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을 작업 공간으로 만든 뒤 이웃에 편지를 썼다

by정숙진

오랜만에 종이 편지를 썼다.


컴퓨터 사용에 익숙해지고부터 웬만한 문서는 전자 파일로 대체하였기에 이제 손글씨 쓰는 일이 부담으로 여겨진다.


이날도 마찬가지다.


전달할 내용이 방대한 데다 악필이라는 점도 고려하여 컴퓨터로 글을 작성해 출력할까 하다, 그러면 삭막할 것 같아 손글씨를 택했다. 다만, 평소 습관대로 워드로 작성한 글을 종이에 옮겨 적는 식이다. 원고지와 일기장, 리포트, 편지지, 다이어리 등 집과 학교, 슬롯에서까지 종이와 손글씨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세대인 내가 이제는 컴퓨터로 글을 적어야만 생각이 정리되는 셈이다.


무슨 편지냐고?


직접 방문하여 얼굴을 맞대고 전하는 편이 낫겠으나 어린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언제 시간이 날지 몰라 편지를 택했다.


그 내용을 말하기 전, 내게 일어난 변화부터 설명해야겠다.


석 달 여 전, 나는 노트북을 침실로 옮기고는 줄곧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남편과 공유하던 공부방에서 나오고서 말이다. 부부가 한바탕 싸우거나 작업 공간을 공유하는 불편함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남편은 주 3회가량 재택근무를 하고 나는 프리랜서로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두 사람이 큰 식탁 하나를 공동 작업대로 나누어 쓰고 있었다.


서로 조금씩 불편함을 토로하긴 했지만, 개인 사무실이 없다 뿐이지 대형 바카라꽂이와 문서 보관함, 프린터, 바카라상용 조명, 문서 파쇄기까지 각종 사무기기와 문구류를 갖춘 멀쩡한 공부방을 놔두고 또 아들이 쓰던 방도 있는데 하필 부부 침실로 옮겨갈 이유는 없었다.


우연히 침실에 있는 서랍장에 팔을 얹어놓고 있던 중 '여기를 내 작업대로 쓰면 되겠다' 결론에 이른 것이다.


요즘 바카라상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모션 데스크를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는데, 남편 회사가 새 건물로 이주해 가면서 이런 방식으로 일부 사무용 가구를 들였다고 했다. 바카라상만 바뀐 것이 아닌 자율 좌석제를 실시하고 있기에 이런 최신 장비를 갖춘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자가 몰리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남편은 회사에 가는 날이면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나 또한 하루 종일 앉아 작업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 하루 몇 시간 정도 서서 작업하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하던 중 우연히 서랍장에 서면서,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물론, 내 키가 평범했다면 서랍장을 작업대로 삼을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5단짜리 서랍장에 팔을 걸치고 서면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 정도로 키가 크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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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키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고 여자가 서랍장에 팔을 얹은 사진을 만들어 달라 했더니, 이렇게 연출해 주었다.


아마도 평균 키의 여성이 평균 크기의 5단 서랍장에 서 있는 모습을 연출한 거겠지. 언뜻 봐도, 이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하다가는 어깨와 팔이 혹은 무릎이나 발목까지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


아내가 갑자기 노트북을 들고나간 후 돌아오지도 않고 이후에도 계속 침실에서 작업하겠다 나오니 남편이 무지 궁금했나 보다. 사용자의 키에 맞는 모션 데스크 높이를 조사해 왔다. 줄자도 함께 챙기고서 말이다.


검색창에 내 키를 입력하니, 서서 작업할 때 적합한 바카라상 높이가 106.1cm ~ 114.9cm로 나왔다. 줄자로 측정한 침실 서랍장 높이는 117cm. 내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한 180cm ^^;;), 작업대로 딱이련만.


전혀 예상치 못한 상관관계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높이를 조절하지는 못하니 모션 데스크 대신 스탠딩 데스크로 말이다.


작업 공간을 바꾸고 석 달가량 거의 매 시간을 서서 작업해 왔는데 지금껏 걱정했던 큰 부작용은 없었다. 허리와 어깨, 목, 손목 등 사무직 근로자가 흔히 겪는 통증이 없었다. 장시간 걷기를 즐기는 편이라 서 있는 자세가 큰 부담은 되지 않았다. 다만, 하루아침에 갑자기 작업 환경을 바꾸자 다리로 혈액이 몰리면서 종아리와 발목에 한때 부종이 생겼다.


