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인간을 발견하다.

15장. 인간은 다른 공간을 꿈꾸었다. 파니우스 시니스토르 별장 벽화

by김현준

이 이미지는 AI를 통해 선명도를 높이고 일부 훼손된 부분을 보완한 것이다.

보스코레알레의 P. 파니우스 시니스토르 별장 벽화는 기원전 1세기, 대략 기원전 50~40년경에 제작된 로마 회화의 대표작으로, 특히 제2양식(Second Style)의 대표 사례로 알려져 있다. Room M의 주요 벽화는 미국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원래 방의 공간감을 살려 재설치되어 있다.


로마인은 왜 벽 너머에 세상을 그렸을까.

작은 방 하나가 있다. 몇 걸음이면 끝나는 공간이다.

그런데 벽을 바라보면 방은 더 이상 방이 아니다.

기둥이 서 있고, 난간이 이어지고, 정원이 펼쳐지고, 그 뒤로 또 다른 건물이 보인다.

몸은 방 안에 있는데 시선은 벽을 넘어간다.

나는 이 방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들었다.

인간은 왜 닫힌 공간 안에 더 넓은 세계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벽을 열다.

폼페이에서 멀지 않은 보스코레알레에는 한때 로마인의 별장이 있었다.

오늘날 P. 파니우스 시니스토르의 별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 별장의 한 방이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옮겨져 있다.

Room M.

기원전 약 50~40년경 장식된 Cubiculum, 즉 침실로 사용된 방이다. ¹

물론 로마의 cubiculum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 침실과 완전히 같은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교적 작고 닫힌 방이었다.

그런데 벽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기둥, 난간, 정원, 건물, 멀리 이어지는 공간.

후벽에는 난간과 정원 구조물, 작은 동굴형 분수와 헤카테의 소상이 보이고, 측면에도 건축과 정원의 이미지가 이어진다. ¹

모두 실제 건축물이 아니다. 그림이다.

하지만 화가는 이것들을 평평한 벽 위에 단순히 늘어놓지 않았다.

기둥을 앞으로 세우고, 그 뒤에 난간을 놓고, 다시 그 너머에 정원과 건물을 배치했다.

벽 뒤에 또 다른 공간이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²

이런 표현을 로마 회화의 제2양식이라고 부른다. ²

로마 벽화는 후대 연구자들에 의해 제1양식부터 제4양식까지 구분된다. ³

그 가운데 제2양식은 벽 위에 가상의 건축과 공간을 만들어 시선을 벽 너머로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제1양식이 벽을 꾸몄다면, 제2양식은 벽을 열었다.

건축가는 벽을 세웠다. 화가는 그 벽을 다시 열었다.


가장 닫힌 공간에 가장 열린 세계를 만들다.

생각해 보면 묘하다.

방은 실제로 작을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보는 순간 시선은 그 벽을 넘어간다.

기둥을 지나고, 정원을 지나고, 건물 너머까지 간다.

보스코레알레 Room M은 건축물과 정원, 난간의 배치를 이용해

실제 벽보다 더 깊은 공간이 이어지는 듯한 효과를 만들었다.⁴

가장 닫힌 공간에 가장 열린 세계를 만들었다.

이 장면을 바라보다가 이집트가 떠올랐다.

고대 이집트인은 무덤의 천장에 별과 하늘의 질서를 표현했다.⁶

어두운 돌방 안에 하늘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수천 년 뒤 로마인은 다른 방향으로 공간을 열었다.

천장이 아니라 벽이었다.

이집트는 천장을 하늘로 만들었고, 로마는 벽을 세상으로 만들었다.

방법은 달랐지만 인간이 실제 공간의 한계를 넘어가려 했다는 점은 닮아 있다.


인간은 왜 다른 공간을 원하는가.

왜 인간은 지금 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할까.

현실이 답답해서일 수도 있다.

벽은 시선을 막고, 몸은 한 곳에 묶여 있고, 실제로 갈 수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현실에서 벗어날 또 다른 공간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현실이 싫어서만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는 없는 것을 보고 싶고, 갈 수 없는 곳에 가보고 싶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먼저 만나보고 싶어 한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기도 했고, 현실을 넘어 더 큰 가능성을 보고 싶은 욕망이기도 했다.

어쩌면 상상은 도피보다 확장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인간은 현실을 떠나고 싶어서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보고 싶어서 상상한다.

벽은 현실의 끝이었다.

그림은 그 너머를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밝은 세계를 그렸을까.

벽화를 보고 있으면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그림 속 세계는 밝다.

붉은 기둥이 보이고, 정원이 보이고, 건물이 또렷하다.

마치 낮의 바깥세상을 방 안으로 가져온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은 침실이다.


그렇다면 밤에는 이 그림이 어떻게 보였을까.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밝은 정원과 건물을 그려놓았는데 밤이 되면 어색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내가 이 방을 너무 현대인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밤을 지워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밤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해가 진다. 스위치를 누른다. 방 전체가 밝아진다.

벽도, 천장도, 그림도 낮처럼 또렷하다.

우리에게 빛은 거의 켜짐과 꺼짐이다.


하지만 로마의 집은 달랐다.

자연광은 하루 동안 계속 변했고, 밤의 인공조명도 오늘날처럼 방 전체를 균일하게 밝히지는 못했다.

