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오늘의 식물

by조이 영


식물을 싣고 거리를 나선 지 여러 해가 흘렀다. 꽃꽂이강좌라 불리던 수업이 플라워클래스가 되고 생활원예는 가드닝이라 불리고 있다. 강사로 사람들 앞에 섰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선생님이었고 가지고 간 식물은 스승이 되었다. 가르치려 했는데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자연의 큰 선물인 사람과 식물을 마주하는 일이라 그랬으리라.


흙 속에 있는 물도 흐르는 물이 되어야 식물이 잘 자란다. 화분 속 식물 뿌리가 물을 흡수해 겉흙이 마를 정도가 된 후 물 주기를 해야 고인 물처럼 썩지 않고 흐르는 물이 된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였다. 물이 부족하면 뿌리가 물 있는 곳을 찾아 뻗어 가며 튼튼해진다고. 반복하던 말은 아이들 용돈도 화분에 물 주기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식물을 잘 키우려면 환기를 자주 하라고 이야기한다. 공기의 흐름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 공기, 햇빛 중 물과 빛의 양은 부족한 환경에 적응이 가능하지만 공기가 흐르지 않으면 물과 빛은 그 역할을 못하고 속수무바카라으로 뿌리가 상하게 된다. 사람에게 물과 빛은 경제적 지원이고 공기는 집안 분위기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제적 결핍보다 사랑의 결핍이 성장에 더 치명적인 것처럼. 식물을 통해 배운 것으로 아이를 키우고 더불어 나도 성장하였다.


수업에서 만나는 수강생 통해 새로운 것을 알기도 했다. 식물 파키라 심기를 하면서 남편이 사업을 하여 집에 꼬인 것이 있으면 안 된다고 휘감고 자라고 있는 파키라줄기를 다 풀었다. 어느 분은 귀신이 뾰족한 부분에 있다고 산세베리아를 화분에 심고 줄기 끝을 가위로 자르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요즘 산세베리아 줄기 끝에 작은 모자를 씌워서 팔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든 위험한 것은 피하고 좋은 것을 가까이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식물 선택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계절을 건네며 가장 큰 고마운 일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다양한 대상자들을 만나 좋은 일만큼 어려운 일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자극도 흡수되는 대상이 있다. 어르신들이다. 부모님 떠나 외가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이 상처인지 알았다. 하지만 긴 머리 빗겨주며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어 주신 외할머니의 충분한 사랑이 알지 못하는 곳에 층층이 쌓여 있었나 보다. 치매어르신이나 보청기가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듣는 욕까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처로 알고 있던 시기에 받은 사랑을 어르신들 만나 찾았다. 어르신들의 품위 있는 행동이 힘이 될 때도 많다. 토마토 농장하셨던 어르신에게 작은 화분에 방울토마토 모종 심기를 하여도 기쁘게 작업하던 모습은 노년이 초라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업으로 만나는 사람과 식물을 보며 나 스스로도 계절을 두드리며 간다. 내일도 식물과 함께 사람을 찾아갈 것이다. 아쉬움 없이 기뻐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 한다. 다시 오는 이 가을은 그때 그 가을이 아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