이 때문에, 일반 작업대가 있는 공부방으로 노트북을 다시 옮겨야 하나 고민하다가, 제자리 걷기도 하고 부엌이나 거실을 오가며 몸을 움직여 주는 등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했다. 내가 있는 곳이 침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곁에 있는 침대에 벌렁 누워 체조도 했다. 싱크로나이즈드 선수처럼.


적절히 몸을 움직인 덕택인지 아니면 새로운 작업 환경에 몸이 적응한 건지, 열흘 정도 지나자 부종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이제 앉아서 작업할 때보다 집중도 잘 되고 졸음도 오지 않아 좋다.


문제는...

옆집이다.


침실 서랍장을 작업대로 만들면서 창문 근처에 자리를 잡았는데, 창문을 열어 두면 밖에서 사람 말 하는 소리, 개 짖는 소리, 고양이 우는 소리, 새 재잘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옆집은, 우리 집과 90도로 틀어지긴 했으나 얼추 마주 보고 있다. 이들 가족 중 누군가 대문으로 들락거리는 모습, 차를 타거나 내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내가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며 이웃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건 아니기에 지금까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앞으로도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집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인지 집 앞에서 서성이더니 내가 서 있는 창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평소처럼 조용히 노트북에 집중하던 중 인기척이 들려 나도 고개를 그쪽으로 향한 순간이었다.


우연히 서로의 시선이 겹쳤을 뿐이지만, 내가 지금처럼 장시간 서 있는 행위가 이웃에게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닐까 고민이 들었다.


이런 고민이 깊어진 결정적 계기가 있다.


산바카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골목에 위치한 집의 2층 창문에서 여자가 밖을 내다보는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심장이 멎는 듯 충격이 왔다.


창밖을 내다보는 행위가 뭘 그리 놀랄 일인가 싶겠지만, 100호 남짓 되는 우리 동네에는 집집마다 2층 창문에 무늬가 있거나 커튼이 쳐있기에 창에 사람이 있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창에 난 무늬나 커튼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 사람이 없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지금껏 2층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전형적인 영국식 주택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1층 창문에는 주로 부엌이나 거실이 위치해 있어서 사람이나 애완동물, TV 화면 등 움직임을 간혹 엿볼 수 있다. 반면, 2층 창문에는 침실이 있기 마련인데 낮이라면 사람의 활동이 비교적 뜸한 곳이면서 창의 무늬나 커튼, 블라인드 등으로 외부 시선을 차단하기에 더욱 내막을 알 길이 없다.


우리 집 2층 창문만 해도, 내가 이곳에 서 있음을 외부에서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귀가하는 가족을 향해 반가이 인사하며 손을 흔들면 남편도 아들도 내 목소리는 들으면서 내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다. 창문의 무늬와 빛이 투영되어 발생한 현상이리라.


이날 갑자기 이웃집 2층 창문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으니 놀랄 수밖에.


그렇다면, 하루 종일 창가에 서서 작업하는 나의 모습은 외부에 어떻게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예전처럼 아무도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 내가 서 있던 2층 창을 향해 옆집 여자가 올려다본 일

- 골목 맞은편 집 여자가 2층에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간담이 서늘했던 일


이 두 경험으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창가에 누군가 서 있는 장면을 보고 내가 그토록 놀랐다면 다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설령, 놀라지 않는다 해도 창문에 누군가 계속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까?


결국, 편지로 내 사정을 설명하기로...



"저 혼자 창가에 서서 작업하는 중이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내 소개부터 하고 창가 근처에 선 자세로 하루 종일 작업을 하는 사람이니 내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작성한 편지를, 산바카라하러 나가는 길에 옆집 우편함에 넣어 주었다. 부디, 내 사정을 잘 이해해 주길 바라며.


가족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옆집에 편지 보낸 이야기를 했더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 이 두 남자가 한꺼번에 신이 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뭐? 나는 안 보이는데, 당신 눈에만 보이는 거야, 그럼 귀신이야?'

"옆집에 여자 안 사는데 당신 헛것 본 거 아니야?"


내 편지를 받기 전, 그동안 옆집 부부가 나누었을 법한 대화라며 이를 즉석에서 꾸며내고는 둘이 죽이 맞아 떠들어 댔다.


이 남자들, 이웃이 겪을지 모를 공포와 혼란을 이토록 웃음거리로 만들다니.


편지 쓴 일을 두고 나에게 헛일했다 나무라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끝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