 반짝임이 어디로 갔나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잘못 살아서가 아닙니다. 그저 생존을 위해 직업을 옮기고 돈을 모으는 하루하루가 너무 무거워서, 좋아하던 걸 말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이걸 떠올리면 방금 제가 말한 희망이 조금 흔들립니다. 어릴 때 그렇게 반짝이던 호기심도, 생존이라는 무게 앞에서는 얼마든지 조용히 숨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기획자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생존을 위한 외적 압력이 커지면, 좋아서 하던 일 같은 내적 동기는 슬그머니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8화에서 함께 본 보상 설계의 그림자, 외적인 것이 내적 동기를 밀어내는 장면이 가장 씁쓸하게 펼쳐지는 순간이죠. 저는 그걸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제 두 아이도 매일 다른 얼굴을 합니다. 어떤 날은 유튜브에서 본 걸 집에 와서 기어이 만들어보겠다며 온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어떤 날은 멍하니 게임을 하거나 웃긴 영상으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같은 아이인데도요. 그 차이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차이는 결국 그 순간에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마음에 남았느냐 아니냐에서 생기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자면, 다음 세대가 어른이 되어 열광할 시스템은 지금 우리가 편리함이라 부르는 것들과 정반대편에 서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획자로서 저는 그 방향을 세 가지로 그려봅니다.

먼저 선택의 무게, 그리고 주도권입니다. 알고리즘 추천의 홍수 속에서 자란 이들은, 오히려 선택지가 의도적으로 제한된 경험에 갈증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접속할 수 있는 게임, 정해진 시간에만 문이 열리는 콘텐츠처럼요. 남이 골라준 다음이 아니라, 제한된 기회를 어디에 쓸지 스스로 정하고 감당하는 세계 말입니다.

다음은 노력의 흔적입니다. AI가 모든 정답을 대신 찾아주는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반대로 AI의 개입이 차단된 채 사람 대 사람으로 겨루고, 내가 들인 시간이 그대로 실력으로 쌓이는 공간을 더 값지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은 되돌릴 수 없음입니다. 무엇이든 복제되고 무한히 재생산되는 디지털 세계에서 자란 이들은, 같은 사람들과 같은 순간에 단 한 번만 겪을 수 있는 경험에 지금 우리보다 훨씬 깊은 애착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건 한 명의 기획자가 조심스럽게 던져보는 가정일 뿐입니다. 다음 세대가 실제로 무엇에 목말라할지는, 어쩌면 결핍이 뭔지 아는 제 세대의 눈으로 재단한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부모로서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모든 결핍을 미리 없애주는 것이 꼭 사랑의 완성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가끔은 아이가 지루해하도록, 기다리도록, 원하는 걸 바로 얻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훗날 아이가 자기만의 먼 목표를 품고, 그걸 오래 붙들며 자기 손으로 채워나갈 여백을 남겨주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동생을 보며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여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 여백에서 피어난 마음이 생존의 무게에 짓눌려 꺼지지 않으려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안전망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즉시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되, 무너지지는 않을 자리는 남겨주는 일 말입니다.

어쩌면 다음 세대에게 더 중요한 건, 무엇을 갈망하느냐보다 그 갈망을 먼 시간 끝까지 지켜내느냐일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저도 아직 이 답을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게임이라는 렌즈로 세 세대에 걸친 욕망의 흐름을 함께 따라와 봤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 여정을 마무리하며, 톱니바퀴처럼 시스템에 끌려다니는 대신 스스로 삶의 밸런스를 짜는 기획자로 서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9화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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