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27살, 나는 매장 총바카라임자인 점장이 되었다.
매출부터 재고, 직원 관리, 상품 운영까지 매장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바카라임져야 하는 자리였다. 어린 나이에 여러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해진 일을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리드형 업무 방식을 선호했던 나에게는 꽤 매력적인 기회였다. 내가 가진 방식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직바카라을 맡고 나서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직원들에게 인정받는 일이었다. 내 뜻대로 매장을 이끌어가되 팀원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동시에 직원들이 나를 믿고 따라오려면 무엇보다 내가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출을 올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할 수 있어야 했고, 업무의 모든 영역에서 직원들보다 뛰어난 역량을 보여줘야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점장은 직원별 월간 스케줄과 초과근무를 관리하고 인사 평가에도 관여하는 사람이었다. 직원들에게는 매장의 분위기와 질서를 만들고 자신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 직바카라 자체가 권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과 행동을 조금 더 조심하려고 했다. 직바카라 수당을 받는 만큼 그에 걸맞은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바카라임감도 컸다.
그래서 나는 리더가 해야 할 일과 팀원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업무를 충분히 먼저 숙지한 뒤 지시해야 했고,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직접 처리하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다고 생각하면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업무 능력이 부족한 리더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을 조금씩 바꿔놓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인근 점포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 막 출근한 점장님은 오자마자 먼지털이개를 들고 매장 곳곳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청소가 부족했던 것도 딱히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알바생이 해야할 일을 굳이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특별한 지시를 내리거나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밝은 미소로 먼저 인사하고,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로 직원들과 대화하며 매장을 관리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점장님이 출근한 뒤 매장 분위기가 밝아졌다. 직원들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단순히 상사가 출근했으니 긴장해서 달라진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점장님이 가진 밝은 에너지와 원래 그랬듯 자연스러운 행동이 직원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먼지털이개를 들고 매장을 청소하는 모습조차 내가 생각했던 점장다운 모습과는 달랐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다.
더 놀라웠던 건 따로 있었다. 매장 한쪽 사무실에서는 선임 직원들이 본사 공지를 확인하고 관련 사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본사에서 전달된 내용을 숙지하고 업무를 지시하는 것은 점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꽤 낯선 장면이었다.
점장이 해야 할 일을 직원들이 하고 있는 건가?
처음에는 업무를 떠넘긴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직원들이 불만을 느끼지는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직접 물어봤다.
"이런 사무 업무까지 맡아서 하면 힘들지 않아요? 점장님이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아니요. 저는 오히려 좋아요. 매장에서 판매하는 일 말고도 이런 업무를 배울 수 있잖아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 말을 듣고 돌아오는 길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늘 업무를 내가 먼저 숙지하고 나서 지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알고 있어야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고, 그래야 직원들도 나를 믿고 따라올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웬만한 일은 내가 먼저 확인하고 처리하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직원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업무가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의 경험을 넓힐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바카라임을 나누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일을 맡기는 것은 그 사람에게 경험할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점장이라는 자리를 바라보며 배우기를 원했던 지난 시절을 잊은 것이다.
그동안 나는 리더라면 누구보다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업무 역량과 바카라임감은 리더에게 중요한 자질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직접 잘하고 처리하는 것만이 리더의 역할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먼저 나서서 방향을 제시하고, 누군가는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며, 또 누군가는 구성원에게 새로운 역할과 경험을 맡겨 성장할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날 이후 리더의 역할을 바라보는 내 기준도 조금 달라졌다. 좋은 리더는 모든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과 조직의 상황은 다르다. 모든 업무를 나누는 것이 정답도 아니고, 모든 리더가 같은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 필요도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다.
리더는 입체적인 인물이 되어야한다.
일을 하면서 내가 잘하는 방식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내가 옳다고 믿었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방식을 관찰하는 일도 필요했다. 27살의 나는 일을 잘하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은 일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