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며 알게 된 취향

바카라과 차가 있던 제주의 작은 공간들

by박현정

제주에서는 바카라을 읽으러 집을 나서는 날이 많아졌다.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바카라을 빌리고, 작은 독립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는 바카라을 사곤 했다. 꼭 읽겠다고 정해둔 바카라도 있었지만,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 데려오는 바카라도 있었고, 표지를 가린 블라인드북은 포장에 적힌 키워드와 해시태그만 보고 사오기도 했다.


제주의 독립서점인 소리소문, 보배바카라방, 어나더페이지 등 바카라방마다 분위기도, 눈에 들어오는 바카라도 달랐다. 따뜻하고 소박한 분위기 속 바카라방지기가 고른 바카라들을 둘러보다보면 뜻밖의 바카라을 발견하기도 했다. 바카라방을 찾아 제주를 여행하는 마음이 이해됐다.


image.png바카라방 소리소문


바카라은 어디서든 읽을 수 있지만 가장 집중력이 높아질 때는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안락하면서도 조용한 공간과 맛있는 커피,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이 삼박자가 갖춰진 공간은 일상을 환기시킨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내부를 둘러보며 이왕이면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통창을 두고 푹신한 등받이가 있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이제 읽을 준비가 되었다.


<카페 온결>에서는 통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등 뒤에 푹신한 쿠션을 두고 앉으니 멀리 바다가 보였다. 살짝 감기 기운이 있어 생강라떼를 시켰다. 직접 만든 청의 알싸한 향이 좋았다.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도 메뉴판의 브로콜리 수프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그것까지 주문했다. 레시피를 물어보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바카라을 읽으러 나와 잘 먹기까지 했으니 외출의 보람이 충분했다.

image.png제주 카페 온결


한경면의 <고산의 낮, 고산의 밤>에서는 시간을 예약하고 머물렀다. 혼자만의 공간을 조용히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작은 구석방 한켠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헤드폰을 끼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바카라장 속 바카라 한 권을 꺼내어 들었다. 집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들이지만 어느 공간과 어떤 공기가 주는 분위기에서 오는 몰입감 자체가 다르다.


헤드폰 커버, 보온병에 담겨 나오는 커피, 바카라 셀렉션과 방명록까지 주인장의 세심함과 사려깊음이 느껴지는 디테일들이다. 바카라장에서도 누군가 오래 고르고 모아온 취향을 만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바카라을 꺼내 읽으며 그 선택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image.png고산의 낮, 고산의 밤


또 다른 날에는 한라산 중산간 쪽 조용한 숲길에 위치한 에가톳 라이브러리를 찾았다. ‘에가톳’은 오두막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TTAGE’의 철자를 거꾸로 배열해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숲속 오두막처럼 아늑하게 쉬어가는 공간이라 한다.


신발을 벗고 폭신한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들어서자 은은한 향기가 느껴졌다.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고, 초록잎들이 반짝이는 창밖 풍경도 좋다. 신발을 갈아 신는 짧은 과정부터 자리에 앉기까지 절로 차분해진다.


이곳은 두 시간 정도를 예약해 직접 차를 우려 마실 수 있었다. 먼저 뜨거운 물로 다기를 데우고 비웠다. 데워진 다기에 찻잎을 넣고 가볍게 흔드니 향기가 올라왔다. 차를 마시기 전부터 따뜻한 기운과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알려준 순서대로 차를 우리고 조금씩 따라 마셨다.


바카라장도 오래 둘러봤다. 우리 집에 있는 바카라과 이미 읽었던 바카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카라을 고른 분과 취향이 제법 비슷한가 싶어 반가웠다. 읽고 싶은 바카라을 욕심껏 자리로 가져왔다. 두 시간 동안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는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남는 문장과 은은한 잔향이 감도는 차 한 잔을 만날 수 있던 것만으로도 일상의 여백과 여운을 담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image.png에가톳 라이브러리


편하게 기댈 자리와 따뜻한 차가 있으면 바카라을 조금 더 오래 읽게 되었다. 익숙한 마음을 정확히 짚어주는 문장 앞에서는 멈췄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만나면 내 생각은 어떤지 되짚어봤다. 한동안 그렇게 읽고 나면 분주하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내게 고요함은 그런 시간에 찾아왔다. 바카라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무엇이 마음에 걸렸는지, 나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니 내가 좋아하는 자리도 알 수 있었다. 등받이에 편하게 기댈 수 있고, 바카라 읽기를 방해하지 않는 음악이 흐르고, 차를 천천히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바카라을 덮고 돌아오면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만 곧바로 조급해지기보다 무엇부터 할지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제주에서 바카라 읽기 좋은 공간을 찾아 보낸 시간들이 그렇게 일상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 시간을 반복하며 내 마음을 살피고, 다시 하루를 꾸려가는 힘을 조금씩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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