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인간이 그림 속을 걷다 —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
이 이미지는 AI를 통해 선명도를 높이고 일부 훼손된 부분을 보완한 것이다.
로마인은 그림을 벽에만 두지 않았다. 그림을 바닥으로 내렸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그토록 공들여 만든 그림을 왜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바닥에 놓았을까.
벽에 걸어두면 더 잘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바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있었다.
벽 앞에서는 사람이 멈춘다.
바닥에서는 걷는다.
다가가고, 지나가고, 뒤돌아본다.
그림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그림을 읽는 순서를 바꾼다. ¹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는 기원전 100년경 폼페이의 파우누스의 집 바닥에 설치된 대형 로마 모자이크다. 크기는 약 272 ×513cm이며, 작은 돌조각인 테세라를 촘촘히 붙여 만들었다. 원본은 현재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있고, 폼페이의 원래 자리에는 복제본이 설치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가 싸운 전투 장면을 담고 있고, 많은 연구자는 이 모자이크가 지금은 사라진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회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로마식 모자이크 복제·번안 작품으로 본다.
폼페이의 거대한 저택 파우누스의 집.
그 바닥에는 한 편의 전쟁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라고 부르는 작품이다.
이 거대한 모자이크는 두 페리스타일 사이의 방바닥에 설치되어 있었고, 수많은 작은 테세라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²
모자이크 왼쪽에서 알렉산드로스가 말을 타고 돌진한다.
갑옷은 입었지만 투구는 쓰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뒤로 날리고, 시선은 한 곳에 꽂혀 있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다.
알렉산드로스의 긴 창은 한 병사의 몸을 꿰뚫는다.
병사는 고통에 몸을 뒤틀며 쓰러지고, 그 뒤에서는 말과 병사들이 뒤엉킨다.
반대편에는 다리우스가 있다. 전차병은 고삐를 움켜쥐고 필사적으로 방향을 돌리려 한다.
다리우스의 얼굴에는 놀람과 공포가 드러난다.
그는 쓰러지는 병사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알렉산드로스를 향한다. ²
알렉산드로스는 앞으로 간다. 다리우스는 물러난다.
한 장의 그림 안에 승리와 패배의 방향이 동시에 들어 있다.
이 장면은 일반적으로 기원전 333년 이수스 전투와 연결되지만,
가우가멜라 전투를 묘사했다는 견해도 있다. ²
중요한 것은 정확히 어느 전투인가를 넘어 그림 전체가 승리와 패배가 갈리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³
그런데 이 장면이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것은 알렉산드로스 시대보다 훨씬 뒤였다.
그때 지중해에는 새로운 강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로마였다.
이 작품을 오늘날 박물관 벽에 세워진 그림처럼 보지 말자.
원래 자리로 돌려놓자.
바닥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걷는다고 상상해 보자.
여기서부터는 작품의 배치와 인물의 방향을 바탕으로 한 나의 상상이다.
정원을 지나 모자이크로 다가간다.
알렉산드로스가 나타난다.
말이 보인다. 창이 보인다. 병사들이 보인다.
나도 한 걸음 들어간다.
또 한 걸음.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전투의 중심으로 향한다.
창이 교차하고, 병사들이 쓰러지고, 말들이 뒤엉킨다.
조금 더 나아가면 다리우스의 전차가 나타난다.
그의 얼굴에는 알렉산드로스와 다른 감정이 있다.
긴장, 혼란, 공포, 후퇴.
그림을 따라 걷는 동안 알렉산드로스의 돌진에서 시작해 페르시아 군의 혼란으로 이동한다.
한 장의 전쟁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투의 흐름을 따라 걷는 느낌이다.
그림 끝을 지나 몸을 돌린다.
같은 그림이다.
하지만 느낌은 달라진다.
이번에는 저편에서 알렉산드로스가 달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전에는 내가 그를 따라 전진했다면, 이제는 그의 돌진을 마주한다.
갈 때는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전진하고, 돌아보면 그의 돌진을 마주한다.
그림은 변하지 않았다.
바뀐 것은 나의 위치다.
그런데 위치가 달라지자 이야기를 읽는 순서도 달라진다.
바닥 모자이크는 관람자가 그 주변과 위를 움직이면서 경험하게 되는 미술이었다. ¹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눈으로만 읽는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으로 읽는 그림이다.
오늘날 영화에서는 관객은 앉아 있고 화면이 움직인다.
로마의 바닥에서는 반대다.
화면은 멈춰 있다. 사람이 움직인다.
가까이 가고, 멀어지고, 방향을 바꾸고, 뒤돌아본다.
그러면서 한 장의 이미지에서 서로 다른 장면을 경험한다.
영화와 같은 기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은 닮아 있다.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보는 사람의 경험까지 만든다.
어디에서 보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며, 무엇을 먼저 만나게 할 것인가.
로마의 바닥은 사람의 동선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였다. ¹
그림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을 움직이게 했다.
AI를 활용해 파우누스의 집에서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작품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면 전쟁은 사라진다.
알렉산드로스도 없다. 다리우스도 없다.
보이는 것은 작은 색 조각뿐이다.
흰색, 검은색, 붉은색, 노란색, 작은 돌과 유리 조각.
이것을 테세라(tessera)라고 한다. ²
테세라 하나는 그저 하나의 색이다.
그런데 조금 물러난다. 검은 조각이 눈동자가 되고, 갈색이 피부가 되고, 흰색이 빛이 된다.
더 멀어지면 얼굴이 나타난다. 조금 더 물러서면 사람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된다.
가까이에서는 색을 보고, 멀리에서는 이야기를 본다.
이 모습을 보면 오늘날의 디지털 화면이 떠오른다.
스마트폰 화면도 아주 가까이에서 보면 작은 색 단위로 나뉜다.
