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차림
점심은 빵으로 대충 때우려 했는데 단골 빵가게가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한 블록을 더 걸어서 옆동네 빵가게에서 식빵 하나를 사기로 했다.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직원은 바코드를 찍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식빵 한 모퉁이를 눌러댔다. 찌그러진 식빵을 보니 등안쪽에 식은땀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식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식빵이 이토록 맛없을 수 있구나 싶은 순간, 누군가로부터 조금은 무례한 부탁을 받았다. 거절하고 나면 신경 쓰이는 것이 힘들어서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한다.
굳지 못한 스스로가 한심하다. 순식간에 엉켜버린 마음의 실타래는 좀처럼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넘어진 적도 없는데 무릎이 까진 기분으로, 정확한 이유도 없이 기분은 땅바닥을 기었다.
먹다 남은 식빵을 들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 접시에 우유를 조금 붓고 식빵을 앞뒤로 적셨다. 팬에 버터를 녹이고 꿀 한 숟갈을 더했다. 우유를 머금은 식빵을 올리고 약불에서 천천히 구웠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부엌 안에 번졌다. 양면이 노릇해진 식빵을 접시에 옮겨 담고 소금을 조금 뿌리면 내가 종종 만들어 먹는 소금 식빵 완성이다.
한입 베이물자 버터와 꿀의 달콤함 끝에 소금의 짭짤한 맛이 닿았다. 아까 먹었던 것과 똑같은 식빵인데 조금의 손길이 닿으니 전혀 다른 맛이 났다. 그러다 얼마 전 배송받은 바카라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빵을 먹으며 바카라을 읽는 시간이 매우 기대되기 시작했다. 복잡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삶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나 이벤트가 아니다.
읽고 싶은 바카라 한 권, 시원한 바람 한점, 소박한 집밥 한상, 달콤한 디저트 같은 소소한 것들이 우리를 위로하고 삶을 살아가게 한다.
가끔은 별것 아닌 것들이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별것 아닌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