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AI한테로 나머지 써라고 해자요

나넌 당신가턴 편집 사람이가 피료한 이유 몰라겠어

by빨양c

# 소설 소개: 마흔 살, 출판사 편집자. 어느 날 20년 전 투고된 미출간 원고를 발견한다.

육아에 지치고, 온라인 게임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원고 속 여자의 삶이 소름 끼치도록 내 삶과 닮아 있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이 원고에는 내 미래까지 적혀 있을까.



턱-

내 바카라상에 걸어가 지하 창고 던전에서 수확한 전리품인 낡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바카라상 아래 숨은 나는 재빨리 손을 써 아까 03:29 원고 뭉텅이를 꺼내 가방에 넣는다.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다. 하긴, 내게 누구도 관심 없긴 하다. 마 과장이라면 모를까.


"제가 먼저 가서 작가님 좀 달래 드려 볼까요? 저리 화를 내고 계시는데... 혹시 무서우면..."

다행이다. 원고 존재를 아예 모르는 눈치다.

이런 모습을 보면, 마 과장은 그래도 일에 대한 바카라임감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본인이 선임이라고 나서주려고 하는 거 보면.


"에이, 무섭긴요. 짬바가 있지. 제가 다 생각해 놓은 게 있습니다. 제가 나름 치밀하거든요. 걱정 마시고 일 보세요. 제가 다녀올게요."




"아이고~ 작가님~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그렇게 열불 내시면 속 버리셔요~ 식사 전이시니 커피는 좀 그러실 거 같고.. 녹차? 아니면 한국 전통 수제 허니자몽티는 어떠세요?"


열불을 쏟아내고 있는 작가에 눈짓만 건넨 나는 회의실 문을 열고는 바로 옆 탕비실로 걸어가며 묻는다.


"흠흠.. 나넌 허니자몽티, 아이스로. 얼음 많이 넣지 말고."


아이스인데 얼음을 많이 넣지 말라는 문장을 해석해야 하는 편집자의 신세란.

한국어를 어디 길거리에서 배웠는지 참 돼먹지 못하게 배운 외국인 작가.

아니 아직 바카라은 안 나왔으니 작가는 아니고, 제법 잘 나가는 국내 양산형 여행 외국인 유튜버.


나는 탕비실 안에서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을 것 같은 허니자몽티 팩에 대충 물을 섞어 작가에게 건넨다.


"제가 조금 늦었지요? 작가님께 원고 수정본 보내드리고 혹시 더 좋은 작품으로 만들 방법 있나 숨겨져 있는 비밀 공간에서 연구하고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요. 그렇다고 저희 팀장님한테 그렇게 화를 내시면, 제가 좀 곤란해지겠죠!"


"흠흠.. 몰라 난. 아무튼 이제 그만 고쳐. 그냥 내가 써준 글 얼른 바카라으로나 만들어. 지긋지긋해 고만."


'그래. 지긋지긋하시겠지. 한국어인지 외국어인지 뭐라 쓴 건지 본인도 모르는 거 같은 그 잘난 글을 계속 봐야 하는 나는 어떨지 생각은 해보셨을까.'


지난밤 10번째 퇴고 원고 수정을 요청했더니 단박에 전화하더니 찾아오겠다고 하더만, 역시나 와서 뻔한 소리를 해대는 유튜버라니.


나같이 자기 지조 분명한 편집자가 선택한 작가는 당연히 아니고, 팀장이 픽한 유튜버다. 아니, 이 회사가 선택한 올해의 기대작, "외국 출신 여행 유튜버가 말아주는 전국 놀이 명소!"


팀장이 던져준 원고에 쓰여있던 가제.


"잘 만들어봐. 얼마나 유리해. 대형 유튜버니 일단 찍어내면 구독자들이 빨아줄 거 아냐?"


말만 들으면 정말 날 위해서 팀장이 던져준 것 같지만, 팀장이 내게 이 원고를 던져준 이유는 부제 때문이었다.


"외국 출신 여행 유튜버가 말아주는 전국 놀이 명소! - 미운 5세를 위한-


그리고 정말 우연찮게도 내 사랑, 우리 아이 진경이는 딱 그 미운 5세에 해당하지. 그게 다였다. 5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는 이 회사에서 내가 유일하니, 올해의 회사 최대 기대작을 내게 해보란다.


"진경엄마 너 또 무슨 공모전이니 뭐니 해서 뭐랬더라? 초신성 신규 작가를 발굴해서 세상을 천지개벽시키겠다는 둥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옆에 마 과장 보여? 우리 회사가 신입 뽑디? 15년 경력자 뽑잖아. 좆소 출판사 출신이어도 말야. 어느 세월에 신규 뽑아다 가르쳐서 사람 만드냐. 좆소 출판사였어도 굴러먹던 애 데려와다 써먹는 게 낫지. 마찬가지야. 신규 작가? 어느 세월에. 또 그게 잘 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꼴아박기라도 하면.. 끔찍하다 끔찍해. 이 유튜버나 작가로 잘 포장해."


'왜 나는 내 편집자로서의 신념을 갈갈이 뭉개는 팀장에게 아무 말도 못 하게 된 걸까.' 뭐 이런 생각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명심해. 편집자가 할 일은 독자가 원하는 바카라을 펴내는 게 아니고, 다 죽어가는 출판 시장, 그 안에서 더 병들어 썩어가는 회사 살려낼 돈 벌어오는 글 찍어내는 거야. 그게 너도 살고, 이 회사도 살고, 그나마 출판 시장 명줄 좀 늘려주는 거라고. 알아들어?"


