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따라, 소리에 이끌려

곶자왈에서 알아간 숲의 소리와 냄새

by박현정

제주집 가까이, 차로 오 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곶자왈도립공원이 있었다. 딸의 학교와 마트, 산바카라로에 이어 자주 갈 만한 곳이 하나 더 생겼다.


비 온 뒤 곶자왈에 들어갔던 날, 입구에서부터 흙냄새가 짙게 스몄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조금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높이 솟은 나무마다 덩굴이 감겨 있었다. 줄기가 어디서 시작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눈으로 따라가보기도 했다.


비에 젖은 잎들은 유난히 선명했다. 짙고 옅은 녹색이 겹쳐져 있었고, 같은 초록 안에서도 색이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나무를 올려다보다 잎을 보고, 다시 발밑을 살피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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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히 아로마테라피를 오래 공부하면서 마음에 드는 냄새를 만나면 짧게 기록을 해왔다. 숲에서도 그랬다. 비에 젖은 흙과 풀, 나무의 냄새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해 내쉬었다.


그날의 기록에는 흙냄새와 녹색의 그라데이션, 바스락거리는 잎 소리, 살짝 차가운 바람이 적혀 있다. 얼마나 걸었는지보다 걷는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이 남아 있었다.


사실 제주에서의 하루가 늘 편안했던 것은 아니다. 비오고 흐린 날들이 자주 이어졌고, 딸의 학교생활도 옆에서 보니 힘든 일이 많았고, 서울에 두고 온 일들도 신경쓰였다. 생활이 단순해지니 좋은 점도 있었지만 쉽게 흐트러지는 날도 있었다. 혼자 보낼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을 잘 쓰는 데에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럴 때 집 가까이에 숲이 있는 것이 고마웠다. 하던 생각을 그대로 안고 나와도 걷다 보면 눈앞의 것들에 시선이 갔다. 덩굴이 감긴 나무 앞에서 멈추고, 바람이 불면 잎이 움직이는 쪽을 바라봤다. 한동안 그렇게 걷고 나면 집으로 산만한 생각들이 조금은 선명해져서 돌아가 하던 일을 이어갈 만했다.


어느 주말에는 딸과 함께 화순곶자왈의 사운드워킹에 참여했다. 숲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평소에도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걸었지만, 소리를 들으러 숲에 간다는 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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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마이크와 헤드셋을 받아 착용하고 천천히 걸었다. 가이드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 엄마.”


내 귀에는 꼭 그렇게 들리는 새소리가 있었다. 제주에서는 흔하다는 직박구리의 소리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새가 우는구나 하고 지나쳤을 텐데, 그렇게 듣고 나니 그 소리가 유독 귀에 꽂혔다.


높고 맑은 새소리 뒤로 풀벌레 소리가 깔렸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겹쳐졌다. 높낮이도 리듬도 달랐다. 하나씩 듣다가 함께 들으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았다. 숲이 이렇게 여러 소리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나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나중에 다시 보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그때의 기분을 남겨두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눈앞의 풍경보다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더 궁금했다. 같은 곳에 서 있어도 귀를 기울이니 알아차리는 것들이 달랐다.


제주의 아침은 알람보다 새와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렸다. 비가 온 뒤에는 풀과 나무의 향이 짙어졌고, 서울에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야 했던 산바카라이 어느새 하루를 여는 일이 되었다.


제주에서 좋아하는 장소가 생긴다는 것은 그곳에 가고 싶은 날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바다가 보고 싶은 날, 꽃길을 걷고 싶은 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숲으로 가고 싶은 날. 날씨에 따라 떠오르는 곳이 달라졌다.


제주가 좋았던 것은 매일 특별한 일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조금 더 세심하게 바라보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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