로마 주택에서 빛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경험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⁵

낮에는 태양이 있다.

저녁이 되면 빛이 서서히 약해진다.

밤이 오면 등잔 같은 작은 불빛이 가까운 곳만 비춘다.

그렇다면 같은 벽화도 하루 종일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에도 밤이 내린다.

낮에는 자연광이 방으로 들어온다.

기둥이 보인다. 정원이 보인다. 멀리 있는 건물까지 보인다.

벽 전체가 하나의 열린 세계처럼 펼쳐진다.

시간이 흐른다.

해가 기울고 방 안의 빛이 약해진다.

멀리 그려진 공간부터 희미해졌을 것이다.

정원의 색도 가라앉는다.

그리고 밤이 온다.

실제 방이 어두워지면서 그림 속 세계에도 밤이 내린다.

작은 등잔 하나를 켜본다.

불빛 가까이에 있는 부분만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 기둥 하나, 난간의 일부, 건물의 모서리, 나머지는 어둠 속에 남는다.

그림은 바뀌지 않았다. 벽도 그대로다.

그런데 보이는 세계는 달라졌다.

화가는 한 번 그렸지만, 빛은 그 그림을 매일 다시 그렸다.

물론 로마 화가가 낮과 밤의 변화를 계산해 이런 효과까지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보여주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이 벽화가 오늘날 미술관의 일정한 조명 아래 있던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방의 벽에 있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림은 빛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AI로 밤을 만들어보다.

낮의 벽화가 밤의 촛불 아래에서는 어떻게 달라 보였을지, 그 분위기를 AI로 재현해보았다.


낮의 벽화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밤의 벽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촛불 아래에서 이 그림이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AI를 활용해 보스코레알레의 벽화를 바탕으로 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방 전체를 밝히지 않았다.

등잔 가까이에 있는 부분만 밝히고 나머지는 어둠 속에 남겼다.

그러자 낮에는 멀리까지 열려 있던 공간이 밤에는 작은 불빛 주변으로 모였다.

같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시간처럼 보였다.

이것은 고대 화가의 의도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은 아니다.

당시 그림이 변하는 자연광과 작은 인공조명 속에서 보였다는 사실을 오늘의 눈으로 상상해 본 것이다.⁵

그림은 하나였지만, 빛은 다른 그림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같은 일을 한다.

2천 년이 흘렀다.

그런데 인간은 비슷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벽에 정원을 그리는 대신 화면을 놓는다.

방 안에 앉아 다른 도시를 바라보고, 게임과 가상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걷는다.

그리고 이제 AI는 실제로 존재한 적 없는 공간까지 만들어낸다.

백 년 뒤의 도시, 가보지 못한 행성,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방.

말 몇 줄만으로도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2천 년 전 로마인은 벽에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우리는 화면 안에 다른 세계를 만든다.

도구는 달라졌지만 욕망은 닮아 있다.

몸은 여기 있지만 눈과 생각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AI는 새로운 욕망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욕망에 새로운 문을 달아준 것인지도 모른다.


벽은 문이 되었다.

다시 보스코레알레의 작은 방으로 돌아온다.

실제 벽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눈에는 열려 있었다.

그래서 벽은 더 이상 벽만이 아니었다.

창이 되었고, 문이 되었고,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이집트는 천장을 하늘로 만들었다.
로마는 벽을 세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화면 안에 세계를 만든다.

어쩌면 인간은 벽을 없애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벽 너머에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림은 오래전부터 그 가능성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런데 다음 시대가 되면 사람들이 벽 너머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달라진다.

로마인이 펼쳐놓은 것은 정원과 건물처럼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였다.

다음 시대의 기독교 미술은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천국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신성한 세계를 어떻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

그 질문과 함께 벽의 색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정원과 건물 대신 황금빛 세계가 나타난다.

비잔틴 모자이크와 신의 세계

1.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ubiculum (bedroom) from the Villa of P. Fannius Synistor at Boscoreale.” Accession no. 03.14.13a–g.
Room M의 용도와 제작 시기, 현재 소장 상태, 벽화에 표현된 정원과 건축 요소를 확인하는 기본 자료다.

2. Anderson, Maxwell L. “Pompeian Frescoes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Bulletin 45, no. 3 (Winter 1987–88).
폼페이와 보스코레알레 벽화의 양식과 공간 표현을 설명한다. 특히 제2양식의 건축적 환영을 이해하는 데 활용하였다.

3. Ling, Roger. Roman Painting.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로마 회화와 폼페이 제1~제4양식의 변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4. Lehmann, Phyllis Williams. Roman Wall Paintings from Boscoreale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Cambridge, MA: Archae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1953.
Room M의 공간 구성과 건축적 환영을 전문적으로 분석한 자료로 활용하였다.

5. Campanaro, Danilo Marco. Illumination Matters: Revisiting the Roman House in a New Light. Doctoral Thesis, Lund University, 2023.
로마 주택에서 자연광과 인공조명이 공간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본문에서는 빛과 시간에 따라 공간의 인상이 달라질 가능성을 설명하는 일반적 배경으로 활용하였다.

6. Robins, Gay. The Art of Ancient Egyp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7.
고대 이집트의 무덤 장식과 별·하늘의 표현을 이해하는 데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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