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내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
집안의 첫째였던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가족은 도시로 이사를 왔다. 우리 집은 골목길 초입에 위치한 초록색 양철 대문이 있는 한옥집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나온 듯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마루로 올라서면, 왼쪽에 안방, 오른쪽에 작은방이 있었다. 다섯 식구는 안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 그곳은 밤이면 천장을 운동장 삼아 달리기 경주를 일삼는 쥐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쥐들보다 더한 강적은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밤마다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요강 단지를 방문 앞에 두었다. 그야말로 야간 전용 간이 화장실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동생과 방을 나누어 썼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남은 가족이 큰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거실에 모여 생활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으려는 듯 우리는 필사적으로 뭉쳐 다녔다.
내게 혼자만의 방은 주어지지 않았다. 방은 있었지만 내 방은 없었다.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누군가의 딸이자 언니이고 동생인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나누어 써야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사실을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게 사는 줄 알았고, 내게 필요한 것은 방보다는 다른 것들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잠시 밖으로 나가거나, 마음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의 문은 아무리 단단히 닫아도 현실의 소음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작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을 의미하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방해받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울프는 여성이 위대한 문학작품을 남기지 못한 이유는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육의 불평등과 경제적 의존, 남성 중심의 슬롯적 편견에서 찾는다.
울프가 말한 방은 단순히 문을 닫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다른 사람의 필요보다 자신의 욕망을 먼저 들여다볼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아도 된다는 믿음. 어쩌면 자기만의 방이란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시절의 나'는 혼자이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을까?
우리 집 건너편에는 사각형의 반듯한 시멘트 양옥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3학년 무렵 그 양옥집 중 한 군데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안소영... 나의 첫 친구. 그 아이의 집이었다. 친구의 양옥집은 대문을 열면 바로 집 현관문이 나타나고, 화장실과 부엌, 거실과 방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 맨발로 모든 곳을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소영의 양옥집은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소영이 혼자 쓰는 방이었다. 언니와 함께 쓰지 않고 혼자만의 방이라니! 낯설었다. 친구의 방은 내가 알던 세계와는 다른 곳이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선 사람처럼 나는 방문 밖에서 쉽사리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한옥집 건너편으로 얼마나 이사를 가고 싶었던 지 모른다. 친구들과 비밀스러운 수다를 떨고 싶고, 늦은 밤까지 라디오를 듣고 싶은 날이면, 나도 혼자만의 방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게 방은 단순히 잠을 자고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원하는 만큼 깨어있고 나만의 시간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 공간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여성들도 성별에 대한 편견과 남성들의 우월의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유년기 시절 '자기만의 방'이 없었던 나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일까?
돌이켜보면 , 내게는 자기만의 방 대신 다른 방식으로 내면을 키울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내 선택을 존중해 준 아버지 덕분이었다. 나는 "여자라서 "라는 이유로 행동의 제약을 받은 적이 없다. 어릴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삶의 크고 작은 문제를 겪으면서 아버지의 철학은 내 안에 조금씩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정답이라기보다는 삶을 대하는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내 삶을 대신 살아 준 것은 아니다. 그가 남긴 말들을 가지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바카라임진 것은 나였다. 어쩌면 독립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받은 것을 자기 안에서 충분히 숙성시켜 마침내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혼자만의 방을 부러워했고, 그 방에서 누릴 수 있었을 자유를 상상했다. 다만 물리적인 방이 없었다고 해서 내 안에 나만의 세계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존중 속에서 자란 생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내 삶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다.
울프의 바카라을 읽으며 나는 한 여성 작가가 처했던 시대적 한계뿐 아니라,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나누며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기만의 방이란 반드시 혼자 쓰는 방 한 칸을 뜻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비로소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 생각을 내 언어로 써 내려갈 수 있게 된 순간에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나는 글을 쓴다. 어린 시절 그토록 부러워했던 방에서 라디오를 듣는 대신, 내 안에 쌓인 기억과 생각들을 꺼내어 문장으로 옮긴다.
그때의 나에게 방이 있었다면 무엇을 썼을까.
아니, 그 방이 없었기에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이 지금 내 글이 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에게 자기만의 방은 이제야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