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이 쉬어 갑니다
누구나 한 번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선망의 마음을 품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이 원하고, 마치 그곳에 닿아야 제대로 살고 있다고 여길 때 더 그렇지요.
제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모습이 있었지만 워낙 바늘구멍이라 번번이 미끄러졌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서는 같은 물음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 당시에는 그 물음이 실패자의 넋두리처럼 느껴져 속앓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물음은 다른 길로 안내하는 입구였습니다. 내 계획이 멈춘 자리에서, 다른 길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김규정의 그림바카라 《새 그림자》에는 무리에서 떨어진 새 그림자가 나옵니다. 새 그림자는 자신이 날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런 믿음을 가진 다른 새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부신 노을을 바라보다 그만 무리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자기 자리에는 다른 그림자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새 그림자는 날 수 없으면 새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새로운 무리를 찾으려다가, 문득 자기 힘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들판과 바다, 강과 산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늘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풍경들을 처음으로 마주합니다. 날아가는 동안에는 보지 못한 풍경들이었지요. 긴 여행을 마친 새 그림자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꼭 무리를 찾아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는 또다시 모험을 떠납니다. 이후 새 그림자는 이전의 무리로 돌아가지 않아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아름다운 노을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새 그림자는 ‘새의 그림자’가 아니라 ‘그림자 새’로 다시 태어납니다.
정호승 시인의 〈나무에 대하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시인은 그 이유를, 함박눈이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이고, 그늘도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새 역시 더 많이 날아와 앉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의 굽은 나무 예찬은 계속됩니다.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굽은 나무는 굽어졌기에 더 많은 눈을 받아내고, 더 깊은 그늘을 만들고, 새들이 쉬어갈 자리를 내어줍니다. 자기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마저 싫어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삶을 긍정합니다. 새 그림자 역시 한때 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부끄러웠지만, 날 수 없었기에 들판을 달리고, 강의 색을 마주하고, 산의 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온전히 자신으로 거듭납니다.
남들이 가는 길에 닿지 못했을 때 우리는 쉽게 뒤처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미끄러진 자리에서 다른 풍경이 열리고, 돌아온 길 위에서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납니다.
어쩌면 뜻대로 되지 않아 돌아온 길과 미끄러져 다시 시작한 자리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조용하고 단단한 가지였는지도 모릅니다.
[작은 명상]
오늘 내가 미끄러졌다고 여긴 자리를 떠올려봅니다.
그 자리가 나에게 보여준 다른 풍경은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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