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토너들, 당신들의 안부를

스토너, 존 윌리엄스

by테두리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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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평생 조교수. 수업을 들은 학생들조차 그를 거의 기억 못 한다.

그런데 이 "잊혀진 남자" 이야기가 출간 50년 만에 부활해서 유럽 서점가를 휩쓸고, 뉴욕타임스 서평에서 "완벽한 소설"이라 불려지게 된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이다.

"스토너의 인생은 전부 실패했다. 그런데 그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스토너는 결혼 실패, 승진 실패, 사랑까지도 실패한다.
다 잃은 남자가 어떻게 안 진 것인가?


1910년 미주리. 가난한 농장의 외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대학에 가서 농사 기술 배워 와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미주리대 농대생으로 입학한다.

그런데 졸업 필수라서 영문학 교양 수업을 들어야 했고,
거기서 인생이 처음으로 빛나는 순간을 경험한다.
담당 교수 아처 슬론이 어느 날 수업에서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게 한다. 그리고 스토너를 지목하며,

"셰익스피어가 300년을 건너와 지금 자네한테 말을 걸고 있네. 뭐라고 하는 건가?"

스토너는 한마디도 못 하지만
그 순간
교실의 빛이, 창밖의 풍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설명 못 할 무언가가 그의 안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스토너는 부모님께 한마디 말도 하지않고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꾼다. 그리고 평생 그 학교에 남는다.
학생으로, 강사로, 교수로.

그런데 여기서부터 인생의 붕괴가 시작된다.


첫 번째 붕괴는 결혼이었다.
은행가의 딸 이디스에게 스토너는 첫눈에 반해 결혼하지만 가치관과 성격이 맞지 않는 그들은 결한 한 달 만에 실패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진짜 전쟁은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 교수 로맥스는 자신이 아끼는 대학원생 워커를 스토너 수업에 밀어 넣는다. 문제는 워커가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스토너는 원칙대로 낙제를 시키지만 로맥스는 그것을 평생에 걸쳐 갚아준다. 학과장이 된 로맥스는 최악의 시간표 배정, 신입생 수업만 몰아주기, 승진을 영구 차단한다. 스토너는 그렇게 평생 조교수로 남는다.



하지만,
아무도 못 뺏은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강의실.

시간표를 망가뜨려도 승진을 막아도 수업 자체는 아무도 뺏지 못한다. 스토너는 거기서 매번 다시 살아난다. 학생들 앞에서 문학을 말하는 순간만큼은 그는 실패자가 아니었다. 그런 스토너를 보고 느낀 것은 남들이 보기에 인생이 다 무너져도 내가 사랑하는 일 하나가 남아있으면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조용한 소설이 50년 뒤에 부활한 이유이다.



이룬 게 없으면 실패한 인생일까?

스토너는 세상 기준으론 완벽한 실패자이다. 승진도 못 하고 결혼생활도 불행하고 유명하지도 않았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쓴 바카라도 학교도서관 한 귀퉁이에 먼지만 쌓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다. 세상한테는 졌지만 자기 자신한테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 이뤄놓은 게 없어. 인생 망한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면, "이룬 것과 살아낸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너의 모든 침묵과 인내를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다.

그는 아내의 행동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고, 딸이 무너지는 동안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못했다. 캐서린과의 사랑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그의 "고요함"은 때로는 품위였지만, 때로는 회피이기도 했다.


​그래서 <스토너>에서 말하는 '평범한 삶의 위대함'은 모든 불행을 참고 견디라는 뜻과는 다르게 읽어야 한다.
평범한 삶이라고 해서 저절로 위대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알아보고, 중요한 가치 앞에서 정직하려 노력하며, 선택하지 못했던 순간까지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한 사람의 깊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성공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소중한 사람, 마음이 머무는 순간을 발견하는 감각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더라도, 내가 사랑한 것에 진심이었다면 그 삶은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스토너의 삶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에 대한 답은 독자마다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행복은 모든 것을 얻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300년을 건너와 셰익스피어가 조용히 말을 걸어올 지도.




나에게는 50년을 지나 한 남자가 말을 걸어주었다. 스토너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가갈 때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구쳐 한동안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알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갔다. 한평생 가족을 일구어내며 열심히 일하셨던 아버님, 손수 담그신 된장을 퍼 주시는 시어머니. 명절 때마다 짙은 갈색의 참기름을 나물과 전 꾸러미에 넣어 주는 친정엄마. 세월이 흘러갈수록 어깨가 구부정해지고 주름살은 깊어져가는 나의 어른들 모습이 떠오르는 건, 결국 그들이 '스토너'들이었기 때문이리라. 나의 스토너들. 당신들의 안부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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