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물
시월이 되면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축제를 한다. 학교 운동장에서 가을 운동회를 하듯. 이름은 ‘어울림 한마당 축제’로 올해가 7회째이다. 코로나로 쉰 3년의 시간을 제외하고 입주 후 해마다 열린다. 착한 플리마켓, 작은 도서관 프로그램 체험부스, 장기자랑, 스포츠 경연, 가족사진 촬영 선물, 어린이 그림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한다. 그중 인기 있고 눈에 띄는 것은 도서관 프로그램 체험부스와 바비큐 소풍 존이다.
바비큐 소풍을 신청한 가족들은 아파트 지정공간에 만들어진 텐트에서 야영하듯 하루를 즐긴다. 불판에 고기 구워 식사할 수 있고 누워서 바카라을 보아도 된다. 그저 즐기면 된다. 가족들이 모여 있는 텐트도 있지만 아이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초대하여 친목모임을 가지는 곳도 있다. 초대되면 돼지고기 목살이나 장아찌 같은 것을 챙겨 간다. 우리 집을 쳐다보며 먹는 야외 고기구이의 맛은 정겨운 사람의 이야기와 곁들여 일품이다.
도서관 프로그램 체험 부스에는 가드닝, 종이접기, 켈리그라피가 운영되었다. 체험한 것을 가져갈 수 있기에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인기가 있어 항상 북적였다. 아파트 중심에 있는 작은 도서관은 부동산에서 아파트를 소개할 때 제일 먼저 보여 준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가족들이 체험할 수 있어 가을 축제 분위기를 한층 높여주었다.
가드닝 부스는 식물 만나는 행사를 한다. 화분에 식물을 직접 심어보고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작년까지 두 해 동안은 장미심기 행사를 하였다. 우리 아파트는 철쭉꽃이 많아 철쭉제를 지내도 될 만한 조경을 가졌다. 하지만 더운 여름 주변 아파트 담장 너머로 흘러내리는 장미 덩굴의 입체적인 매력이 돋보여 추가로 식재하게 되었다. 주민들의 의견으로 뜨거운 햇빛에 철쭉꽃이 녹아내릴 때쯤 새로 눈을 뜨는 장미꽃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접 심은 가족의 이름을 단 어린 묘목 넝쿨장미는 해가 거듭되면서 가지가 제법 굵어져 여름을 즐겁게 한다.
올해는 선인장 심기를 하였다. 선인장은 다육식물의 한 종류이며 잎이 가시로 변한 것을 말한다. 다육식물은 잎, 줄기, 뿌리에 수분을 저장하는 식물들을 통틀어 말한다. 선인장이 다육식물의 하위그룹인 것이다. 가지가 없거나 만져도 따갑지 않으면 다육식물이지만 선인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키우기 쉬운 ‘염좌’를 준비하였다.
30분 간격으로 10명씩 7회에 걸쳐 진행하였다. 다양한 세대의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식물 심기에 집중하는 모습은 축제 이름처럼 어울림 한마당 모습이었다. 본인 화분을 완성하고 옆에 앉아 혼자 심고 있는 어린아이를 도와주는 어르신의 눈빛은 자신의 손자를 바라보는 듯 따뜻했다. 느닷없이 다가와 핸드폰 사진에 들어 있는 식물을 보여주며 말을 거는 주민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의 안녕이 궁금하였다. 이름도 모르며 키우고 있다며 초록화분에 대한 깊은 애정과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키우던 화분의 이름을 확인한 후 돌아서는 뒷모습이 가을 낙엽만큼 가벼웠다.
다육식물은 줄기에 물을 많이 가지고 있어 과습이 되면 쉽게 뿌리가 상한다. 그런 이유로 물 주는 시기가 다른 식물보다 늦어도 된다.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식물을 심다가 선인장은 물을 싫어하는 식물이라 하였다. 물이 없어도 잘 견디는 식물이지 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화를 안 내는 친구가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잘 참아서 그런 것처럼.
가드닝 부스가 마무리되고 도서관에서 같이 봉사하는 친구들이 있는 바비큐 소풍텐트로 걸었다. 조용했던 아파트 거리는 캠핑장으로 변신하였다. 생일이 있는지 케이크를 올려놓고 노래를 부르는 가족, 몇 쌍의 부부들이 모여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텐트를 지나 어묵국물의 하얀 김과 고기 구워 나오는 연기가 섞인 친구 텐트를 찾아들었다. 봉사자 가족들이 같이 고기를 구워주고 이야기하는 동안 몇 년에 이어 만나 온 이 자리의 기억들이 스쳐 갔다. 초등학생이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인사를 하고 키 작은 중학생이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 같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오랜만에 훌쩍 커지고 청년이 된 아이들 모습은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였다.
높은 아파트 건물 사이에도 마당은 있었다. 한 아파트 울타리 안에 살며 내 집에서만 머무른 우리가 마당에서 만났다. 문을 닫아 단절된 시간을 열고 마당에 모여 서로 얼굴을 마주 했다. 가드닝 특강에서 만든 염좌 화분의 초록빛은 집안을 환하게 하고 붉게 물든 벚나무 밑에서 함께한 이야기는 우리들 집을 넓게 만들었다. 아파트 길은 앞마당이 되고 정원이 되었다. 시월의 어느 날, 풍성한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