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던 아침, 네 개의 심볼

ㄱㅇㅁㅎ에 담은 네 가지 리추얼 흐름

by박현정

고요미학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한창 생각하던 때였다. 제주 대정읍 ‘배움의 길’을 달리는데 나무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빛이 번지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고요미학의 초성, ㄱㅇㅁㅎ이 떠올랐다. 그 네 글자에 초승달과 하트, 네잎클로버,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차례로 겹쳐졌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땀을 식히기도 전에 노트를 펼쳤다. 방금 떠오른 생각을 놓칠까 봐 서툰 선으로 네 개의 모양을 그리고, 그 아래에 단어를 적었다. 시작, 온기, 깨어남, 에너지.


생각해보면 모두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기호들이었다. 하나씩 따로 보았을 때는 좋아하는 모양에 가까웠는데, 차례로 놓고 보니 고요미학에서 보내고 싶은 시간의 흐름과 닿아 있었다. 잠시 멈추어 앉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긴장을 풀고, 무심히 지나쳤던 감각을 다시 알아차린 뒤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노트의 그림을 브랜딩을 함께하는 디자인 디렉터님께 전했다. 초승달과 하트, 네잎클로버, 태양은 각각 익숙하고 강한 기호라 그대로 놓으면 고요미학의 분위기와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초성의 형태와 네 가지 뜻을 함께 살피며 선을 덜어내고 흐름을 다듬었다. 손으로 그린 듯한 부드러움은 남기되, 오래 보아도 편안한 모양으로 감성을 살렸다.


ㄱ은 시작. 아직 다 차오르지 않은 초승달은 내가 생각하는 시작의 모습과 닮아 있다. 무엇이든 갖춘 뒤에야 첫발을 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요미학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 역시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마음이 가는 방향을 따라 하나씩 해보았다. 조금 비어 있고 흔들리는 날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을 초승달에 담았다.


ㅇ은 온기. 하트를 그리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손에 쥔 찻잔이었다. 긴장한 채 하루를 보내다가 따뜻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 손끝부터 조금씩 풀렸다. 완성된 심볼에서는 둥근 점을 곡선이 부드럽게 감싼다. 나를 위해 차를 준비하듯, 누군가를 위해 차를 우려 잔을 건넬 때에도 그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랐다.


ㅁ은 깨어남. 처음 노트에는 네잎클로버를 그렸다. 일상에서 뜻밖에 좋은 것을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을 담고 싶어서였다. 디자인을 다듬으며 그 모양은 작은 빛이 번져 나가는 형상으로 바뀌었다. 곶자왈에서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이 떠올랐다. 차를 마시며 비로소 느낀 잔향과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도 그랬다. 잠시 멈추었을 때 평소 지나치던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순간. 내가 담고 싶었던 깨어남은 그런 감각이었다.


ㅎ은 에너지. 달리던 길에서 본 해가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그렸다. 그 이미지는 다듬는 과정에서 안으로 흐르는 작은 소용돌이가 되었다. 흩어졌던 마음이 다시 중심을 찾는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달리고 숨을 고른 뒤에도 내게는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나는 다시 그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다. 고요미학이 말하는 에너지도 그런 힘에 가깝다. 잠시 쉰 뒤 자신의 속도로 하루를 이어가는 힘이다.


그렇게 고요미학의 초성을 담은 네 개의 리추얼 심볼이 생겼다. 앞서 만든 두 개의 선이 잠시 머물 자리를 보여준다면, 이 심볼에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의 시간을 담았다. 시작하고, 온기를 느끼고, 감각을 깨우며, 다시 일상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다.


고요미학의 리추얼 심볼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기호라기보다, 차 한 잔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동안 천천히 스며드는 감각에 가깝다. 어떤 날은 위로처럼, 어떤 날은 숨처럼, 어떤 날은 다시 살아갈 힘처럼 곁에 오래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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