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2 열왕 24, 2 참조)
“그러니까 내가 가던 길로 두지.”
운전하다가 한 번쯤 해본 말 아닐까요.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낯선 길 위에서 순간순간 선택해야 했습니다.
갈림길 앞에 서면 괜히 긴장되었고,
옆 사람이 “이 길 말고 저쪽으로 가보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방향을 바꿨다가 길이라도 잘못 들면 꼭 이런 말이 따라왔습니다.
“거봐. 그냥 내가 가던 대로 갔어야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내 인생에 조언하고,
누군가는 방향을 정해 주려하고,
누군가는 “그 길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의 결과를 살아내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시지만,
억지로 끌고 가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자식이 딸 하나입니다.
아이가 학창 시절 진로를 고민할 때 가장 조심했던 것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선택은 항상 아이의 몫으로 남겨 두고,
저희 부부는 가능한 한 정보만 전해 주려고 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해야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제 어린 시절은 조금 달랐습니다.
“무슨 운동이야. 공부해야지.”
운동에 소질이 있던 제게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겨울에는 두 달 동안 개인 영어 과외를 시키셨는데, 지금도 뿔테 안경을 쓰고 둥근 얼굴을 하셨던 대학생 누나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아마 꽤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재수 시절에는 친구에게 전화라도 오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전화냐.”
그 뒤의 집안 분위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선택은 제 몫이었으니까요.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의 그 지나친 간섭조차 결국은 자식을 좋은 길로 이끌고 싶은 사랑이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 안에서 만나는 주님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을까 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억지로 길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길을 보여 주시고, 그 길을 걸어갈지 말지는 우리 스스로 선택하게 하십니다.
기다려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때로는 조용히 바라보시면서도
선택의 바카라임만큼은 우리 몫으로 남겨 두십니다.
그래서 요즘 제 스스로에게 자주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갈 것인가.
이익을 좇으며 살아갈 것인가.
배려하며 살아갈 것인가.
후회하며 살아갈 것인가.
용서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예순을 갓 넘긴 지금도
삶은 여전히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의 순간마다
주님께서 제게 지혜와 용기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