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미남'은 '섹시함'

미녀, 안톤 체홉

by테두리e



우리는 흔히 미남과 미녀를 객관적 기준으로 말한다. 얼굴의 비율, 분위기, 말투, 지적인 이미지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내가 떠올리는 배우 공유 역시 그렇다. 그는 내게 분명 '미남'이다. 조각처럼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진 전형적인 미남은 아닐지라도, 머리카락에서 눈, 코, 입, 그리고 목선으로 이어지는 모든 움직임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축 처진 눈꼬리는 슬픔을 간직한 듯 보이다가도, 웃는 순간 소년처럼 환해진다. 마치 동네 개구쟁이 같다. 부드러운 컬이 물결치는 곱슬머리는 이마와 볼에 자연스러운 음영을 만들며 그의 얼굴에 서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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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남과 여'에서 그는 가장 뜨거울 때, 가장 차갑게 끝나는 사랑을 연기한다. 핀란드의 설원 위에서 펼쳐지는 영화에서 공유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서툴고 뚝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떠나가는 연인 앞에서는 차마 붙잡지 못하는 애절한 눈빛만을 보낸다. 내가 너무나 동경하는 그런 눈빛.


나는 그의 외모 뿐 아니라 분위기와 연기에도 끌린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말하는 '미남'과 '미녀'는 과연 객관적 기준일까?

아니면,

우리가 덧씌운 서사와 욕망의 결과일까?



'미남'또는 '미녀'의 아름다움은 과연 대상 그 자체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관계와 인식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안톤 체호프의 「미녀」는 바로 이 사랑의 방식 차이를 통해 ‘미’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다.


​내 머릿속으로 휘익 바람이 불어오더니 권태며 먼지와 같은 오늘 하루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8월의 폭염이 들끓는 끔찍한 날씨를 뚫고 마차를 타고 가던 소년은, 할아버지의 친구인 아르메니아인의 집에 들르게 된다. 어디를 보아도 파리만 들끓는 권태로운 공간에서 소년은 모든 무료함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존재를 마주한다. '미녀'였다. 수수한 사라사 옷에 하얀 머릿수건을 두른 열여섯 살가량의 소녀, 마샤.



갑작스럽게 미인을 마주한 소년의 감정은 급격히 흔들린다.


'마샤를 보고 있노라면 당신은 무언가 특별히 즐겁고 진실한 이야기를, 그녀 자신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녀에게 하고픈 욕망을 점점 더 느끼게 될 것이다'​



소년은 마샤가 자기를 쳐다보지 않아서 괜히 화가 나고 이유 없이 부끄러워진다. 조금 전까지 코를 찌르던 먼지, 권태도 사라지고, 귓가를 맴돌던 윙윙거리는 파리소리 마저 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오직 그녀 중심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소년의 감정은 단순한 설렘만이 아니라, 어딘가 모를 슬픔이 함께 스며든다.


마샤가 나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것은 욕망도 열광도 쾌감도 아니었으며 어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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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슬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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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흔치 않은 아름다움이 우연히 나타났다가 곧 사라져 버릴, 어쩌면 불필요하다 못해 무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막연히 느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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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미 여자와 아름다움에 무관심해졌을 법한 팔십 노인인 할아버지조차 마샤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본다. 아름다움은 세대를 넘어 같은 방식으로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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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슬픔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설렘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소년은 소녀 마샤가 지금 내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자각을 한다. 그래서 그는 슬퍼지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존재... 체홉의 단편 '미녀'는 결국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마치 이 문장은 우리에게 이렇게도 묻는 것 같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하는가?

소유하려 하는가?

아니면, 바라보는가?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사랑을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상대 위에 빛나는 결정을 입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순간의 인상을 붙잡아 그 위에 의미와 아름다움을 덧쌓아 간다.



스탕달이 말한 '결정'처럼 소년은 마샤라는 존재 위에 자신의 상상과 감정을 덧쌓은기 시작한다. 실제의 마샤보다 소년의 마음속에서 마샤는 더욱더 반짝인다.



