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기
어느덧 싱가포르에서 일곱 번째 해를 보내고 있다. 매일 같은 계절은 시간의 흐름마저 흐리게 만들지만, 7년 전 덥고 막막했던 첫 이삿날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여의도 증권가의 빌딩 숲을 오가며 일하던 시절, 사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살아가는 것인지 사라지는 것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업무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싱가포르 이직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보다 나아지는 근무 조건은 우리 가족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 믿게 했다. 무엇보다 일에 쫓기던 삶을 뒤로하고 아이의 곁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커다란 이민 가방 여러 개에 그동안의 삶을 눌러 담고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현실을 마주했다. 한 달 집세는 서울 아파트 월세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고, 아이의 학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는 넉넉하지 않았다. 차를 소유하려면 자동차 소유 권리증(COE)까지 마련해야 했고, 그 비용 역시 우리 형편에는 부담스러웠다.
빠듯한 예산으로 구한 첫 집은 창문 너머로 자동차 소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대로변의 낡은 콘도 1층이었다.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외관과 촌스러운 타일이 깔린 좁은 거실. 하지만 버스정류장이 가까웠고, 무엇보다 아이의 유치원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이사 첫날, 적도의 낯선 집은 혹독한 환영 인사를 건넸다. 부엌 구석에서 쥐만 한 바퀴벌레가 기어 나온 것이다. 놀라 비명을 지르는 나와 달리, 현지 이사업체 인부는 맨발로 바퀴벌레를 툭 밟아 죽이더니 맨손으로 집안 쓰레기 투입구에 던져버렸다. 그 모습은 앞으로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며 마주할 우울한 삶의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칭얼거리는 아이를 간신히 달래 유치원으로 보내고 텅 빈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한복판에는 아직 뜯지 못한 이삿짐 박스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짐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싶었지만 냄비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머뭇거리며 콘도 옆 호커센터로 향했다.
커다란 실링팬이 무더운 공기를 가르며 돌아가고, 강렬한 향신료와 기름 냄새가 가득한 호커센터는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오가는 세상이었다. 광둥어와 만다린, 싱글리시가 쉴 새 없이 오가는 풍경 속에서 빈 쟁반을 든 채 한참을 맴돌다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그곳에는 인상 좋은 중국계 싱가포르인 할머니가 먼저 식사를 하고 계셨다.
"이 근처 살아?"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건넸다. 내가 한국에서 왔으며 어제 막 이 동네로 이사 왔다고 하자, 반가운 표정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긴 마음에 들어?"
"가족이랑 같이 왔어?"
할머니는 이야기가 끝날 만하면 또 다른 질문을 건네며 대화를 길게 이어갔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만 더 이야기할래? 한국 사람을 만나니 너무 반가워."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사기꾼이거나 이상한 종교 단체일지도 모른다며 뒷걸음질 쳤을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라는 낯선 땅이 주는 묘한 익명성, 그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느꼈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낯선 이를 향해 한껏 곤두서 있던 나의 경계심은 할머니의 미소와 적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스르르 녹아내렸다.
홀린 듯 할머니를 따라 호커센터 뒤편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매연과 자동차 소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소리만이 숲을 채웠다. 초록 숲 사이로 대저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알고 보니 할머니와 만난 호커센터는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유명한 바쿠테집이었고, 그 뒤편에는 숲을 품은 부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집은 그 대저택 중 한 채였다.
철컥.
육중한 철제 대문이 열리고 잘 다듬어진 열대 식물 정원과 프라이빗 수영장, 차고에 주차된 슈퍼카가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소형차는 고사하고 자전거 한 대도 없는 내 처지가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위용과 어울리지 않게 낡은 슬리퍼를 끌며 나를 재촉하는 소탈한 할머니의 모습에 이내 긴장감이 풀렸다.
에어컨 바람이 서늘하게 감도는 거실은 우리 집 전체를 합친 것보다 넓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그 공간은 묘하게 차갑고 텅 빈 느낌을 주었다. 맛있는 한국 커피를 대접하겠다는 할머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사 도우미가 은쟁반에 익숙한 한국산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받쳐 들고 다가왔다. 반가움도 잠시, 도우미가 커다란 티팟(Teapot)에 믹스커피 스틱 하나를 뜯어 넣고는 펄펄 끓는 물을 거침없이 붓기 시작했다.
"Stop, please!"
나도 모르게 다급하게 stop을 외치고 말았다. 나는 한강 물이 되어버린 티팟을 밀어 두고, 새 스틱 하나를 더 부탁해 커피잔에 털어 넣었다. 종이컵 반 잔 정도의 물을 붓고 티스푼으로 경쾌하게 젓자, 꾸덕하고 달콤한 크림색 거품이 일며 짙은 커피 향이 거실을 가만히 채우기 시작했다. 완성된 커피를 맛본 할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원래 이런 맛이었어? 너무 달콤하고 훌륭해!"
"물이 너무 많으면 고유의 짙은 맛을 잃고 싱거워져요. (Too much water makes it bland.)"
나의 설명에 할머니는 찻잔을 내려놓고 샹들리에가 빛나는 까마득히 높은 거실 천장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쓸쓸히 대답했다.
"마치 이 집 같아. 공간이 너무 넓으니, 온기가 다 사라져 버려. (Too much space makes the warmth disappear.)"
할머니의 말에 처음 대문이 열렸을 때 느꼈던 부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스틱 하나를 큰 티팟에 우려내려 했던 것처럼, 너무 넓은 공간 속에 홀로 남겨진 그녀의 삶에도 온기가 희석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날 할머니가 낯선 한국인인 나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던 이유를, 나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무 사이로 불어오던 미지근한 온도의 바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매연을 뿜는 버스가 오가던 좁고 낡은 집도 더 이상 초라하게만 보이지 않았다. 비록 좁을지언정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 집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좁은 우리 집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갔다. 예쁜 가구나 장식품을 들여놓을 공간은 부족했지만, 작은 원목 테이블 하나를 거실 한편에 놓았다. 매일 아침 여섯 시, 가족들이 아직 단잠에 빠져 있는 고요한 시간에 그곳에 앉아 글을 쓴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기 전, 세상이 아직 덜 깨어난 짧은 정적 속에서 어제의 나를 비워내고 오늘의 나를 채운다.
여의도에서의 시간은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조금씩 잃어가게 만들었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했다. 하루를 살아내기에 바빠 내 마음조차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는, 이제 새벽마다 글을 쓰며 천천히 나를 되찾아 가고 있다.
우리 집은 여전히 좁다. 아이는 작은 식탁에서 숙제를 하고, 남편과 나는 그 옆에 마주 앉아 하루를 나눈다. 부엌 구석에서 땀을 흘리며 찌개를 끓이다가도, 문득 그날의 커다란 티팟이 떠오르면 혼자 피식 웃음이 난다. 우리는 이 좁은 집에서 지난 7년이라는 긴 여름 동안, 매일같이 서로의 하루를 묻고, 위로하고, 때로는 툭툭 부딪치며 우리만의 농도를 맞춰 왔다.
알맞은 농도로 우러난 진한 믹스커피처럼, 싱가포르에서의 우리의 시간도 좁지만 다정한 공간 안에서 오래도록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더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