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가을 농사

오늘의 식물

by조이 영

가을 농사는 8월 입추 더위에 시작한다. 가을 농사 작물은 배추, 무, 상추, 시금치, 당근, 깻잎, 쑥갓이다. 주로 김장에 필요한 작물을 심는다. 특히 배추는 한여름 더위가 한창인 8월 중순 전에 심기를 서둘러야 한다. 차가운 서리 내리기 전 배추 속이 야무지게 차야 하기 때문이다. 더위 속에서 배추 모종을 시작으로 가을 작물이 자란다.


밭에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종자를 뿌리면서 가을 농사가 시작되지만, 베란다 텃밭도 여의치 않는 노인 주간보호 센터 원예수업에서 가을 작물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제때 만나야 할 가을 작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카라상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작물이 있다. 쉽게 심을 수 있고 키우기도 쉬운 쪽파씨이다. 9월이 되었다는 것을,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9월 첫 주 수업으로 준비한다. 농사 경험이 있고 작물로 계절을 인식하고 있는 어르신이 쪽파를 심어 보는 것은, 시간의 지남력을 손끝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쪽파는 빛이 약해도 잘 자라 실내재배가 가능하며 어렵지 않게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다. 어르신은 손바닥 크기의 높이와 넓이 화분에 가을농사를 짓는다. 이제 뜨거웠던 태양도 누그러지며 낮이 짧아지고 서늘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여러 해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며 9월이 되면 쪽파를 심다 보니, 어느 어르신은 쪽파심기로 한 해를 가늠하기도 한다. 쪽파종구에서 힘 있게 올라오는 초록 줄기는 화려한 생화만큼 생동감 있고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쇠퇴가 아니라 결실이 되는 것이다.


쪽파 심기 수업에 사용되는 쪽파종구는 8월에 떠나는 휴가지에서 구입한다. 여행지에 도착해 지역 시장을 찾고 시장 맛집도 들른다. 식사 후에 지역 특산물과 쪽파 종구를 구입한다. 시장 여기저기 걷다 보면 따로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나무됫박에 수북이 쌓아놓고 기다리는 어르신을 만날 수 있다. 담아 놓은 양도 인터넷 쇼핑이나 내가 사는 곳보다 훨씬 넉넉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쪽파씨는 씨앗이 아니라 쪽파 종구를 말한다. 마늘처럼 생긴 알뿌리 모양이다. 정확한 의미의 쪽파씨앗은 쪽파에 꽃이 피면 생기는 작은 검은 씨이다. 그 씨앗을 뿌려 수확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쪽파종구를 심는다. 마늘 크기의 쪽파 종구를 쪽파씨라고 흔히 말한다.


쪽파 종구가 넉넉하게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닌 시장은 안동시장, 장수시장. 군위시장. 문경 중앙시장. 단양구경시장. 강진 시장, 속초 중앙시장과 여러 골목길가이다. 쪽파씨를 구하고 나면 휴가 끝나고 해야 하는 수업 재료가 준비되어 시장을 걷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다.


쪽파를 흙에 심기 위해 종구 윗부분을 자른다. 마른 윗부분을 자르고 심어야 굵게 싹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자르지 않아도 큰 차이는 없고 단지 싹이 고르게 난다. 가위로 자르면 뿌리와 머리 부분을 구분해야 하고 쪽파 향이 코를 자극한다. 양손을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며 후각을 자극하여 기억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이다.


부엽토를 일회용 숟가락으로 화분에 담도록 한 후 윗부분 자른 쪽파를 차례로 꽂는다. 쪽파종구 위로 부엽토를 덮어 주며 ‘잘 쉬고 잘 자’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흙 속에 숨어 버린 쪽파 씨를 잊거나 가족들이 빈 화분으로 생각할까 이름표에 이름과 날짜를 직접 써서 달아주며 마무리한다.


앞으로 일주일 이상 흙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싹이 나오려면 땅 속에 말라 있던 종구에 새로운 뿌리가 나온 후 물을 빨아들여야 한다. 싹을 보려면 뿌리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잠잠한 시간을 보내고 싹이 오기 시작한 후 한 달 정도 물 주기를 하면, 시장에서 보는 쪽파가 된다.


농사일을 많이 하여 손가락이 굽어있는 어르신들에게 손바닥 만한 화분에 쪽파씨 몇 개 심는 것이 소꿉장난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때 몇 마지기 땅에 쪽파 밭을 했었어, 하는 어르신의 찬란한 때를 회상하는 그것이 오늘 움직임의 의미가 될 것이다. 화분 안에 있는 작은 쪽파씨는 기억 한 조각과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져다준다.


돈을 주고 쉽게 살 수 있는 쪽파지만 종구를 심고 물 주기를 하며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나면 시장에서 만나는 쪽파가 남다르게 보인다. 실하게 자라 한 다발 묶여 있는 쪽파를 보며 농부의 정성과 노력을 알아챌 수 있다. 직접 심은 쪽파는 트럭으로 이동하지 않고 집에서 키워 내 몸으로 오니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 탄소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오늘 쪽파를 심은 곳을 어르신들의 손바닥밭이라고 하였다. 흙으로 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분을 앞에 두고 이미 다 자란 쪽파가 보이는 듯 쪽파 부침개 이야기와 파김치, 김장 이야기까지 오고 간다. 은은한 파 냄새와 섞여 어르신들의 시간은 하얀 이슬이 맺히는 가을 절기 백로를 지나가고 있다. 쪽파씨가 푸른 대를 올리는 동안 나무들은 여름을 덜어내고 가을 색을 입을 것이다. 쪽파 키우는 9월 한 달 동안 천천히 오는 가을을 집안에 그리고 손안에 담고 지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