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 도넛

익히기

by그리고

해외에 산다는 건, 유행의 최전선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일이다.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이슈와 트렌드들은 바다를 건너는 동안 어디론가 증발하고, 내게 닿을 땐 이미 한 김 식은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 덕분에 타인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보폭으로 살아간다.


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친구가 한국에서 애지중지 공수해 왔다며 내민 것은 ‘두쫀쿠’였다. 한입 베어 물어보니 쫀득한 식감과 달콤한 피스타치오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하지만 입안 가득 세련되고 풍성한 맛을 머금고도, 촌스럽게도 시장 찹쌀 도넛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갓 튀겨낸 찹쌀 도넛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설탕이 듬뿍 묻은 찹쌀 도넛 하나와 덤으로 얹어주시는 꽈배기까지 받아 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두쫀쿠를 맛보고 처음 든 생각이 '찹쌀도넛이 먹고 싶어'라니..


결국 주말에 찹쌀 도넛을 만들었다. 건식 찹쌀가루 한 컵에 밀가루와 설탕, 녹인 버터를 한 숟가락씩 넣고 소금과 베이킹소다를 조금 섞었다. 뜨거운 물은 반죽의 상태를 살피며 나누어 부었다.

매끈해질 때까지 반죽을 치댄 뒤 열 조각으로 나누었다. 한 조각을 동그랗게 펴서 팥소를 넣고 오므렸다. 이음새가 벌어지지 않도록 손바닥 사이에서 여러 번 굴려 공 모양으로 빚었다.


너무 뜨겁지 않게 데운 기름에 반죽을 넣고 중 약불에서 천천히 굴려가며 튀겼다. 성급하게 온도를 높이면 겉만 갈색으로 익고 속은 설익는다. 무엇이든 제맛을 내려면 알맞은 온도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노릇해진 도넛을 건져 한 김 식힌 뒤 설탕 위에 한번 굴려 접시에 담아냈다. 설탕 알갱이가 후드득 떨어졌다. 모양은 시장에서 먹던 것처럼 반듯하지 않았지만, 갓 튀긴 도넛을 한입 베어 물자 바삭한 겉면 안에서 따뜻하고 쫀득한 속살이 늘어났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가끔 음식은 숨어 있던 기억을 불러낸다. 따뜻한 도넛 한 입에 나는 어느새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어린 날의 시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도넛을 튀기던 달콤한 기름냄새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골목, 설탕이 듬뿍 묻은 도넛이 담긴 종이봉투, 도넛을 도나스라 부르던 엄마.

생각해 보면, 자극적인 것은 순간의 쾌락을 주지만 금세 사라지고 만다. 반면 심심하고 익숙한 것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유행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모두가 '두쫀쿠'에 열광할 때, 주눅 들지 않고 "나는 찹쌀 도넛이 더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나는 그런 취향의 심지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리 거센 비가 쏟아져도 바다는 바다인 것처럼, 나는 여전히 나인 채로, 남들의 가치관이나 세상의 속도에 희석되지 않는 '나'로서. 그렇게 살고 싶다.

수, 금 연재
이전 06화믹스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