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던 제주 생활의 시작
딸과는 매일 밤 열 시쯤 영상통화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제주로 내려가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뒤 생긴 일상이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묻고, 화면 속 얼굴을 보고, 그렇게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이는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리는 일이 드물었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제 몫을 잘 해내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 딸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진지하게 꺼냈다. 그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버거움, 앞으로 마주할 학업과 입시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본인의 뜻대로 대학까지 해외로 가게 된다면, 곁에서 일상을 챙겨줄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로 내려가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하던 일도 있었고, 남편과 부모님도 마음에 걸렸고, 집을 하나 더 꾸리고 두 곳의 생활을 이어가는 비용도 생각해야 했다. 한 가지를 정리하면 또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 남편과 깊게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도 지금은 딸에게 시간을 더 써야 할 때인 것 같다며 내 생각에 힘을 보탰다.
내가 가서 해주고 싶은 일들은 소박했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 끼를 차려주고, 힘든 날에는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오래 앉아 공부한 날이면 함께 나가 걷는 것. 화면 너머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고민은 깊었지만 복잡한 사정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나니 남는 이유는 의외로 분명했다. 떨어져 지낸 시간과 앞으로 떨어져 지낼 날들 사이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늘 그래왔듯 결정을 내린 뒤의 실행은 빨랐다.
그런데 제주에 집을 구하고 살림을 들이기 시작하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배송이었다.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이유로 배송비가 추가되는 것은 물론이고, 부피가 큰 가구는 아예 배송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두 집 살림에, 앞으로 이 년 남짓 지낼 집이었다. 비싼 가구로 구색을 맞추기는 부담스럽고, 제주에서 일일이 돌아다니며 고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 이케아와 쿠팡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도착까지 하루 이틀 더 걸리는 정도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해지할까 말까 하던 쿠팡 멤버십을 당분간 유지해야만하는 이유가 생겼다. 이케아에서는 당시 배송비 십오만 원에 트럭 한 대 분량까지 받을 수 있었다. 식탁과 의자, 선반, 테이블에 자잘한 생활용품까지 육십여 가지를 골랐다. 텅 빈 집은 하나씩 채워졌고, 그만큼 통장은 비어갔다.
집 안까지 물건을 들여놓고 나니 이제 조립이라는 관문이 남았다. 한가득 쌓인 상자를 풀고, 설명서를 펼치고, 부품을 맞췄다. 성능 좋고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 드라이버 하나를 구비해두니 제법 일할 맛이 났다.
종일 조립하는 것이 힘들다가도 하나를 완성하면 뿌듯했다. 다음 상자를 열고, 또 하나를 끝내고. 사부작사부작 만들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직접 손을 보탠 탓인지 완성된 가구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새 물건에는 늘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 집에서 딸과 밥을 먹고 각자의 일을 하며 지낼 날들이 조금씩 그려졌다. 나에게는 어떤 공간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도 제주에 내려와 힘쓰는 일을 도왔다. 집안일을 할 때면 손이 야무지지 못해 내게 타박을 받으면서도, 늘 “뭐 해주면 될까?” 하고 물었다. 고생한다며 맛있는 밥도 사주었다.
몇 주 전 운동하다 다친 발목이 아직 낫지 않아 절뚝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 와서 보니 더 부어 있는 것 같아 서울에 가면 병원부터 다시 가보라고 했다. 신경 쓸 일이 많은 때라 몸까지 아픈 것이 걱정스러웠다.
남편은 그날 늦은 저녁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가 지연되었다는 전화를 하는데, 기분이 쭉 가라앉았다. 딸과 함께 살게 된다는 생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남편이 혼자 돌아갈 서울집을 생각했다. 같은 결정을 하고도 각자 감당해야 하는 생활은 달랐다.
나는 유독 누군가를 보내는 일이 어렵다. 딸을 기숙사에 두고 돌아설 때도 그랬고, 이제는 제주에서 남편을 보내며 마음이 쓰였다. 우리 가족 모두 새로 적응해야 했다.
그 무렵 딸과 기숙사에서의 마지막 영상통화를 했다. 밤마다 화면으로 마주했던 삼 년 남짓한 시간이 떠올랐다. 이제 내일이면 같은 집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게 될 텐데도, 익숙한 통화를 끝내는 마음은 조금 이상했다.
다시 딸의 등교를 챙기게 된 아침은 꽤나 낯설었다. 학교는 집에서 가까웠기에, 강아지 초코까지 데리고 함께 나가 교문 앞에서 “오늘 하루도 잘 보내”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언니를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는 초코의 방향을 돌려 근처를 걸었다. 제주 영어교육도시의 학교들을 잇는 ‘배움의 길’이라는 산바카라로였다. 중간중간 작은 공원이 있었고,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쭉 걸을 수 있었다. 사람은 거의 없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렸다.
집에는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 있었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있었지만, 초코와 동네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앞으로 자주 걷게 될 길이었다.
산바카라로 끝에 있는 마트에 장을 보러 들렀다가 9,900원에 보라색 튤립 한 단을 샀다. 며칠 동안 집안일을 하느라 애쓴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딸의 등교를 다시 챙기게 된 아침, 돌아오는 길에는 장을 보고 꽃도 샀다. 집에 돌아가면 하던 일을 이어갈 참이었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첫 산바카라길을 하나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