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추석에는 말이야

by정숙진

"엄마, 성모가 뭐예요?"


가족과 함께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던 중 아들이 한 질문이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사느라 온라인으로나마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건가 싶겠지만, 아니다. 모두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던 때다. 심지어, 아들은 내 옆자리에 남편은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자리에 모이긴 했다만 각자의 컴퓨터 화면 속 상대, 즉 가족과 대화를 나누면서 말이다.


한 집에 사는 가족끼리 온라인 회의를 한다고? 그것도 한자리에 모여서?


코로나19로 인해 영국 전역에 봉쇄령이 내려진 때로, 각종 사업체가 폐쇄되고 학교에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다들 막막하고 두려운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생소한 온라인 회의 플랫폼을 익히는 일에 게을리할 수 없었다. 당장, 화상 회의를 할 일은 없었지만, 언제 이런 기술이 내게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싶어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힌다는 목적에서 또 흥미로운 주제를 다뤄보자는 취지에서 가족 온라인 회의를 내가 제안했다.


한 명씩 매주 돌아가며 발표하는데,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면 무엇이든 주제로 채택되었다. 나의 경우, 가족 중 누군가 평소 궁금해하는 사항을 주제로 정했는데 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던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앞서, 아들의 질문이 나온 날은 바로 이런 가족회의가 실시되던 때로, 마침 내가 발표할 차례였다. 주제는 '추석'.



Chuseok.jpg


아마도, 지금처럼 추석을 앞둔 시기였다는 점이 해당 주제를 선택한 이유일테다. 그런데, 한국의 명절 문화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아들에게 이런 방식으로라도 학습을 시켜야겠다 결심한 건, 이보다 훨씬 전의 일이다.


초등학생이던 아들이 연필로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20180922_122240.jpg





읽고 있던 바카라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질문에 아들이 작성한 답을 보는 순간 나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국의 설날과 추석 풍경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아들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웃어서 미안하기까지 했다.


초등학생 아들이 생각하는 추석은 무엇일까,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아들의 솔직한 답변을 보고 한국에서 성장하는 또래와 너무나 다르구나 싶었다.


그렇다. 우리는 파전 하나로 명절 분위기를 내는 집이다.


한 가지 의문이라면, 추석이든 설날이든 먹는 양만큼은 차별하지 않았음에도, 아들이 왜 설날 대신 추석에만 많이 먹는다 답변했을까, 이다.


영국에 살면서부터 우리 가족은 정통 차례상은 상상도 못 하고 떡국 외에는 제대로 된 명절 음식을 해 먹은 적이 없다. 한인 마트까지 왕복 4시간가량 운전해서 장을 보고, 또 집에서 하루 종일 준비한다면 명절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흉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식 명절 연휴라는 것이 있을 리 없는 영국에서, 그것도 식구 셋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미 한국의 고유 명절 분위기를 두루 익히고 경험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특별히 아쉬울 건 없지만, 아들은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역사도 공부하면서, 진정한 한국의 명절을 체험하는 기회는 주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한국의 명절이 되면, 즉 영국에서는 '빨간 날'이 아닌 날, 우리 부부 둘 다 휴가를 냈다. 그리고, 가까운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부침개를 만들기로 했다. 이 때문인지 아들의 기억에 떠올릴 수 있는 한국의 명절은 '파전' 하나로 단출해진 듯하다.



"아무리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어도 그렇지 파전 하나만 덜렁 대령해 놓고 이를 명절 음식이라 가르칠 수 있나?"


이에 대한 해명이라면, 파전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는 아들은 다른 재료로 만든 부침개마저 파전으로 알고 있었다. 각종 야채와 해물을 넣어 만든 부침개도 있었지만, 이 모두를 파전이라 부른 것이다.






파전을 먹는 아들과 그 옆에 잠시 출연하는 남편의 팔뚝


남편은 재료만 다듬어주면 반죽을 한가득 담아놓고 부침개를 부쳐냈다. 아들 둘만 있는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명절 준비를 하면서 익힌 솜씨라고 한다.


반면, 나는 손이 야무진 편도 아니지만 차례상 준비에 예법을 강조하는 시골 어른들의 간섭이 싫어서 일찌감치 밖으로 나갔다. 조금만 서툴러도 '너는 키도 큰 게 왜 그러냐?'라고 나무라는 소리도 듣기 거북했다. 키와 명절 음식 준비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싶어 반발심마저 생겼다.


수도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냇가에서 물 길어오기, 디딜방아로 곡식 빻기,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판에서 볏단 나르기, 밤 따기, 미꾸라지 잡기 등 도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시골에서조차 해보기 힘든 일에 더 치중한 편이다. 그나마 어른들의 간섭과 꾸짖음이 덜한 일이면서 내 키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파전만 먹으며 보내는 명절은 아니지만 아들에게는 아직도 한국의 명절이 낯설기만 하다. 이 때문에 발표 자료와 사진을 보여주며 간접적이나마 한국의 명절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80922_150938.jpg


햄버거 패티, 소시지, 닭튀김, 생선 튀김, 과일, 곡물까지 모두 영국 마트 제품으로 차린 차례상이다.





20200125_133326.jpg


아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는 어린이용 만화로 익히기도 했다.


끝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