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by테두리e

외모는 돈 보다 더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우리는 종종 완벽한 조건과 화려한 미모라는 1%의 기준이 전부인 세상을 살아간다.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어쩌면 거대할 수 있는 폭력과 기준의 바깥에서 서성이는 청춘들의 초상을 차분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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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인생 밑줄바카라'이었다. 페이지 전체를 그을 만큼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도 많았다. 또한 화려한 기교 대신 서툴고 못난 상처를 품은 이들의 내면을 차분하게 파고든다. 세상이 정한 속도와 기준에서 비켜난 나, 그녀, 요한, 세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통해 이들이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는 과정이 너무나 깊은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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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나'는 잘생긴 아버지와 상처 입은 어머니의 관계를 기억하며, 그 삶의 무게를 자신의 내면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주변사람들은 남자가 아깝다거나 어머니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더욱 상처받게 되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나'는 타인을 단순한 동정이 아닌 깊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밑바탕이 된 것 같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녀와 요한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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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백화점 지하 주차장은 화려한 자본주의의 정점(백화점)과 그 뒤에 숨겨진 그늘(지하주차장)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꽤 많은 못생긴 여자를 보아왔지만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는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퇴근길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며 처음 말을 건넨다.



소설 속 못생긴 여자, 그녀

지나가던 사람이 돌아볼 만큼 못생긴 그녀,

도대체 얼마나 못생긴 얼굴인 것일까?

외모는 우리를 결정짓는 모든 요소는 될 수 없지만, 나를 나타내는 한 모습이다. 과거의 나는 외모에서 자유롭시 못했다.

동생과 내가 우스개 소리로 늘 말하는 '통뼈'유전자에 걸맞게, 어깨는 쩍 벌어져 있었지만 코뼈에는 유난히 유전자가 미치지 못했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걱정할 만큼 낮았다. 남편의 손과 맞대어서 크게 차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남성적 사이즈를 가진 손은 얼마나 수치스러웠던가. 반지 사이즈를 잴 때마다 움츠려 들게 만드는 손가락들은 모두 굵고 통통하다. 쩍 벌어진 어깨는 연약해 보이는 여자의 위상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늘 움츠리고 다녔으며, 선척적으로 낮은 콧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중학교 시절부터 안경을 쓰고 다녔다. 시력 수술이 유행할 때에도 '눈에는 절대 칼을 댈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처럼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낮고 빈약한 코 때문에 안경을 놓칠 수없어서였다. 공부를 하다가도 연필을 쥐고 있는 너무 큰 손을 보며 스스로가 놀랐 때도 많아 자주 손을 오므리곤 했었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작고 뽀얀 피부를 가진 여동생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가며 스스로 작아지려 했던 나는 친척 어른들을 만날 때도 자주 긴장했었다. 외모는 유년기 동안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평가받는 지표였다.


소설 속 그녀는 외모로 인해 움츠려 들고 '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저랑 같이 있는 게 부끄럽지 않았나요?'라고 묻는다. 그녀는 결국 '나'와의 행복을 믿지 못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발견한다. 낯선 행복, 사랑이라는 감정이 주는 변화와 욕망 앞에서 도피를 해버리는 자기 방어의 모습으로 도망쳐버린다. 나는 그녀의 도피가 너무나 이해된다. 외모는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중요하다. 어린 유년의 나에게도 중요했다. 나이가 든 지금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외모가 정하는 범주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 같지는 않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 보이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고


내가 외모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던 것은 누군가의 예쁨과 사랑을 받았을 때였다. 지긋이 나를 바라봐주는 눈빛, 얼굴을 쓰다듬으며 예쁘다 예쁘다 말해주는 목소리, 솥뚜껑 만한 손도 가만히 잡아줄 때, 사랑에 빠져서야 신체적 보잘것없음이 아름다워졌다. 늪이나 웅덩이가 아닌 잔잔하고 푸르른 바다에 빠졌다. 그렇게 빠져보았기에 언제든 떠올릴 수 있고 외모가 아닌 아름다움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적이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는 대신,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자신만의 얼굴을 지니고 각자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가는 것—그것이 바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지닌 진정한 가치이자, 우리가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원의 모습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보잘것없는 우리가 나누어야 할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기적을 행하는 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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