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돌아 결국 기록이었다

쓰는 사람, 백희성

by테두리e


내가 나에게 던지는 대화, 그것이 바로 기록이다.



기록은 기억을 위한 것이었다.

과거를 파헤친다 한들 누구도 기억의 전부를 되찾지는 못한다.

지나간 시절 속에 나 자신의 일부가 묻혀있을 테지만,

다시는 찾지 못할 나 자신, 하지만 불현듯 떠올릴 나 자신은 분명히 있다.

지나온 삶의 궤적에서 경험과 생각의 총합이 합쳐진 것이 결국 '나'일 것이다,

삶의 굵직굵직한 것들은 기억나지만 밤하늘 별처럼 작은 기억들은 내 어디에 박혀 있는 것일까


대구로 상경해 처음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갔던 초등학교 입학식, 그것은 생을 통틀어 어떤 두려움을 주었을까

고등학교 화학시간, 반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던 가운데 풀 수 없는 문제를 어찌할 바 몰라 칠판에 코를 박고 있던 그때의 수치심은 삶을 얼마나 뒤흔들었던가

신혼여행을 가던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어떻게 나를 짓눌렀는가

큰 아이가 태어나던 날, 그 당혹감과 엄마가 되었다는 두근거림, 미세한 기쁨과 자긍심의 실체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사진만으로는 부족했다.

다시는 하나로 모아지지 못할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며 기록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꾸준하지 못하다는 것이 지난한 아쉬움이라 기록생활은 중단되기 일쑤였다.


왜 굳이 써야 하는 걸까?

나조차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기록들이 무엇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쓰지 않는 사람들이 도처에 자욱한데 안 쓴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고, 이리도 마음속 부채를 쌓고 있는 것일까?


백희성 작가의 [쓰는 사람]에서 저자는 기록을 이어가는 방법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나누어주고 있다.


1단계 : 내 생각을 적는다
2단계 : 묻는다
3단계 : 다른 사람처럼 묻는다
4단계 : 결정해 본다
5단계 : 잊는다
6단계 : 나중에 다시 읽는다


저자는 기록의 6단계를 제안했지만 나는 여기서 몇 단계를 줄이고자 한다


1단계 : 묻는다
2단계 : 다른 사람처럼 묻는다
3단계 : 잊는다
4단계 : 우연히 다시 읽는다
5단계 : 내 생각을 적는다


기록을 멀리했던 내 안에 이유는 '깨달은 것'을 적어야 한다는, 나도 모르게 정해놓은 암묵적 규칙이었을지 모른다.

저자의 방법을 읽으면서 기록은 깨달음의 집합체가 아니라 '나에게 묻고 답하고 생각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과 생각들, 기록은 결국 '나와 내'가 하는 대화이다.

습관의 총합이 자신이라고 한다면 나를 정의하는 습관이란 무엇일까? 무엇이어야 할까?

기록하는 사람, 쓰는 인간, 읽고 쓰는 사람, 이것이 내 정체성이었다.

2년 만에 온라인카지노의 문을 연 이유이다.




총평 : 기록은 '질문 던지기'로부터 시작하는 릴레이 대화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