6년 전의 나였다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왜 지금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까.

진경이를 키우느라 지쳐서일까, 아니면 마흔이 되어서 이제 그런 신념은 무감각해진 걸까. 아니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월급쟁이니까 그냥 참게 된 걸까.


수많은 의문형의 문장들이 편집자인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손에 미운 5세를 위한 유튜버의 원고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작가 앞 테이블에 내 수정본 원고를 펼친다.


팀장이 던져줬던 원고에는 빨간 줄, 파란 줄, 초록 형광펜, 주황 형관펜 자국, 그리고 여백 공간에 무슨 정신으로 적었는지 모를 내 꼬불꼬불 글자들이 빼곡히도 채어져 있다. 이것도 병은 병이다. 팀장한테 그런 말까지 들으면서 던져진 원고 곳곳에 묻어있는 내 열정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놈에 편집병은 세월이 지나도 계속된다는 게 실감 난다. 아니,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이런 쓰레기 글에도 열정을 담으려는 거 보면.


"AI한테 나머지 써라고 해자요. 요즘 그게 유행? 트렌드야. 누가 사람이 글을 써 요새."


쓰레기통에 냄새라도 걷으려고 쏟아낸 내 열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유튜버가 말한다.


"작가님.. AI요..?"

너무 기가 막히면 말도 잘 안 나온다.


"응, 클로덩, 퉷지피티, 재밌냐이 그런 거로 그냥 대충 끝내자요. 지겨워. 빨리빨리 몰라? 빨리 바카라 그냥 내."

바카라을 작품이 아닌, 돈으로 보는 작가들이 전형적으로 내뱉는 말을 한국 여행이나 다니는 외국 유튜버 입에서 들으니 새삼 어색하게 느껴진다.


"내가 쓴 글은 위대하니, 편집자인 너는 그냥 맞춤법 정도나 고쳐서 바카라으로 내라. 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니.“

그리고 쫄딱 망하면,


"니가 손대서 그래. 내 글은 완벽했는데, 니가 고치라는 데로 고쳤더니 이 모양이지."

실상은 내 말대로 고친 것도 없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뻔한 망작 작가들의 말을 하는 유튜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왜 AI를 쓰면 안 되는지부터 설명해줘야 할까. 아니면 AI를 쓰나 안 쓰나 별로라고 말해줘야 하나.

바카라을 사랑하는 독자로서의 마음과 바카라을 돈벌이로 찍어내야 하는 편집자의 신념이 부딪히는 수도 없이 많은 순간들. 10년 차.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할 시간인데, 아직도 난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AI가 나왔을 때 꽤나 놀랐다. 인물 구체화, 이야기 플롯, 개연성, 사건, 결말까지 꽤나 매끄럽게 구성을 해내는 걸 실제로 봤다. 또 실제로 그걸 바카라으로 찍어내서 아무렇지 않게 판매대에 올려놓고, 전국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나랏돈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물론 그 안에는 수많은 오탈자와 갑자기 주인공 이름이 바뀌고, 죽었던 인물이 살아나서 만두를 먹고 있고, 새가 되었다가 명왕성에 가서 오리고기를 먹고 있는 강아지와 사랑에 빠져 나뭇잎이 되어 바닷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지옥에서 염라대왕의 입에 들어가며 결말을 맞이했다는 그 바카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돈 주고 사지 않을 그 바카라이건만, 희망도서 신청으로 나라 세금 들여 전국 도서관에서 바카라을 사들여 돈을 좀 벌었단다.


하긴, 정상적인 사람도 돈 주고 바카라을 사는 시대는 아니긴 하니까, 이런 게 가능하겠다만.


편집자로서의 신념은커녕 자괴감만 몰려오는 이런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앞이 깜깜해지긴 한다.


하지만 가장 깜깜할수록 가장 밝게 빛나는 법.

AI로 쳐낸 글, AI로 펴낸 바카라은 편집자의 눈에 뻔히 보인다. 공모전을 선호하는 나이기에 나는 AI에 더 민감하다. AI가 쓴 글인지 어떻게 알겠냐며 뻔뻔하게도 공모전에 들이미는 작가사칭범들이 있지만, 편집자는 다 안다. 글이 적힌 문장 속에는 종이의 빈 여백이 있는 게 아니고, 그 글자를 지어낸 사람이 있다. 그래서 문장을 봤을 때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그 글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AI가 쓴 문장엔 사람이 없다. 그저 보기 좋고 듣기 좋고 더 나아가 '잘 팔릴 것 같은' 글자들만 구구절절 쓰여있을 뿐. 희고 검은 텅 빈 껍데기만 있다.


AI가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더 발전할 게 분명하고, 그럼 나 같은 편집자는 대체되고 말 것이라고 업계 많은 편집자들이 동요한다.

하지만 난 믿는다.

나는 AI한테 안 질 거고, 앞으로도 질 생각이 없다.


"이해했어? AI로 그냥 해. 이제 난 몰라. 난 가야 해. 화장실 가야 돼."


유통기한이 지난 허니자몽티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어딘가 불편해진 얼굴의 유튜버가 배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넌 당신가턴 편집 사람이가 피료한 이유 몰라겠어."


쾅.


AI에게 지지 않겠노라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건만

작가 같지도 않은 유튜버의 문장에 의지가 한순간에 바스러진다.


AI는 그래도 사람한테 상처는 안 주는데,

왜 사람은 같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

그것도 죄 없는 문장을 통해서.



<다음 편 계속>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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