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허용하는 시스템이 위대한 이유

by루니

밸런스를 만지다 보면 꼭 마주치게 되는 오래된 논쟁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페널티'를 얼마나 무겁게 설계할 것인가입니다.


제가 처음 이 업계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MMORPG에서 죽는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사망하면 경험치가 왕창 깎이고, 심하면 들고 있던 아이템이 바닥에 뚝 떨어져서 남이 주워갈 수도 있었죠.

죽음은 곧 손실이었고, 유저들은 그 손실이 두려워서 늘 몸을 사렸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구간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조금만 애매해도 로그아웃을 하고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정확히 이 무거운 페널티를 고집했던 게임들이 하나둘 유저를 잃어가는 걸 지켜봤습니다.

반면 죽어도 그 자리에서 가볍게 부활하고, 잃는 건 약간의 시간뿐인 게임들이 오히려 더 오래, 더 널리 살아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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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저도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페널티가 없으면 유저들이 긴장감을 잃고 금방 질려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실제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정반대였습니다.

죽음의 비용이 낮아지자, 유저들은 오히려 훨씬 과감해졌습니다.

애매한 구간에도 일단 몸을 던졌고, 새로운 스킬 조합을 겁 없이 시도했고, 실패해도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웃으며 다시 도전했습니다.

실패의 비용을 낮췄더니, 역설적으로 유저들의 도전 총량 자체가 늘어난 겁니다.


16화에서 아들이 냥코대작전 우주편 보스를 며칠에 걸쳐 깼다는 이야기를 드렸었죠.

돌이켜보면 그 게임이 만약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키워야 하는 구조였다면, 아이는 아마 이틀도 안 돼서 포기했을 겁니다.

실패해도 잃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이는 부담 없이 유닛 조합을 계속 바꿔볼 수 있었던 거죠. 좋은 실패 시스템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설계였던 셈입니다.


이 원리를, 저는 제가 진행하는 심화 강의에서도 비슷하게 적용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엔 수강생들이 밸런스 시트를 짜서 발표할 때, 저는 틀린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방식으로 피드백을 줬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사람들은 발표 시간에 점점 위축됐고, 확신이 없는 아이디어는 아예 꺼내지도 않게 되더군요.

실패의 비용이 너무 컸던 겁니다. 틀리면 곧바로 지적받고 체면이 깎이니까요.


그래서 방식을 바꿨습니다.

틀린 답을 지적하는 대신, "이 설계라면 어떤 상황에서 문제가 생길까요?"라고 다 함께 되짚어보는 시간으로 바꿨죠.

틀린 것 자체를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다 같이 나눠볼 만한 유용한 데이터로 취급한 겁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수강생들이 훨씬 과감한 아이디어를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틀려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기니, 오히려 더 좋은 답에 가까이 다가가더군요.


좋은 시스템은 실패를 없애지 않습니다.

실패의 '비용'을 낮출 뿐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의 행동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그런데 이 원리를 정확히 반대로 오해하고 있는 시스템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정과 학교입니다.

부모도, 학교도 아이에게 실패 없는 탄탄한 길을 닦아주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너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로, 부모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아이가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실패를 발판 삼아 아이만큼은 실패하지 않을 길로 미리 안내합니다.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걸 압니다. 저 역시 아이 앞에서 수도 없이 그 유혹에 흔들렸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실패의 '비용'을 낮추는 게 아니라, 실패할 '기회' 자체를 통째로 없애버리는 겁니다.

7화에서 말씀드렸던 그 게임 속 '자동 이동' 버튼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헤맬 틈도, 잘못된 길로 들어설 위험도 모조리 지워버리고 목적지까지 곧장 데려다주는 것. 유저가 그 여정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이도 자기가 직접 걸어본 적 없는 길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각도 남기지 못합니다.


그렇게 부모와 학교가 정답이라 믿는 길을 계속 먼저 깔아주다 보면, 슬롯 전체가 스스로 답을 찾는 대신 이미 정해진 정답을 답습하고 모방하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12화에서 제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왜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드렸었죠.

돌이켜보면 그것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패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은, 자기만의 질문을 가질 기회도 함께 잃어버리니까요.


정답을 그대로 따라간 인생은 안전해 보일지 몰라도, 그 끝에는 이상하게 '나'라는 감각이 잘 남아있지 않습니다.

3화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누군가 대신 키워준 성장은 숫자는 채워주지만, "내가 이걸 해냈다"는 성취의 감각까지는 채워주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슬롯는, 가정과 학교에서는 실패의 기회 자체를 지워버리면서, 정작 슬롯에 나온 뒤에는 정반대로 실패의 비용을 지나치게 높여버립니다.

11화에서 말씀드렸던 제 오르페우스 지원,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지원 하나를 준비하는 데 저는 몇 주를 쏟았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새로 짜고, 언리얼을 다시 익히고, 밤을 새워가며 서류를 다듬었죠.

그런데 돌아온 건 일주일 만의 탈락 메일 한 통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현실이 게임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게임 속 죽음은 대부분 가볍게 부활할 수 있지만, 현실 속 실패는 그 준비 과정에 들어간 시간과 감정을 고스란히 태워버립니다.

이력서 하나, 면접 하나에 실패할 때마다 우리는 몇 주치의 노력과 자존감을 한꺼번에 잃습니다.

실패의 비용이 이렇게까지 비싸니, 사람들이 위험해 보이는 도전을 피하고 안전한 길로만 몸을 사리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슬롯를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고 싶다면, 저는 그 답이 '실패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비용을 낮추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넘어질 기회 자체를 미리 다 치워버리는 것도, 어른이 된 뒤 단 한 번의 실수를 영원한 낙인으로 만드는 것도, 결국 같은 실수입니다.

한 번의 실수로 영원히 낙인찍히지 않는 조직 문화, 한 번의 사업 실패로 인생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슬롯 안전망, 한 번의 오답으로 체면을 잃지 않는 교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온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과감하게, 더 자주 도전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엔진입니다.


19년간 시스템을 설계하며 제가 배운 가장 역설적인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저를 겁주고 몰아붙이는 시스템은 단기적으로는 긴장감을 줄지 몰라도, 결국 사람들을 도전에서 멀어지게 만듭니다.

반대로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시스템은, 사람들이 스스로 더 멀리, 더 위험한 곳까지 걸어가 보게 만듭니다.


저 역시 그날의 탈락 메일을 여전히 아프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실패의 비용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한 번의 결과로 제 19년 전체를 평가하지 않는 것. 다음 지원을, 이전보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실패를 껴안는 법을 배운 우리 세대의 욕망이, 앞으로 다음 세대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결핍을 안고, 또 어떤 시스템에 위안을 얻으며 자라나게 될까요.

18화에서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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