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
매장 판매직은 두 다리로 일한다.
매장 안쪽에는 백룸이라고 부르는 작은 사무 공간이 있다. 공용 컴퓨터 한 대와 의자 한 개가 전부인 곳이다. 본사 공지를 확인하거나 발주, 매출 관리 등 사무 업무를 처리할 때 잠시 이용하는 공간이다. 그 외의 시간은 대부분 매장에서 보낸다. 고객을 응대하고, 상품을 진열하고, 매장을 정리하는 일은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공통 업무다.
그런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백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신입사원 때처럼 눈치를 보며 쉴 새 없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사무 업무를 핑계로 잠시 앉아 있을 여유도 생긴다.
문제는 그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을 때다. 선임 직원이 백룸에서 나오지 않고 매장 응대를 막내 직원들에게 모두 맡기는 경우도 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쌓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안심할 수 없다. 지역 매니저나 본사 직원들이 언제 방문할지 모른다. 매장을 둘러보는 짧은 순간에도 누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지, 누가 자리를 비우고 있는지는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함께 일하는 직원, 알바생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신입사원 부터 내가 어필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가지. 성실함 뿐이었다. 흔한 컴활 자격증 하나 없지만 대학 시절 다양한 활동 및 젊은 패기를 보고 뽑아준 거란걸 알고 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건 체력밖에 없었다. 온라인 게임생활이 처음이라 상사와의 관계는 쉽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굳이 억지로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평소 일하는 태도만으로 충분히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거나, 눈에 띄는 성과를 발표하거나, 일부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맡은 일을 꾸준히 해내고 동료들이 바쁠 때 함께 움직이는 것. 어쩌면 그런 평범한 태도가 가장 솔직하게 나를 보여주는 방법일 수 있다.
그 생각을 더 확실하게 해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영업팀 팀장님이 본사 직원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매장 POG(상품 진열 기준)에 관한 업무로 본사 직원이 자주 매장에 방문하기 때문에 매장 상황이 궁금해서 팀장님이 그 직원에게 물었다고 했다.
"현장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점장은 누구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직원이 내 이름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이유를 듣고 조금 놀랐다. 항상 장갑을 끼고 매장에 나와 물건을 진열하고, 땀 냄새가 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뷰티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땀 냄새라는 표현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특별히 인정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날 해야 할 일을 했고, 매장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모습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내 이름을 이야기할 만큼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순간 와도 항상 나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는 말이 사내 평판을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다 보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가 해낸 일을 누군가 먼저 알아봐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때로는 성과를 설명하고, 나의 기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순간에 나를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쌓이는 신뢰가 있고, 특별한 성과가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매일의 작은 행동이 모여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성실함이 언제나 정당한 평가와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성과와 기여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그럼에도 그날의 경험은 내게 작은 확신을 주었다. 내가 일하는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매 순간 애쓰기보다,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성실함이면 된다. 어쩌면 가장 의외의 순간에 찾아오는 인정은 그렇게 쌓인 시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