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속내를 알고 싶어요
철규는 잠시 인희를 간병인에게 맡겨둔 뒤,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장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인희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화를 나누던 모니터 앞에 앉아, 마침내 그녀가 드나들던 채팅방을 다시 찾아냈다.
이번엔 꼼꼼히 읽을 작정으로 눈에 불을 켜는 철규. 마우스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채팅창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썹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이게 뭐야?”
처음에 읽었던 것과 달리 채팅창 속에는 철규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인희가 있었다.
인희는 어느새 자신을 여고생으로 꾸며놓고, 경준이라는 학생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철규는 한동안 말없이 모니터만 바라봤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또 보니 또 황당했다.
그다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지금 나이가 몇인데…….” 하는 그 소리가 여전히 속에서 우러나온다.
물론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철규는 다시 채팅창을 내려다봤다. 인희는 자신이 여고생이라는 설정에 꽤나 진심이었다. 말투부터 분위기까지 제법 그럴듯했다.
어쩌면 인희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을 만큼 학생이라는 이미지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철규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이걸 내가 또 어디까지 읽어야 하는 거야…….”
읽지 말자니 이미 눈에 들어왔고, 읽자니 자꾸만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이대로 그냥 두었다면 이 일은 인희에게도, 경준이라는 학생에게도 돌이키기 어려운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경준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사실을 알려야 했다.
물론 철규도 잠시 고민했다.
‘내가 굳이 그 학생한테까지 연락해야 하나?’
괜히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철규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내 깊은 한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래. 묻을 일이 아냐, 내가 나서자.”
그리고 모니터를 한 번 더 바라봤다.
“대신 이 채팅방은 오늘부로 폐쇄다.”
마치 범죄 현장을 정리하는 사람처럼 단호한 목소리였다.
두 사람 모두를 위해서라도, 이 어색하고 위험한 관계는 이제 여기서 정말 끝내야 했다.
철규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자꾸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희가 이걸 알면… 나한테 뭐라고 하려나?’
그 생각에 철규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겠네…….”
경준은 채팅을 끝내자는 인희의 말을 마지막으로 아무런 연락이 없자 마음이 뒤숭숭했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처럼 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끝내버린 거지?’
학교가 끝나면 습관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인희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그렇게 경준의 메시지만 채팅창에 하나둘 쌓여갔다.
‘정말 이렇게 끝나는구나.’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인희와 나눈 대화는 이상할 만큼 따뜻했고 특별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경준이 평소처럼 채팅창을 열자 새로운 메시지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순간 심장이 뛰었다.
‘인희가 드디어 연락한 건가?’
기대하며 읽어 내려가던 경준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
말투가 이상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 저는 서인희의 남편입니다.
“……뭐?”
경준은 눈을 깜빡였다.
다시 읽었다.
남편.
한 번 더 읽었다.
역시 남편이었다.
“잠깐만…….”
경준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남편이라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인희의 모습이 산산이 부서졌다.
고3 여고생이라고 믿었던 인희.
그런데 알고 보니 사십 대 주부라고 설명한다.
‘내가 지금까지 주부랑 채팅한 거야?’
처음에는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 박철규가 보내온 글을 읽을수록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경준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내가 사십 대 주부와 채팅을 하고 있었다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철규는 경준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인희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며 그동안의 대화를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경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야?”
잠시 후 그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듯 중얼거렸다.
“일단… 진정하자.”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던 경준은 문득 채팅창을 바라봤다.
그리고 실없이 피식 웃었다.
경준은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정말 웃을 수가 없었다.
경준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 것은 그다음이었다.
남편이라고 밝힌 박철규가 자신과 잠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것이었다.
껄끄러웠다. 당장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후 경준은 화면을 바라본 채 생각에 잠겼다.
‘만나서 그녀의 실체를 직접 남편에게 들어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하고 잊어버리는 게 나을까?’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고 이 일에서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직접 만나보면 자신이 알고 있던 인희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경준은 결국 답장을 보냈다.
― 네. 만나겠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자 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표정으로 만나야 하지?’
생각해 보니 그것도 문제였다.
대화의 상대 인희. 그녀의 남편을 처음 만나는 자리.
웃으며 악수를 하기에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수도 없다.
경준은 머릿속으로 몇 가지 인사말을 떠올려봤다.
“안녕하세요.”
너무 평범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나마 괜찮았다.
“인희 씨 남편분이시죠?”
……이건 아무래도 너무 노골적이었다.
경준은 결국 머리를 긁적였다.
“아, 모르겠다. 만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한편 철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철규 역시 채팅창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첫마디를 골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 학생을 만나서 대체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지?’
“안녕하세요. 제 아내와 채팅하셨죠?”
……너무 우스웠다.
“그동안 제 아내와 잘 지내셨습니까?”
……이건 더 이상했다.
철규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만나고 생각하자.”
그때 채팅창에는 마지막으로 짧은 인사말이 올라왔다.
― 시간, 장소 정해주시면 그날 뵙겠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경준은 채팅창에 그리 적어 보내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필이면 왜 이런 식으로 알게 되는 거야…….”
철규 역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살다 살다 아내 채팅 상대를 만나러 갈 줄이야.”
그리하여 급작스럽게 박철규와 강경준은 만날 약속 장소와 시간이 정해졌다.
약속을 정하고 나자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 모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직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두 남자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체 만나서 무슨 말부터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