어쩌면,, 소년은 '단순한 예쁨에 대한 감탄'이라기보다 자기 내면의 결핍과 욕망이 외부대상에게 투사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소년의 결핍은 뭘까?



8월의 폭염, 먼지, 파리, 지루함 그 공간은 생기보다 권태가 가득 찬 공간이다. '마샤'는 이 지루함에서 나를 구해 줄 무엇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마샤가 자신을 쳐다보지 않을 때, 소년은 화가 나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고, 내가 매력적인 존재인지 확인받고 싶은 욕망이 좌절되어서 나타나는 반응일 수도 있다.


소년이 미인을 보고 느낀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자아가 만들어낸 투사에 가깝다.


그는 마샤를 본 것이 아니라, 마샤 위에 자신의 갈망을 얹어 놓았다.



나의 갈망은 뭘까?

내가 좋아하는 미남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다시 공유를 떠올려본다. 오뚝한 콧날선과 날렵한 턱으로 이어진 단단한 옆모습에 길쭉하고 시원시원한 다리까지 이어지는 그의 몸선은 숨 막히는 활화산의 압력과도 같다. 내가 만약 가까이 서 있었다면 숨이 가빠지는 걸 넘어 분명 기절했을 것이다. 말없이 서 있기만 해도 쩍 벌어진 어깨에서 힘이 느껴진다. 내가 말하고 싶은 섹시함이다.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섹시함'이다.



한쪽 팔을 의자 뒤로 느슨하게 늘어뜨린, 무척이나 여유 있는 자세이지만, 그와 반대로 '유현준 교수'의 입에서는 자신의 철학과 아름다운 건축 이야기가 명료하게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뇌가 섹시한 남자의 표본이지 않은가.



LA공연장에서 BTS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몰입해 있을 때, 내 시선은 어느 순간 한 사람에게 붙들렸다. 연한 청남방을 입고 푸른 선글라스를 낀 '지민'은 카메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가 장난처럼 다시 멀어졌다. 무대를 장악하는 몸짓은 과감했지만, 웃는 순간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순한 얼굴이 드러났다. 날렵하게 떨어지는 춤선과 가볍게 튀어 오르는 몸은 관능적이었지만, 눈웃음 짓는 순간은 소년처럼 맑아졌다. 귀여움과 관능이 동시에 느껴지는 얼굴, 그 반전이 숨을 멈추게 했다. '섹시하다'라는 말이 떠올랐고 그는 내게 '미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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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처음 남자로 인식했던 순간도 이 '섹시함'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처음으로 운전을 가르쳐 줄 때였다. 핸들을 잡은 손, 단호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목소리, 차선을 바꾸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통제하는 태도. 그 순간 나는 ‘잘생김’이 아니라 ' 은근한 섹시함'을 본 것이다. 아하 이런



나는 왜 '섹시함'이 끌릴까?

섹시함이 왜 '미남'의 기준이 되었을까?


나는 본능적으로 ‘힘’을 감지하는 사람이다. 세상과 맞서고, 밀어내고,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는 감각이 몸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매력은 단순한 얼굴의 비율이나 분위기가 아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단단한가, 얼마나 중심을 잃지 않는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말하는 섹시함 역시 거기에 있다. 노출이나 자극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태도, 쫙 벌어진 어깨, 상황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눈빛. 그 힘이 몸을 통해 드러날 때, 나는 비로소 안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안심이 설렘으로 바뀐다.


어쩌면 내가 섹시함에 끌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늘 강해야 했던 사람이 잠시 힘을 내려놓고 기대도 될 것 같은 대상을 만났을 때, 그 단단함이 매혹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섹시함'은 외모가 아니라 '에너지'다.


잘생김이 아니라,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힘이다.


스탕달 적 사랑에서 처럼 내 갈망과 욕망이 상대에게 빛나는 결정을 입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