픽셀이다.
테세라와 픽셀은 같은 기술이 아니다.
하나는 물질이고, 다른 하나는 디지털 화면을 구성하는 단위다.
하지만 인간의 눈에서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생긴다.
작은 색의 단위가 모여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2천 년 전에는 돌과 유리였고, 오늘날에는 픽셀이다.
재료는 달라졌지만 작은 점이 모여 하나의 세계가 된다는 생각은 닮아 있다.
여기서 잠시 상상해 본다.
실제로 이곳에서 전쟁 공연이 벌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꾼의 목소리와 북소리가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사람은 알렉산드로스를 따라 걷고, 이야기꾼은 전쟁을 말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림과 이야기와 사람의 움직임이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된다.
그 순간 이 바닥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하나의 공연 공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기록된 사실이 아니라 바닥 모자이크의 성격에서 떠올린 나의 상상이다. ¹
그런데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왜 하필 알렉산드로스였을까.
알렉산드로스는 로마인이 아니다. 마케도니아의 왕이다.
그가 다리우스 3세와 맞선 전쟁은 이미 오래 전의 역사였다.
그런데 이 모자이크가 만들어질 무렵 로마 역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카르타고와 싸우고, 그리스 세계로 들어가며, 지중해의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로마인은 과거의 알렉산드로스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로마는 군사적으로 그리스 세계를 제압했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문화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리스 예술과 신화, 철학은 로마 상류층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폼페이의 엘리트 주택 역시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었다.
부와 취향, 교양과 슬롯적 위치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⁵
그런 집 한가운데 알렉산드로스의 승리가 놓여 있었다.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그리스가 만든 승리의 이미지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공간 안으로 가져왔다.
물론 이것을 “로마가 자신의 정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국가의 공식 선전물이 아니라 부유한 개인의 저택을 장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보여주는 승리와 패배, 권력과 영웅의 이미지는 분명 강렬하다. ³
또한 이 모자이크의 원형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헬레니즘 회화 자체도 특정 후원자의 정치적 자기표현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⁴
그렇다면 로마의 엘리트는 알렉산드로스의 이미지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승리, 영웅, 정복, 새로운 세계의 시작.
그리고 어쩌면 자신들이 살고 있던 시대와 겹치는 무엇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로마인은 알렉산드로스를 밟은 것이 아니라, 그의 승리를 자기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과거의 정복자를 자신의 문화 속으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승리와 정복의 계보 위에 자신들의 시대를 겹쳐 보았는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문장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작품과 당시 로마의 상황을 연결해 본 나의 해석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죽었다. 마케도니아 제국도 사라졌다. 다리우스의 페르시아 제국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지는 남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계속 돌진하고, 다리우스는 계속 뒤돌아본다.
역사는 글로만 남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도 역사를 남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넘어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제국은 사라져도 승리의 이미지는 살아남는다.
다시 모자이크 앞에 서보자.
가까이에서는 돌이 보인다. 멀어지면 전쟁이 보인다.
앞으로 걸으면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전진한다.
뒤돌아보면 그의 돌진을 마주한다.
가까이에서는 돌이었고, 멀리에서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서 있으면 그림이었고, 걸으면 이야기가 되었다.
라스코 동굴을 생각해 보자.
라스코에서는 횃불이 움직였다.
빛이 오록스(황소)의 머리를 드러냈다가 감추고, 말의 몸을 나타냈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지웠다.
로마의 모자이크에서는 방법이 달라졌다.
라스코에서는 빛이 그림을 움직이는 듯 보이게 했다.
로마에서는 사람의 움직임이 그림의 이야기를 움직였다.
선사시대에는 불빛이 관람의 시간을 만들었다.
로마에서는 사람의 동선이 관람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림 자체는 정지해 있었지만, 그림을 경험하는 방식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다시 고개를 들어보자.
바닥에서는 사람의 움직임이 그림을 다르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벽이다.
로마인은 평평한 벽 위에 기둥과 정원과 건물을 그려
막힌 벽을 열린 공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벽 위로 하루 종일 빛이 지나간다.
낮의 태양.
저녁의 어둠.
밤의 작은 등잔불.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빛이 같은 그림을 다르게 만든다.
우리는 이제 보스코레알레의 작은 침실로 들어가 보자.
그곳에서는 그림에도 밤이 내린다.
1. Christine Kondoleon, “Introduction,” in Alexis Belis, Roman Mosaics in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J. Paul Getty Museum, 2016). 바닥 모자이크가 건축공간과 결합되어 있고, 관람자가 그 위와 주변을 이동하면서 경험하는 매체라는 점을 설명한다.
2. Jessica Mingoia, “Alexander Mosaic from the House of the Faun, Pompeii,” Smarthistory, June 6, 2021. 작품의 위치와 구성,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의 표현, 테세라, 전투 해석 및 그리스 회화와의 관계 등에 대한 기본 자료로 활용하였다.
3. Ada Cohen, The Alexander Mosaic: Stories of Victory and Defeat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를 단순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승리와 패배의 서사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4. Joshua J. Thomas, “The Ptolemy Painting? Alexander’s ‘Right-Hand Man’ and the Origins of the Alexander Mosaic,” Journal of Roman Archaeology 35, no. 1 (2022): 306–321. 모자이크의 원형이 된 헬레니즘 회화와 그 후원자 문제를 재검토하며, 프톨레마이오스 1세를 유력 후보로 제안한다. 이 장에서는 원작이 정치적 자기표현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을 검토하는 근거로만 사용하였다.
5. Paul Zanker, Pompeii: Public and Private Life, trans. Deborah Lucas Schneide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39–42. 폼페이 엘리트 주택을 사적 생활공간이자 슬롯적 지위와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공간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활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