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로 살아가는 일

오늘, 마음이 쉬어갑니다

by심월


가끔 지인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도, 대화는 곧장 건강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누가 정해놓은 순서도 아닌데 어느 모임이나 그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흥미롭지만 씁쓸하기도 합니다. 건강이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 그럴 테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이 비슷한 걱정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우리는 강가의 조약돌처럼 되어갑니다. 뾰족하던 끝은 닳고, 거칠던 면은 매끈해집니다.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순해졌다는 건 무난하게 살아왔다는 징표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속하려면 어느 정도 다듬어지는 일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너무 많이 풍화되어버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림바카라 《내가 늑대였을 때》를 읽고 나서의 마음도 그랬습니다. 이 그림바카라의 화자는 자신이 늑대였던 시절을 들려줍니다. 늑대였을 때 그는 밤이면 지붕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고, 지붕 사이를 훌쩍 뛰어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면 화가 나서 울부짖었습니다. 씻지도 않고, 이빨도 닦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했지요.


사람들은 그런 그를 지긋지긋해합니다. 남들이 깨어 있을 때는 자고, 세상이 조용할 때는 떠들어대는 제멋대로인 늑대였으니까요. 사람들은 결국 사냥꾼까지 불러 그를 감시합니다.


무서워진 늑대는 조금씩 변합니다. 털은 짧아지고, 이빨은 작아지고, 목소리는 부드러워집니다. 마침내 그는 학교에 가고, 바카라가방을 메고, 자기 바카라상에 앉아 공부하는 얌전한 아이가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려면 누구나 다듬어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내 마음대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내 자유가 누군가의 밤을 깨울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배우고, 내 욕구를 조율하는 법을 배워 나갑니다.


하지만 발톱이 무뎌지는 것과 삶의 감각이 무뎌지는 건 다른 차원입니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지는 것과 내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메이 사튼은 시 〈나 이제 내가 되었네〉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살았던 시인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무엇엔가 쫓기듯 달리던 시간을 지나서, 마침내 고요히 서서 자신의 무게와 밀도를 느끼는 시간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식과 태도를 배웁니다. 그때마다 나를 숨기고, 나를 줄이고, 나와 닮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는 일을 어쩔 수 없이 따르기도 하지요.


그림바카라의 마지막 장면은, 늑대가 아이로 바뀌어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학교에 다니고, 전처럼 지붕 위에서 울부짖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밤이면, 달빛이 붉은 밤이나 목이 쉬고 머리가 멍한 밤이면 창가에 앉아 자신이 늑대였던 때를 떠올립니다.


늑대였던 시절을 떠올린다고 하여 늑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다시 제멋대로 살고 싶다는 말도 아니지요. 다만 자신 안에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에 가깝습니다. 아이가 자신을 잃지 않는 방식입니다.


사는 일에 지치면 누구나 무난한 사람이 되려고 애씁니다. 괜찮은 척, 둥근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곤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느새 그 흐름에 나를 맞추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일수록 내 안의 늑대가 아직 거기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마음이 창가에 앉아, 오래전 달빛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작은 명상]

잠시 눈을 감고, 내가 조금씩 다듬어져 온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함께 살려고 배운 것들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문해봅니다.

나는 무엇을 내려놓았고,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내 안의 늑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늘, 나는 내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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