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영원한 것은 없다.
2014년 10월 27일, 밤 9시 24분
가방을 내려놓지 못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켰다. 구두를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오늘도 늦었다. 저녁은 뭘 먹을까 생각하며 습관처럼 TV부터 켰다. 딱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었던 건 아니다. 집에 돌아오면 늘 그랬다. 옷을 갈아입고 씻고 냉장고를 열어보는 동안 집 안에 사람 목소리가 흘렀으면 했다.
한 손에는 아직 회사 가방이 들려 있었다. 리모컨을 눌렀다.
화면이 켜졌다.
가방을 내려놓으려던 순간이었다.
화면 아래로 자막 하나가 지나갔다.
가수 신해철 사망.
손이 멈췄다.
“응?”
TV를 쳐다봤다. 자막이 다시 지나갔다.
가수 신해철 사망.
“해철이 형이 죽었다고?”
며칠 전부터 위중하다는 뉴스는 봤다. 갑자기 쓰러져 수술을 받았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앵커가 말했다.
신해철 씨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고.
화면이 바뀌었다. 병원 건물이 나왔다. 그의 사진이 나왔다. 긴 머리의 신해철, 짧은 머리의 신해철, 무
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신해철.
나는 가방을 든 채 TV 앞에 서 있었다. 앵커는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화면이 조금 흐렸다. 눈을 깜빡였다. 그대로였다. 다시 한번 깜빡였다.
뺨에 뭔가 닿았다. 손등으로 닦았다.
젖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울고 있었다.
‘뭐지?’
다시 눈가를 닦았다. 또 흘렀다.
신해철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울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손에 아직도 회사 가방을 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툭.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TV에서는 계속 그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를 천재라고 했고, 시대를 앞서간 음악인이라고 했다. 그런 말들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화면 속 얼굴을 보고 있는데 다른 목소리가 떠올랐다. 늦은 밤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낮고 느린 목소리. 고스트스테이션. 마왕. 그 목소리를 듣다가 잠든 밤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목소리는 기억났다.
눈물이 또 흘렀다.
이상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해철이 죽었대.”
“진짜?”
“어.”
잠깐 말이 없었다.
“근데 나 울었어.”
“오빠가?”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어.”
“왜?”
나는 TV를 봤다. 화면에는 젊은 시절의 신해철이 웃고 있었다.
“모르겠어.”
전화를 끊었다. TV는 끄지 않았다. 소파에 기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뉴스가 끝난 뒤에도 그의 옛날 영상이 계속 나왔다.
무대 위의 신해철이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 마이크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러다 다른 마이크 하나가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이었다.
노래방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노래바카라이 놓여 있었다. 지금처럼 화면을 눌러 노래를 찾던 시절이 아니었다. 어린 나는 노래바카라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촤락.
촤락.
손가락으로 빼곡한 제목들을 훑다가 익숙한 제목 하나에서 멈췄다.
날아라 병아리.
옆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고 리모컨을 들었다.
삑. 삑. 삑.
화면이 바뀌었다.
N.EX.T 〈날아라 병아리〉
전주가 흘러나왔다. 나는 마이크를 들었다. 친구들이 옆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노래방이 어디였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이크를 들고 있던 어린 나는 기억난다.
나는 그 노래를 참 좋아했다. 왜 좋아했는지는 몰랐다. 노래 속에는 작은 병아리 한 마리가 있었고, 어느 날 그 병아리가 죽었다.
어제까지 있던 것이 오늘은 없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알았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그 노래를 부르면 이상하게 슬펐다.
나는 마이크를 입 가까이 가져갔다.
노래를 시작했다.
다시 2014년의 거실이었다.
TV에서는 여전히 신해철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서른넷의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조금 전까지 들고 있던 회사 가방이 놓여 있었다.
TV 속 신해철도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기억 속의 소년도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이 있었다.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무대 위의 신해철이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화면을 바라봤다.
스무 해도 더 전, 작은 병아리의 죽음을 노래하던 아이는 그 노래가 왜 그렇게 슬픈지 몰랐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그날 밤, 서른넷의 나도 왜 울고 있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