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Chapter 1. 소년에 관하여

by파키야옹

정국이는 옆 반에서도 이름이 좀 알려진 애였다. 축구를 잘했고, 쉬는 시간이면 바카라상 주변에 늘 애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정국이와 친했다. 그게 별일은 아니었는데, 선태가 물으니 조금 달라졌다.

“너 정국이랑 친해?”

운동장에서 공을 주고받던 중이었다.

“응. 그 정도는 얘기할 수 있지 뭐.”

“그럼 걔네 반이랑 축구 한 판 하자고 해봐.”

나는 공을 발바닥으로 멈췄다.

“반 대항으로?”

“어.”

선태는 우리 반에서도 눈에 잘 띄는 애였다. 선태가 공을 잡으면 애들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봤고, 쉬는 시간이면 바카라상 주위에 늘 둘셋이 붙어 있었다.

“알았어.”

선태가 나를 봤다.

“진짜?”

“왜.”

녀석이 피식 웃었다.

“오, 좀 치는데.”

별말 아닌데 괜히 어깨가 펴졌다.

쉬는 시간이 되자 옆 반으로 갔다. 정국이는 창가 쪽에서 애들이랑 떠들고 있었다.

“정국아.”

“어.”

“우리 반이랑 축구 한 판 할래?”

“언제?”

“토요일.”

정국이가 뒤를 돌아봤다.

“야, 토요일에 준경이네랑 할래?”

“콜.”

“하지 뭐.”

정국이가 다시 나를 봤다.

“하자.”

“오케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교실로 돌아오니 선태가 먼저 물었다.

“뭐래?”

“한대.”

“진짜?”

“응.”

선태가 내 등을 툭 쳤다. 점심시간이 되자 몇몇 애들이 내 자리로 와서 정국이네 반 이야기를 물었다. 누가 잘하냐, 정국이는 어디서 뛰냐, 걔네 반 골키퍼도 잘하냐. 사실 나도 다 아는 건 아니었다.

“해보면 알지.”

괜히 많이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토요일이 되자 정국이네 반 애들이 정말 운동장에 나타났다. 우리는 졌다. 그래도 월요일에 선태는 내 어깨를 먼저 툭 쳤다.

웅이는 그런 걸 보여줄 필요가 없는 친구였다. 내 허락 없이 내 도시락에 젓가락을 넣어도 되는 유일한 놈이었다.

“야, 계란말이 하나.”

“너는 말을 하고 먹어라.”

“내 소시지 먹어.”

“안 먹어.”

“그럼 계란말이 두 개.”

“미친놈아.”

그러면서도 하나를 더 줬다.

체육시간이면 웅이는 교실 문을 잡고 기다렸다.

“야, 빨리 와.”

“가고 있잖아.”

“뭘 가. 아직 거기 있잖아.”

우리는 대개 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남의 도시락을 처음 연 날도 체육시간이었다.

배가 아프다고 하고 교실에 남았다. 정말 아픈 건 아니었다. 운동장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삐익.

빈 교실을 한 바퀴 보다가 바카라상 위 도시락 하나를 열었다. 계란말이가 있었다. 하나를 집어먹고 뚜껑을 닫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도시락을 열었다. 빨간 소시지가 있었다. 그것도 하나 먹었다. 밥은 건드리지 않았다. 숟가락 자국이 남으면 금방 알 것 같았다.

하다 보니 나름의 규칙도 생겼다.

한 사람 것에서 하나씩.

그 정도면 모를 것 같았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도시락을 닫고 자리로 돌아가 바카라을 펼쳤다.

문이 열렸다.


선태였다.

“뭐 하냐?”

“뭐가.”

“체육 안 내려가?”

“배 아파.”

선태가 자기 바카라상으로 가다가 멈췄다.

“야.”

“왜.”

“입에 뭐 묻었다.”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선태가 바카라상 위 도시락들을 한번 보고 나를 봤다.

“너 남의 거 먹었냐?”

대답 대신 웃었다.

선태도 웃었다.

“미친놈.”

“먹어볼래?”

“뭘.”

나는 가까운 도시락을 턱으로 가리켰다.

선태가 잠깐 나를 보더니 뚜껑을 열었다.

“이거 누구 거야?”

“몰라.”

선태가 계란말이 하나를 집었다.

그날부터 둘이 됐다.

체육시간이면 가끔 조금 늦게 내려갔다. 한 명이 문 쪽을 보고, 한 명이 도시락을 열었다.

교실_아무것도.png

“야, 이거 맛있다.”

“두 개 먹지 마.”

“왜?”

“티 나잖아.”

“하나씩?”

“어. 하나씩.”

계란말이 하나, 소시지 하나, 동그랑땡 하나.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며칠 지나 은수가 도시락을 보다가 말했다.

“내 계란말이 하나 없는 것 같은데.”

“네가 먹었겠지.”

“아닌데.”

그날은 웃고 지나갔다. 며칠 뒤에는 다른 애가 소시지가 하나 없다고 했다. 또 며칠 뒤에는 동그랑땡 하나가 사라졌다.

“야, 이거 누가 먹는 거 아니냐?”

점심시간에 애들이 도시락 주변으로 모였다.

“맨날 하나씩 없어진다며.”

“누가 하나만 먹냐?”

