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기상캐스터

기상청도 모르는 할머니의 날씨

by최물결

“오늘 우산 챙겨라. 비 많이 올 것 같다.”

어린 나는 늘 되묻곤 했다.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 냄새를 맡았다. 햇살은 화단 위에 내려앉아 있고, 공기는 눅눅하기보다는 따뜻한 쪽에 가까웠다.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인데도, 할머니는 내게 우산을 챙기라고 당부했다. 투덜거리며 바카라가방에 우산을 넣고 나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소나기처럼 쏟아질 때도 있었고, 우박이 섞인 날도 있었고, 또 다른 날은 진눈깨비가 장난이라도 하듯 흩날렸다.

할머니는 날씨를 어떻게 아냐는 내 질문에 한 마디로 대답했다.


“살아보면 안다.”

단순 명료한 설명이었다.


할머니는 어깨가 욱신거리면 비가 오고, 전날 밤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오고, 하늘의 색이 평소와 다르면 비가 온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다 이렇게 살았다고. 일기예보가 없어도 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알았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여덟 살의 나는, 그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훌쩍 지났다. 삼십 대 온라인 게임인이 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티브이를 켠다. 화면 속 기상캐스터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한다.


월요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단다. 지역마다 강수량을 나눠 설명하고, 우산을 준비하라는 말로 방송을 마무리한다. 숫자는 정확해 보였지만, 날씨는 종종 그 말을 비켜갔다. 우산을 챙겼는데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있었고, 아무 준비 없이 나왔다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맞은 날도 있었다.

비는 때때로 예보보다 더 정확했고, 때로는 아무것도 맞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수치 대신 몸으로 날씨를 짐작하던 사람. 우비를 입고 지도를 가리키는 대신, 창밖을 오래 바라보던 사람…….

나는 잠시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할머니가 기상 캐스터가 된다면 어땠을까. 학교 혹은 온라인 게임으로 가는 손자 손녀들을 응원하며 , 오늘은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를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었다. 살아보면 안다는 말이, 이제는 조금 이해되는 나이가 되었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반응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올해도 장마가 온다고 했다.


문득, 할머니에게 묻고 싶었다.

‘오늘은 비가 올까요.?’

할머니는 지금, 내 옆방에 계신다. 매일 날씨를 예견하며 우산과 카디건을 다정하게 챙겨주던 사람. 날씨를 알아맞히던 할머니.

이제는 반대로 할머니가 내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묻는다.

“오늘이 월요일이냐, 화요일이냐.”

“지금이 여름이냐, 가을이냐.”


감각은 무뎌졌고, 여름에도 춥다며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는다.

어떤 날은 요일을 맞추다가도, 어떤 날은 헷갈려 하신다. 그래도 본인 밥 먹는 시간과 손녀 밥은 잊지 않는다.

외출할 때면 늘 내게 묻는다.


밥은 먹었냐고.

이제는 밥 먹었냐는 말 한마디가 안부가 되었다.


나는 새로 사 온 모자를 할머니 머리에 씌워드렸다. 산바카라을 할 때 공기가 차가우니 머리가 따뜻해야 할 것 같았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할머니의 뒷모습을 멍하게 쳐다봤다.


그 순간, 이유 없이 무릎이 욱신거린다. 살아보면 안다는 말이 이런 의미였을까.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이었다.