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물
생화로 만든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다. ‘보존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1년~ 5년까지 모습이 유지된다. 생화가 가장 아름다울 때 물기를 제거하고, 식물체에 특수용액을 사용하여 착색과 보존을 거쳐 만든다. 마른 꽃처럼 부서지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화의 촉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수명이 긴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다. 하바리움이다. 하바리움(Herbarium)은 허브(Herb)와 아쿠아리움(Aquarium)의 합성어다. 부케나 오래 보존하고 싶은 식물을 특수 오일이 담긴 투명 용기에 넣는다. 용기의 투명도와 특수용액인 미네랄 오일로 인해 굴절이 생기면서 원래 모습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 식물 키우기 어려운 장마철이나 해가 잘 들지 않거나 환기가 잘 안 되는 공간의 그린 인테리어로 적합하다.
빛의 방향이 꺾여 더 돋보이게 하는 굴절의 시선이 때로는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기에 복지관 어르신이 앉아 있는 바카라상에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여섯 명씩 앉는 테이블에 가로 두 칸 세로 세 칸의 투명 아크릴판이었다. 원예 수업을 위한 시야는 확보되었지만 가림막 때문에 개별지도를 하느라 애 먹었다. 더 힘든 건 수업 중 나오는 불만이었다.
여러 해 만나온 어르신이라 성향과 질환까지 파악하며 신뢰하고 있는 관계인데 전과 다른 반응이 나왔다. “선생님, 나는 왜 이리 섭섭하게 주나.” 하시며. 똑같은 양의 꽃을 나누어 주었는데 다르게 보았다. 꽃장시 왔수 하면서 항상 반갑게 인사하던 어르신이다. 하루 종일 마스크 쓴 채 가림막으로 된 공간에 오랜 시간 앉아있어 예민해져 그런가 생각하고 마음 상하지 않게 몇 번 수업을 이어 왔다.
어느 날, 수업 후 일지를 쓰기 위해 칸막이가 되어 있는 빈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크릴 판에 둘러싸여 있는 좁고 낯선 자리 앉으니 왜 어르신들이 불만을 계속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크릴판을 거쳐 보이는 앞자리 물건이 좀 더 크고 진하게 보였다, 눈으로 볼 때와 다르게. 다음 수업으로 하바리움 만들기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하바리움을 직접 만들며 굴절에 대한 이해와 눈의 오해를 풀 수 있기를 기대하며.
어르신들은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만져보며 깨끗한 용기에 하나씩 담은 후 미네랄 오일을 조금씩 부었다. 기름에 잠긴 꽃이 서서히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였다. 어르신에게 낯선 ‘굴절’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유리컵에 연필을 넣어 바르게 서 있는 막대도 물속에서 꺾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여주었다. 주변 동료의 화분이 본인의 화분보다 좋아 보였던 이유는 굴절이 한몫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내 것을 더 좋은 것처럼 본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바카라상을 갈라놓은 가림판도 굴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깨끗하게 완성한 하바리움을 들어보며 어르신이 한 말씀하셨다. “말라빠진 꽃이 기름 속에 들어가니 신수가 훤하네그려” 굴절을 제대로 이해하였는지 못내 섭섭한 마음을 비치던 어르신이 속 시원히 화답하였다.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물속에 있는 물건이 가까워 보이고 빗방울이 무지개가 되어 더 멋지게 보이는 굴절이, 내 것이 아닌 것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야박한 속내를 만든다. 물리적 굴절만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 다른 각도의 굴절을 가지고 있다.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나만의 공식으로 계산되어 도착한다. 나의 굴절은 나를 더 빛나게 하고 초라하게도 할 것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것이 다 좋아 보이는 빗나간 굴절로 온통 채워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 기억하려 한다. “말라빠진 꽃이 기름 속에 들어가니 신수가 훤하네그려.” 우리의 시선은 무엇으로 둘러싸여 있을까. 굴절의 각도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필연적인 눈의 오해를 잠시 측정해 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