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차림
한국에 있을 때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먹을 수 있던 것들이 싱가포르에서는 귀한 음식이다. 한국에서 흔한 재료 하나를 사려해도 한인 마트까지 가야 하고, 반찬 하나 만드는 것도 몇 가지 수고를 더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싱가포르에서의 한국 음식에는 음식 이상의 의미가 생긴다.
나는 자주 음식을 한다. 거창한 상차림은 아니어도 따뜻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가진 재료로 반찬 몇 가지를 만든다. 특히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있을 때면 나는 더욱 음식을 하고 싶어진다.
살다 보면 힘내라는 말도, 괜찮냐는 말도 오히려 조심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럴 때라면 집으로 불러 손수 만든 밥을 대접한다. 아마 내가 음식으로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된 데에는 오래전 내가 받았던 한 그릇의 미역국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역국은 싱가포르에서 내가 보낸 가장 시린 날 찾아온 따뜻한 위로였다. 그때의 나는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태교 교실을 다니고 있었다. 매주 예비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던 시간은 타지 생활에서 만난 작은 활력소였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유산으로 태교 교실에 가지 못했다. 관계자분들과 수업을 듣던 산모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왜 안 보이세요?”
걱정 어린 안부였지만 나는 좀처럼 답을 할 수 없었다.
‘유산했어요.’
그 짧은 대답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명을 품고 행복해야 할 사람들에게 나의 슬픈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 이야기가 그들의 마음에 작은 불안이 되지는 않을까. 행복한 태교의 시간에 괜한 그늘을 드리우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한참을 고민하다 짧고 건조한 메시지만 보냈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앞으로는 못 나갈 것 같아요.”
그 무심한 문장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병실에 덩그러니 남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어떤 분이 이걸 전해 달라고 하시네요.”
간호사의 손에는 보온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남편과 연락이 닿아 소식을 알게 되었다며, 건강을 회복하기를 기도한다는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태교 교실 관계자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온병 뚜껑을 열자 구수한 냄새와 함께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미역국이었다.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상하게도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을 겪고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던 건지, 아직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저 멍하니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 앞에서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한국에서는 생일이나 산후에 흔히 먹는 음식이지만, 그날의 미역국은 달랐다. 싱가포르에서 미역국 한 냄비를 끓이려면 일부러 한인 마트를 찾아 미역을 사고, 고기를 준비하고, 시간을 들여 푹 끓여야 한다. 그렇게 끓인 국을 보온병에 담아 병원까지 가져와 데스크에 맡겨두고 간 것이다.
몇 번 얼굴을 마주한 것이 전부였던 누군가가 나를 위해 끓여준 미역국 앞에서, 마음 한구석에 단단히 뭉쳐 있던 슬픔과 죄바카라감이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내렸다.
슬퍼할 힘조차 없던 내게 말없이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만 남겨두고 간 손길 덕분에, 어떤 슬픔 앞에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그릇의 음식이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우리 집 식탁에 사람들이 모인다. 따뜻한 음식을 함께 나누다 보면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들이 하나 둘 흘러나온다. 낯선 타지 생활의 고단함, 멀리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슴속에 오래 묵혀두었던 이야기들. 누군가는 털어놓고 누군가는 묵묵히 들어준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국그릇에 넉넉히 담고, 괜찮냐고 묻는 대신 잘 지어진 밥을 한 공기 더 퍼 담는다.
음식은 누군가의 슬픔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다만 지친 사람을 잠시 앉히고, 마음 한구석에 작은 위로를 건넬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위로가 때로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오늘도 쌀을 씻고 냄비에 불을 올린다. 내가 받은 미역국 한 그릇처럼 나의 식탁 위에서도 누군가를 조금은 따뜻하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