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의 시간 안에서 탄생하는 것들

시대예보:경량문명의 탄생, 송길영

by테두리e
자연과 생육의 시간 안에서 탄생하는 것들은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그 존재가치가 생생하게 남을 것입니다


아홉 명의 여성이 있어도 한 달 만에 아기를 낳을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생명의 탄생을 병렬화 할 수 없기에 산모 아홉 명이 있어도 아이를 더 빨리 낳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시간이 생산의 소중한 자원으로 쓰이는 결과물들은 눅진한 시간의 발효가 있어야 한다. 시간의 축적 없이 그 과정을 당길 수도 당겨져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시간 안에서 생육의 시간을 거친 것들의 존재가치는 생생하게 남게 된다.



생육: 생물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전 과정, 단순한 크기의 증가뿐만이 아니라 성숙을 포함 하는 포괄적 개념



바르게 생육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의 인생을 놓고 본다면 삶의 단계별로 필요한 것들과 관계 맺음은 뚜렷하다. 성장기와 사춘기에 필요한 친구가 있고 성인이 되어 가족이라는 새 울타리를 이루게 되는 배우자와의 관계도 있다. 생애 주기마다 갈등이나 고통, 번뇌는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순차적으로 찾아오게 된다. 회피한다고 순서를 뒤로 미룬다고 될 일은 아니다.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저절로 떠 오른다.


십 대의 수학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십 대의 때'라는 것에 매우 가깝게 얽혀 있다.

수학은 'Thinking'의 과정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자면 문제의 데이터를 파악하는 능력, 문제해결의 단계를 설정하는 논리력, 도형을 관찰하고 추론할 수 있는 힘, 개념을 연결하는 융합과 사고력 등의 이성적 부분도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디딤돌을 오직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힘, 도파민의 유혹을 물리치고 숫자와 나의 고독한 투쟁을 이어나가며 매 순간 나를 의심하고 점검하는 것으로 '나를 증명해 가는 총체적 과정'이다.


수학을 공부하는 과정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생육의 과정이다.




얼마 전, 주짓수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가는, 운동을 너무나 사랑하는 여학생 A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입시도 맞닥뜨리고 갑자기 어려워진 수학을 이제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원의 문을 노크한 것이다.

A는 중학생이 되어서는 수학학원을 다닌 적이 없고 3학년 과정을 하는 데 있어 누적된 결손 분량이 많았다.

새롭게 공부할 결심을 했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량을 해내기에는 부족한 역량이었다.

자주 학원에 와서 지도를 받도록 했지만 보강을 안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시간 10분이 지나도 수업을 오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가 일주일 쉬래요'


A한테 온 문자는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문제집을 사야 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기말 시험 준비 때에도 여러 문제집을 사더니 결국 제대로 풀지도 않더라고요. 그런데 새 문제집을 산다고 하길래 화가 나서 학원 가지마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생각을 좀 하라는 의미에서 일주일 쉬어라는 말을 했는데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를 할 생각이 없어요'

엄마와의 통화는 상황을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자기 주도력은 그렇게 쉽게 생기지 않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 동안 꾸준하고 지속적인 방법과 관심으로 공부 습관이 들여지고 생육되어야 자기 주도력이 생기는 것이다. 내 의욕과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한 번씩 아이를 뒤흔들어버린다면 결국 아이도 혼란스러워지게 마련이다.



A는 중학교 3학년이지만 공부생육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없는 아이였다. '학원 가지 마!'가 아니라 아이를 더 잘 관찰하고 , 아이와 세심하게 대화하고, 학원 선생님과 방법적인 부분을 의논하고 (학원 선생님들은 모두 잘 된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확한 판단을 내린다면 아이는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결국 생육된다고 믿는다.



공부는 언제던 하면 되고 100세 인생에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지만 인생의 주기마다 해야 할 공부는 순차적으로, 그리고 직렬로 온다.

십 대의 수학이란, 십 대에 해야 할 이유가 있고 그 때가 있는 공부다. 넘버 1이 되고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나에 대한 예의다.



그 성숙과 생육의 과정을 오롯이 밝고 지나온 십 대라면 인공지능 시대에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빛낼 것이다. 저자는 AI시대는 하나의 문명이며 그것은 개인이 가볍게 비행하는 경량문명 시대가 될 것이라 예보했다.

이 비행은 일상화될 것이며 그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율, 자존, 자립이며 이는 모두 홀로서기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홀로 서야 할 뿐만 아니라 홀로 비행해야 한다.


경량문명의 개인은 날아오르고 혼자 헤쳐 나가는 스스로 비행하는 자유인이다. 앞으로 다가올 문명이 대한민국의 십 대들에게 따뜻한 문명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