“도시락 도둑인가?”

선태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밥을 먹었다. 나도 따라 밥을 먹었다. 바로 옆에서는 우리가 없앤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됐다.

“체육시간 아닐까?”

“그때 교실 비잖아.”

“다음부터 개수 세놔.”

그날부터 애들은 자기 반찬을 세기 시작했다. 소시지 여섯 개, 계란말이 다섯 개, 동그랑땡 네 개.

선태와 나는 숫자를 말한 도시락은 지나쳤다.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우리 둘만 알고 있는 일이 반 전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웅이 도시락은 처음부터 건드리지 않았다. 선태 것, 은수 것, 앞자리 것. 하나씩.

웅이 자리 앞에서는 손이 그냥 다음 바카라상으로 넘어갔다.

왜 그러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선태도 그걸 알아챘다.

“근데 너 웅이 건 왜 안 먹냐?”

“뭐가.”

“맨날 웅이 거만 빼잖아.”

“아닌데.”

“맞는데.”

나는 다른 자리로 가려 했다.

“아, 뭐 그냥.”

선태가 피식 웃었다.

“쫄았냐?”

걸음을 멈췄다.

“뭘 쫄아, 이 새끼야.”

웅이 도시락을 잡았다.

뚜껑을 열자 아침에 녀석이 자랑하던 빨간 소시지가 들어 있었다.

“야, 오늘 우리 엄마가 소시지 겁나 많이 싸줬다.”

그 말이 잠깐 생각났다.

그냥 닫으면 됐다.

그런데 선태가 옆에 서 있었다.

소시지 하나를 집었다.

“됐냐?”

입에 넣었다.

선태가 소리 없이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도 웃었다.

뚜껑을 닫고도 방금 비어버린 자리가 눈에 남았다.

그때 복도에서 뭔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문밖을 내다보니 복도 끝에 누군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웅이와 비슷해 보였다.

“뭐야?”

“아니야.”

나는 문을 닫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웅이가 도시락을 열었다. 젓가락이 멈췄다.

소시지를 한번 세더니 다시 셌다.

나는 밥을 먹는 척했다.

웅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이 잠깐 선태 쪽으로 갔다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왜?”

내가 먼저 물었다.

웅이가 나를 조금 오래 봤다.

“아무것도.”

웅이는 도시락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날 소시지가 없어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선태도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신경 쓰였다.

다음 날 1교시가 끝나자 담임이 출석부를 덮었다.

“준경아.”

고개를 들었다.

“네.”

“잠깐 나와.”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웅이가 보였다.

녀석은 바카라을 보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담임이 자기 바카라상 옆에 나를 세웠다.

“친구들 도시락에 손댔니?”

심장이 한번 크게 뛰었다.

잠깐 있다가 대답했다.

“네.”

“계속 네가 먹은 거야?”

“네.”

“혼자 한 거야?”

“네.”

대답은 금방 나왔다.

선생님이 나를 한동안 봤다.

“왜 그랬어?”

그건 잘 몰랐다.

처음 계란말이를 집어먹은 이유도, 계속했던 이유도, 굳이 웅이 것까지 먹은 이유도.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였다.

“배고파서요.”

말하고 나니 쑥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씩 웃었다.

선생님 얼굴이 굳었다.

“웃음이 나와?”

얼른 입술을 말아 넣었다.

“아니요.”

“배고프면 말을 해야지. 왜 친구들 걸 몰래 먹어?”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뭐라고 더 말했지만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웅이가 도시락을 보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교실 문을 열자 몇 명이 나를 봤다.

은수가 먼저 물었다.

“왜 불려갔어?”

“그냥.”

“도시락 때문에?”

가방에서 바카라을 꺼냈다.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설마 너였냐?”

손이 잠깐 멈췄다.

“어.”

“진짜?”

아이들이 하나둘 나를 봤다.

“미친놈.”

“내 것도 먹었어?”

“야, 그래서 계속 하나씩 없어진 거야?”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누군가는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며칠 동안 아무 이름도 없던 일에 내 이름이 붙었다.

웅이만 아무 말이 없었다.

창가에 앉아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쪽을 한번 봤다.

웅이는 페이지를 넘겼다.

묻지 않았다.

며칠 지나자 반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갔다. 애들은 몇 번 도시락 도둑이라고 놀리다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태도 그대로였다.

“야, 체육.”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를 쳤다.

웅이도 나와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지우개 있냐?”

“어.”

건네주면 받았다.

“고맙다.”

그 정도였다.

다만 체육시간이 되면 더 이상 교실 문을 잡고 기다리지 않았다. 복도로 나가면 웅이는 이미 선태나 은수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따라잡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다.

두세 걸음만 빨리 가면 됐다.

나는 뛰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웅이가 자기 바카라상을 먼저 내 쪽으로 붙였다. 어느 날부터는 선태나 은수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나는 선태와 밥을 먹었다.

“야, 정국이네랑 또 할까?”

“몰라.”

“네가 얘기해봐.”

“나중에.”

두 자리 건너편에서 웅이가 웃었다.

예전에는 바로 옆에서 듣던 웃음이었다.

무슨 이야기 때문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쪽을 보고 있었다.

선태가 내 시선을 따라갔다.

“뭐 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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